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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대가가 손자를 위해 그린, ‘불안’ [영감 한 스푼]

입력 | 2024-08-02 11:00:00


프란시스코 고야의 ‘검은 그림’ 연작 중 ‘마녀들의 안식일 or 위대한 숫염소’(Witches‘ Sabbath, or the Great He-Goat)의 일부 장면 ©Museo Nacional del Prado

전쟁과 혼란으로 왕이 세 번이나 바뀌는 가운데 4명의 왕과 함께 일했던 궁정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

프랑스 혁명이 있었던 18세기 말을 지나 19세기가 되고, 70대가 된 그는 세상과 연을 끊고 마드리드 인근 농가에서 칩거합니다.

이 집에서 화가는 정체불명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궁정 화가였을 땐 초상화, 역사화, 풍속화를 주로 다뤘던 그가 홀로 그린 이 그림들이 누구를 무엇을 그린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낯선 사람의 눈에는 어둡고 공포스러운 이 집의 벽화에 사람들은 ‘검은 그림’(Black Painting)이라는 별명을 붙였죠. 나이 든 화가가 정신 이상을 겪고 그린 그림이라는 흉흉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검은 그림’은 지금 프라도 미술관의 대표 컬렉션이자, 인간 내면을 표현해 근대의 문을 연 걸작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고야를 연구하는 큐레이터 마우러 구드룬과 ‘검은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들과 손자를 위해 매입한 집,
화가는 ‘검은 그림’을 남겼다

‘검은 그림’ 연작 중 ‘곤봉 결투 or 죽음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곤봉 결투’(Duel with Cudgels, or Fight to the Death with Clubs) ©Museo Nacional del Prado

- 고야는 평생 의뢰 받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검은 그림’은 말년에 오로지 자신을 위해 그린 것이죠. 고야가 미래를 비관적으로 봐서 이런 그림을 그린 걸까요?

고야가 검은 그림을 자기만을 위해 그렸는지 먼저 따져봐야 합니다. 그림이 있는 집은 고야가 아들과 손자에게 물려주기 위해 매입한 것이에요. 그러니 그곳의 그림도 자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겠죠.

이 집 옆에는 밭이 있었고, 고야는 자식과 손주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기를 바랐어요. 실제로 그들은 농부가 되었습니다.

- 농가에 이런 그림을 그린 건가요? 왜요?

그러게요 도대체 왜 그렸을까 라는 생각을 누구나 할 것 같습니다만, 그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가지여서 하나로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분명한 건 고야가 이 집을 매입하는 과정에 아주 철저한 계획을 했다는 점이 문서로 뒷받침됩니다. 그러니까 고야가 이 그림을 그릴 때 정신 이상을 겪지 않았다는 건 확실합니다.

‘검은 그림’ 연작 중 ‘사투르누스’(Saturn). ©Museo Nacional del Prado

- 마녀, 악마,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Saturn),… 그림들의 내용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고야는 우리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인간의 내면을 깊이 관찰하고 드러내려 했습니다. 인간은 때로 거짓말하고, 장난을 치고, 이성적이지 않은 행동을 저지르기도 하죠. 이성의 반대편에 있는 열정, 불안, 공포를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 미술사에서 처음으로) 표현했어요.

검은 그림에서 사투르누스가 자식을 잡아먹는 이유는, 그중 한 명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죠. 또 ‘Reading’에서는 무언가를 읽고 있지만 허공을 응시하는 사람은 공포에 사로잡힌 듯한 모습이에요.

이 무렵 스페인에서는 종교 재판이 성행하고 마녀와 같은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계몽주의자들이 이런 세태를 비판하는 글을 싣기도 했어요. 그런데 고야는 이런 모습을 도덕적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 현상 속에서 드러나는 공포와 불안을 표현했어요. 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감정이죠.

‘검은 그림’ 연작 중 ‘읽기’(Reading). ©Museo Nacional del Prado

-검은 그림의 한 가지 키워드를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또 다른 유명한 그림인 ‘개’(The Drowning Dog)는 정말 복잡한 그림이에요. 그림 속 개는 허공을 보고 있으니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일까? 싶지만 앞에 아무것도 없어요. 헐떡이며 올라온 언덕과 그 위의 노란 하늘뿐이죠.

‘검은 그림’ 연작 중 ‘개’(Drowning Dog). ©Museo Nacional del Prado

-앞으로 무엇이 닥쳐올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공포와 불안인가요?

그럴 수도 있죠. 그렇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에요. 사람들은 마녀나 악마를 두려워하고, 또 불안감으로 미신을 믿지만 사실 그 뒤에는 막막한 하늘처럼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무서워하는 무언가, 그 대상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고. 불안과 공포라는 감정 자체가 우리를 움직이는 힘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혹은 손자 마리아노에게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고야가 그림 외에는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아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는 거군요.

네 아무것도 없어요. 작품 제목도 연구자가 임의로 붙인 겁니다.

‘개’는 고독, 혹은 자아 성찰로 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삶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헤매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게다가 거대한 바위 앞에서 개가 한없이 작아 보이죠. 그러니까 대자연 앞에서 먼지처럼 작은 인간 존재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어요.

또 고야는 사냥을 즐겨 했는데요. 이 시대 사람들이 사냥할 때 개를 데리고 다녔으니, 고야는 개의 습성에 대해서도 잘 알았죠. 여기서 개는 사람과 달리 자기 의견을 표시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진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인간이 아닌 순진한 동물이라는 차원에서 말인가요?

그렇죠. 그런데 인간도 결국 삶의 막바지에 가서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잖아요. 이 그림에서 개는 주인을 잃고 혼자 헤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이것을 19세기 인간에게 대입해 생각해 볼 수도 있죠. (시민혁명, 전쟁 등으로 오랫동안 내려온 신념을 잃고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는 의미)


혁명, 전쟁과 혼란의 시대.
변하지 않는 건 무엇일까?

고야가 젊은 시절 그린 태피스트리 밑그림 연작 중 ‘연날리기’ ©Museo Nacional del Prado

-프라도미술관에 가면 3층에는 고야가 젊은 화가일 때 그린 태피스트리 밑그림이 있고, 1층에는 검은 그림이 있잖아요. 두 공간을 오가며 그림을 비교해 보았을 때 차이점이 극명해서 충격적이었어요.

젊은 시절의 그림에서는 (고야 특유의 어두움이 있긴 하지만) 즐거움과 야망이 주된 분위기였다면, 말년의 그림에서는 그 어두움이 완전히 폭발해서 그림을 지배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 야망으로 가득했던 그가 말년에 이르러 죽음을 앞둔 모습이 슬프기도 했고요.

두 그림의 대조가 강렬한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검은 그림’이 어두운 데에는 시대적 분위기도 작용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그러니까 고야가 말년에 희망을 잃었다기보다는, 나폴레옹 전쟁, 종교 재판 같은 혼란스러운 시대를 겪었기에 예전처럼 밝은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던 것이죠. 또 요즘 영화나 게임 같은 콘텐츠가 점점 더 직접적이고 자극적으로 변하듯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의 그림도 더 과감해진 경향이 있어요.

-그렇다면 젊은 시절보다 자기의 개인적인 의견을 더 대담하게 드러내는 걸 수도 있겠네요. 태피스트리 밑그림은 주문한 사람이 있었고, 검은 그림은 고야가 자발적으로 자신과 가족을 위해 그린 것이니까요. 그래서 더 마음을 열고 인생에 관해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거고요.

맞아요. 검은 그림은 고야가 아주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보기 위해서 그린 것이므로, 자신의 의견을 마음대로 펼칠 수가 있었죠. 또 시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담겨 있고요.

-고야의 판화 ‘카프리초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도 검은 그림과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죠. 검은 그림은 그렇게 이성이 잠들 때 꿈에서 볼 법한 것들을 그리고 있어요. 그런데 그 꿈은 아주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의 삶에서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생겨나죠.

또 재밌는 건 고야가 막연한 꿈속의 공포나 불안을 표현해서 일종의 치유 효과를 준다는 점이에요. 지금은 심리학을 통해 그런 효과들이 익숙하지만, 고야는 당시 지식인들이 공포나 불안을 숨기라고 한 것과 달리 그것을 드러내고 보여줬다는 것도 너무나 흥미롭죠.

고야의 카프리초스 판화 연작 중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 ©Museo Nacional del Prado

-20세기 철학자인 미셸 푸코가 인간의 어둡고 억압된 면을 드러낸 사실이 생각나네요. 그런 점에서 고야는 예민한 감각으로 철학보다 빨리 근대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거고요.

정확합니다. 고야가 모더니즘의 문을 열었죠. 인간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끄집어냈다는 점에서요. 히에로니무스 보쉬가 그랬던 것처럼요. 물론 검은 그림은 공개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지만, ‘카프리초스’ 같은 판화는 시중에 보급했어요.

-그런데 검은 그림에 관해 남겨진 글이 전혀 없다는 점이 아쉽네요. 물론 시각적으로 보았을 때 그 의미와 새로움이 강렬하게 다가오긴 하지만, 그걸 글로 옮기긴 어려워서요.

그렇죠. 그런데 ‘카프리초스’에는 고야가 제목이나 짧은 코멘트를 남겼어요. 덕분에 판화들의 복잡한 의미를 알 수 있는 건 물론 고야가 어떤 식으로 생각했는지도 유추해 볼 수 있어요. 그걸 보면 고야가 ‘변하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검은 그림’ 연작 중 ‘종교 재판’(Inquisition). ©Museo Nacional del Prado

-본질에 관심을 가졌던 거군요

맞아요. 저는 1990년대에 ‘검은 그림’을 처음 봤는데, 그때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프라도 미술관에 검은 그림 전시실을 ‘충격의 방’이라고도 한답니다.

그 이전에도 저는 고야에 관한 글을 읽곤 했지만, ‘검은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고 엄청난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리고 여러 자료를 연구하며 이것은 늙은 화가의 정신 이상이 아니라 아주 명석한 마음에서 그린 것임을 확인하게 됐어요. 또 그가 제시한 주제들은 지금에도 유효하다는 사실도요.

-그렇죠. 한 가지 주제가 ‘두려움’이라고 하셨는데, 인터넷이 열리면서 종교 재판의 시대가 다시 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사람들은 다르고 낯선 생각에 두려움을 느끼니까요. 또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세계가 지금도 불안한 상황이기도 하고요.

가짜 뉴스도 마찬가지죠. 19세기에도 서로 다른 신념과 생각들이 부딪쳤고 그때는 더 폭력적이었지만 양상은 비슷해요. 그런 맥락에서 ‘검은 그림’은 불안과 공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가운데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검은 그림’ 연작 중 ‘두 노인’(Two Old Men). ©Museo Nacional del Prado

-그런 본질적 메시지를 담았기에 ‘검은 그림’이 고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고전 문학이 인간 본성에 대해 다뤘기에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읽히고 그 의미를 잃지 않는 것처럼 말이에요.

정확한 지적이에요. 검은 그림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를 갖고 있어요. 고야가 ‘카프리초스’ 판화를 위해 만든 드로잉 중에 ‘보편적 언어(Ydioma Universal, Universal Language)’라는 작품이 있다는 것 아시나요?

-몰랐어요. 놀랍네요.

드로잉에서도 고야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다루죠. 전염병에 대한 공포, 그로 인한 불안, 여기에서 퍼져 나가는 미신과 같은 것들이요. 그러니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마련이고, 여기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고야는 보여주려고 한 것이죠. 제 의견으로 고야는 글로벌한 사상가였습니다.

-고야가 직접 ‘보편적 언어’라고 제목을 붙이고, 그런 주제로 작품을 남기려 했다는 것이 놀라워요. 그가 감각에만 의존한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인간의 본질적 요소를 찾아 표현하려 했다는 이야기니까요.

그럼요. 고야가 궁정화가로 일할 때 왕실 컬렉션에서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작품을 보았을 거예요. 그런 작품들에서도 영향을 받았을 거고, 또 고야는 계몽주의자들과도 아주 가깝게 지내며 새로운 시대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었어요. 많은 책을 읽기도 했고요.

그런 가운데 프랑스 혁명과 그 이후 스페인에서 펼쳐진 너무나 혼란한 상황. 군주제가 무너지는 듯하지만, 그다음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소용돌이와 같은 상황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수십 년 동안 고야의 작품을 연구했지만 이건 끝이 없는 작업이에요. 한 부분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부분이 보이고,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어요. 고야를 연구하게 된 것이 저의 커리어에서 잘한 결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예술가가 손으로 펼쳐 놓은 세계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최근 발간된 도록들에 더 많은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있습니다. 또 카프리초스 전 작품과 그가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도 읽어보세요. 고전 문학만큼 깊고 넓은 세계를 꼭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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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