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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前 도쿄 올림픽 꼴찌, 파리서 ‘과테말라 사상 첫 金’ 쐈다

입력 | 2024-08-02 03:00:00

[2024 파리올림픽]
사격 여자 트랩 우승 루아노 올리바… ‘체조 올림피안’ 꿈꾸다 척추 큰 부상
리우서 사격 자원봉사자 하며 ‘새 꿈’… 도쿄 대회 3주 前 부친 잃고 흔들려
NYT “3년 만에 아주 놀라운 재기”



아드리아나 루아노 올리바(과테말라)가 지난달 31일 파리 올림픽 사격 여자 트랩에서 우승한 뒤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기뻐하고 있다. 과테말라가 올림픽에서 따낸 첫 금메달이다. 어린 시절 체조 선수였던 올리바는 척추 부상을 당해 사격으로 종목을 바꿨다. 샤토루=AP 뉴시스



“지금까지의 여정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지금도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과테말라에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사격 선수 아드리아나 루아노 올리바(29)는 자기 목에 걸린 금메달을 계속 쓰다듬었다. ‘행복한 과테말라!’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과테말라 국가가 올림픽 시상식에서 처음으로 울려 퍼지자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선 올리바는 눈시울을 붉혔다.

올리바는 지난달 31일 프랑스 샤토루 슈팅센터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사격 여자 트랩 결선에서 올림픽 기록인 45점(50점 만점)으로 2위 실바나 스탕코(이탈리아·40점)를 제치고 정상에 섰다. 종전 올림픽 기록은 43점이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올리바는 결선이 종료되기 전부터 감격의 눈물을 흘려 눈길을 끌었다. 이날 올리바는 총 50개의 타깃 중 46개의 사격을 마친 시점에 2위 선수가 순위를 뒤집을 수 없는 43점에 도달했다. 우승을 확정한 올리바는 남은 타깃 4개를 사격하는 동안 눈물을 쏟았다.

올리바의 금메달은 과테말라의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이다. 과테말라는 1952년 헬싱키 대회를 시작으로 2021년 도쿄 대회까지 여름올림픽에 14번 참가했는데 금메달리스트는 없었다. 2012년 런던 대회 육상 남자 20km 경보에서 에리크 바론도(33)가 획득한 은메달이 유일한 메달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 사격 남자 트랩(지난달 30일)에서 장 피에르 브롤(42)이 동메달을 딴 데 이어 이날 올리바가 과테말라의 올림픽 첫 참가 이후 72년 만에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베르나르도 아레발로 과테말라 대통령은 X(옛 트위터)를 통해 “올리바가 금빛 글자로 과테말라의 올림픽 역사를 새로 썼다”고 밝혔다.

체조 선수 시절의 모습. 올리바 인스타그램 

어린 시절 올리바의 꿈은 체조 선수로 올림픽 무대를 밟는 것이었다. 3세 때부터 체조를 배운 그의 목표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출전이었다. 하지만 올리바는 16세이던 2011년에 체조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그해 올림픽 예선을 20일 앞두고 훈련 도중 허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았는데 척추뼈 6개가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이때 재활을 도운 의사가 척추에 영향을 덜 주면서 계속할 수 있는 운동으로 추천한 종목이 사격이었다. 올리바는 “절망에 빠져 있던 내게 새로운 문이 열린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은 올리바가 다시 올림피안의 꿈을 키우게 된 계기였다. 당시 올리바는 자원봉사자로 리우 올림픽에 참가했는데, 공교롭게도 사격 종목에 배정됐다. 올리바는 “과테말라 사격 대표팀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경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올림픽 출전의 꿈을 꾸게 됐다”면서 “체조 선수가 아니라면 사격 선수로 올림픽에 도전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올리바는 2018년 아메리카 사격 챔피언십에서 트랩 은메달을 따는 등 과테말라 국가대표로 꾸준히 국제 대회에 나서 실력을 키웠고, 2021년 도쿄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올림픽 개막을 3주 앞둔 시점에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올림피안이 된 딸이 보고 싶을 것”이라는 어머니의 말에 출전을 강행했지만, 성적은 좋지 못했다. 심리적으로 흔들린 올리바는 도쿄 올림픽 여자 트랩에서 최하위(26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팬아메리칸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부활을 알린 올리바는 파리 올림픽을 통해 여자 트랩 세계 최강자로 우뚝 섰다. 올리바는 “다시 올림픽에 나오니 아버지 생각이 난다”면서 “아버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NYT는 올림픽 꼴찌였던 올리바가 3년 만에 챔피언이 된 것을 두고 “아주 놀라운 재기”라고 평가했다. 잇따른 역경을 이겨내고 과테말라의 영웅이 된 올리바는 올림픽 공식 정보 사이트인 ‘마이 인포’를 통해 “행복은 목적지에서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긍정적 발자취를 남기며 목표를 향하는 과정이 행복이다”라고 밝혔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