[PARiS 2024] 단체전 마지막 등장 최고 점수 얻어… 관중 기립박수 속 ‘도쿄 아픔’ 훌훌 ‘리우 4관왕’ 이어 ‘파리 5관왕’ 시동… 27세 ‘역대 2번째 최고령 金’ 기록도 “파리 올림픽, 美 체조 ‘구원의 대회’”
미소 되찾은 美 ‘체조 여제’ ‘체조 여제’ 시몬 바일스(왼쪽)가 31일 파리 올림픽 체조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차지한 뒤 메달을 깨무는 세리머니를 하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선수들이 손에 든 긴 상자에는 부상인 대회 기념 포스터가 들어 있다. 파리=AP 뉴시스
승리를 지키기 위해 마운드에 오르는 구원 투수 같았다. 시몬 바일스(27·미국)는 31일 열린 파리 올림픽 여자 체조 단체전 결선 마지막 종목인 마루운동에서 전체 참가 선수 가운데 맨 마지막으로 마루에 올랐다. 바일스는 깊은 한숨을 몰아 쉰 뒤 연기를 시작했다.
바일스의 차례가 오기까지 미국은 중간 선두인 이탈리아에 8.864점 뒤져 있었다. 바일스가 8.865점만 받아도 미국이 금메달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 바일스의 실제 점수는 14.666점이었다. 이날 마루운동에 나선 24명 중 가장 높은 성적이었다. 미국은 결국 총점 172.296점을 기록하며 이탈리아를 5.802점 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바일스의 개인 통산 5번째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바일스가 연기를 마치자 베르시 아레나를 가득 채운 관중 1만여 명의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세리나 윌리엄스(테니스), 마이클 펠프스(수영) 등 미국 스포츠 스타들은 물론이고 니콜 키드먼, 내털리 포트먼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도 ‘체조 여제’의 귀환을 반겼다. 바일스의 남편인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선수 조너선 오언스도 이들과 함께했다. 바일스는 활짝 웃는 얼굴로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바일스는 올림픽 데뷔전이었던 리우 대회 때 단체전, 개인종합, 뜀틀, 마루운동 등 4관왕에 올랐다. 이어 열린 도쿄 대회 때는 6개 전 종목 석권도 가능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바일스는 단체전 결선에서 뜀틀 한 종목에만 참가한 뒤 기권했다. 공중 동작 때 부상에 대한 공포가 엄습하는 ‘트위스티스(twisties)’ 증상 때문이었다. 올림픽 여자 체조 단체전 3연패를 노리던 미국도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바일스는 도쿄 올림픽이 끝난 뒤 미국 체조 대표팀 주치의였던 래리 나사르(60)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사실도 공개했다. 바일스뿐 아니라 전현직 체조 선수 265명이 나사르에게 성폭행 또는 성추행을 당했다. 8년 만에 되찾은 올림픽 금메달이 2년간 선수 생활을 접었다가 돌아온 바일스뿐 아니라 미국 체조 대표팀 ‘골든걸스’에게 더욱 뜻깊은 이유다.
셀린 랜디 미국 체조 대표팀 코치는 “사람들이 이번 대회를 ‘구원(redemption) 투어’라고 부르더라. 맞는 말이다. 우리는 도쿄에서 따내지 못했던 금메달을 원했다”고 했다. 바일스는 “도쿄 올림픽 이후 우리가 증명해야 할 게 있었다. 오늘 우리는 그것을 해냈다”며 웃었다.
바일스는 이날 올림픽 체조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나이에 여자 종목 금메달을 따낸 선수로도 이름을 올렸다. 28세였던 1964년 도쿄 올림픽 때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한 폴리나 아스타호바(옛 소련) 한 사람만이 올림픽 여자 체조 금메달리스트 중 바일스보다 나이가 많다. 바일스는 파리에서 금메달 4개를 추가할 수 있다. 바일스는 1일 개인종합을 시작으로 뜀틀(3일), 평균대, 마루운동(이상 5일)까지 총 5관왕에 도전한다.
파리=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