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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러는 위로 받는다… 1인 메뉴 착한 중국집[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입력 | 2024-08-01 22:54:00

서울 연희동의 중국집 ‘왕왕’에서는 1만2000원대의 다양한 1인 메뉴를 맛볼 수 있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행정구는 다르지만 맞닿은 동네 연희동과 연남동은 뭐니 뭐니 해도 서울 중화요리의 메카라고 할 수 있다. 연희동·연남동 일대에 화교들이 유입된 것은 1969년 명동에 있던 한성화교 중고등학교가 연희동으로 옮겨가면서 화교들이 상대적으로 통학 환경이 좋은 연희동과 연남동으로 대거 이주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 현재 서울에 거주하는 화교의 숫자는 어림잡아 8000명을 헤아린다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연희동과 연남동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왕왕(旺旺)은 그런 연희동의 중심, 도로명 주소조차 ‘연희맛로’라고 명명된 거리에 들어서 있다. 실내에 들어서면 벽에 붉은색 바탕에 황금색 글씨 등이 적힌 편액과 홍등이 걸려 있어 정통 중국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 주인장은 40대의 젊은 화교 3세인데 부인과 함께 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부친이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이들 가계의 한국 정착의 역사는 80여 년을 헤아린다.

김도언 소설가

이 집이 유명한 것은 단연코 놀라울 만큼의 특별한 가성비 때문이다. 사실 중국음식은 양가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짜장면 한 그릇’이 상징하듯 한국 사람이라면 예외 없이 즐기는 서민적인 단품 음식인 동시에 드물고 고급한 식재료를 쓰는 다양한 요리가 있어 특별한 날이나 먹을 수 있는 배타적 권위를 가진 음식이기도 한 것. 특히 연희동 중국집들은 전통에 기대 고급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음식값이 다소간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집은 단품 식사메뉴가 아니라 요리로 분류되는 탕수육, 유린기, 깐풍기(육), 라조기(육), 잡채, 칠리중새우, 멘보샤 등이 2024년 7월 현재 모조리 1만2000원이다. 놀라운 것은 혼자 찾아오는 식객을 위해 그런 서비스 메뉴를 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혼자 중국집에 가서 요리를 시키기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닌데 그토록 착하고 기특한 아이디어를 낸 것. 맛과 향미 또한 연희동 중화요리 골목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 만큼 빼어나다. 중국음식의 시그니처 격인 짜장면과 짬뽕 또한 각각 6000원과 8000원으로 연희동 중국집 골목에서는 좀체 만나기 힘든 가격이다. 맛도 기대를 충족시키는 건 물론이고.

이날 나는 30년 가까이 삼인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좋은 책을 만들어 온 홍승권 선생의 은퇴를 기리기 위해 이 집에 갔다. 우리는 술과 함께 1인 요리 중 세 가지를 시켜서 먹었는데, 참으로 순식간에 진수성찬 한상이 차려졌다. 독자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기 위해 청장년의 시간을 송두리째 바쳐 일하는 사이 홍 선생의 머리는 백발이 되었다. 아마도 홍 선생은 야근을 하면서 숱하게 짜장면 등을 시켜 먹었을 것이다. 그걸 감안하면 은퇴에 즈음한 조촐한 만찬이 이곳 연희동 중국집에서 있었던 것은 어쩌면 소소한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홍 선생은 출판사를 다른 이에게 물려주고 충청도 시골로 물러나 귀농의 길에 들어선다. 가끔 연희동 중국음식이 생각이 나기도 할 것인데, 그런 날에는 또 왕왕에서 조우하는 것이 필연일 것이다. 왕왕의 왕(旺)은 ‘흥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홍 선생의 앞날에 왕왕한 행복과 평안이 가득하길. 노포는 그런 축원을 도모하기에 마뜩한 곳이기도 할 터이니.


김도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