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신광영]법의 빈틈에서 생겨난 ‘검사 겸 당 대변인’

입력 | 2024-08-01 23:18:00



이규원 대구지검 부부장 검사 겸 조국혁신당 대변인은 직함부터가 모순적이다.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는 검사가 정당의 대변인을 맡는 건 과거엔 상상하지 못했던 조합이다. 조국혁신당은 검찰 해체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는 정당이다. 그 당의 대변인이 검찰에서 월급을 받으며 주요 당직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빚어진 건 국가공무원법과 대법원 판례의 엇박자 때문이다. 이 검사는 총선을 한 달 앞둔 올 3월 법무부에 사표를 내긴 했다. 하지만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이 사표를 내도 중징계 사유가 있고 관련 사건으로 기소된 경우 퇴직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 검사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금지 요청서 허위 작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개월에 선고유예 판결을 받고 항소심 재판 중이어서 이 법에 따라 사표 수리가 되지 않는다. 검사 신분이 유지되는 것이므로 정치 활동도 금지된다.

▷하지만 ‘황운하 판결’이라고 불리는 2021년 대법원 판례가 이 검사에게 정치인의 길을 열어줬다. 민변 회장 출신의 김선수 대법관이 주심이었던 당시 재판부는 공직자가 사표를 내기만 하면 수리 여부에 상관없이 사직으로 간주되고, 선거 출마도 가능하다고 봤다. ‘소속기관장에게 사직원이 접수된 때에 그 직을 그만둔 것으로 본다’는 공직선거법 조항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 것이다. 그 덕에 경찰 간부 시절 울산시장 선거 개입 혐의로 재판을 받다가 사표 수리가 안 된 채로 출마해 당선된 황운하 의원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난 총선은 이 판결이 낳은 뉴 노멀이 현실화된 첫 선거였다. 이 검사와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 박은정 전 법무부 감찰담당관 등 수사·재판을 받거나 중징계 가능성이 높은 검사들이 줄줄이 사표를 던지고 출마했다. 의원 배지를 단 이 전 고검장과 박 전 담당관은 ‘당선과 동시에 기존 공직자는 사퇴 처리가 된다’는 선관위 규정에 따라 사표 수리가 됐다. 하지만 조국혁신당 비례대표로 나섰다가 낙선한 이 검사는 퇴직 처리도 안 되고, 그렇다고 정치활동을 금지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 됐다.

▷대검은 이 검사가 업무복귀 명령에 불복하자 감찰에 착수했지만 그를 복귀시킬 효력은 없는 조치다. 그렇다고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은 이 검사의 사표를 수리할 수도 없어 월급은 검찰에서 받고, 일은 당에서 하는 이중 생활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자칫하면 이 검사가 다음 선거에서 당선될 때까지 검찰이 생활비를 대주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황운하 판결이 재판 중인 공직자에게 선거 출마라는 탈출구를 열어줬듯, 지금의 엉성한 법제를 놔두면 이 검사처럼 ‘소속 기관에서 월급 받는 정치인’의 길을 걷는 공직자들이 또 나올 수 있다. 이런 코미디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의 빈틈을 메워야 한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