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위의 푸른 솔과 길 위의 먼지, 구름과 진흙, 이런 사이인데 어찌 친해질 수 있나요.
세상 사람들은 야윈 명마를 싫어하건만, 그대만은 가난한 인재라도 마다않으셨지요.
천금을 준다 해도 성격은 못 바꾸지만, 일단 약속했다면 저는 목숨까지도 내놓지요.
이 서생이 고마움을 모른다 마소서. 작은 정성이나마 은인에게는 꼭 보답을 하니까요.
(山上靑松陌上塵, 雲泥豈合得相親. 擧世盡嫌良馬瘦, 唯君不棄臥龍貧.
千金未必能以性, 一諾從來許殺身. 莫道書生無感激, 寸心還是報恩人.)
―‘호남의 최중승에게 올리는 시(상호남최중승·上湖南崔中丞)’ 융욱(戎昱·744∼800)
자신을 막료로 발탁한 데 감읍하여 어사중승(御史中丞) 최관(崔瓘)에게 올렸다는 시. 상관과 자신은 푸른 솔과 먼지. 구름과 진흙만큼이나 격차가 현격하여 도무지 친해질 수 없는 사이다. 한데도 상관은 시인의 재능을 인정했다. 아무리 명마라도 기력이 쇠하면 나 몰라라 외면하고, 잠재력 있는 인재라도 빈천하면 내치기 마련인 게 세상 인심인데도 말이다. 물론 시인은 재물에 쉬 굴복하여 성격이 돌변하는 속물이 아니다. 세상의 편견에 의연히 맞서 인재를 챙겨 주는 상관에게 생명을 걸고 보은하겠노라는 다짐이 이래서 더 믿음직하다. 상관에 대한 무한한 찬사 속에 시인의 견결한 기개와 지조가 은연중에 녹아 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