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한 번쯤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1929년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이 ‘대공황’은 10년간 전 세계의 경제 시스템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음식을 구하지 못할 정도의 궁핍함이 발생해 민족주의의 부활, 정치적 극단주의의 발생 등 2차 세계 대전 발발의 원인이 될 정도로 세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히 대재앙이라고 할 법한 이 ‘대공황’은 게임 시장에도 한차례 불어닥친 적이 있었습니다. 1981년 39억 달러(2023년 기준 97억9000만 달러, 한화 약 13조5363억 원)에 이르던 미국 게임 시장을 단 2년 만에 1억 달러로 추락시킨 ‘1983년 북아메리카 비디오 게임 위기’ 이른바 ‘아타리 쇼크’로 불리는 사건이 그것이죠.
아타리가 뉴멕시코에 매장한 E.T 게임팩
황금기를 누리던 미국 게임 시장
시계를 1970년대로 돌리면 당시 미국 게임 시장은 엄청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PS),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 닌텐도의 스위치 등으로 시장이 정리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게임을 고르는 것보다 게임기를 고르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정도로 수많은 게임 기기가 경쟁을 벌이던 시기였죠.
이 경쟁의 시대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낸 회사는 바로 ‘아타리’였습니다. 미국 전역에 동전이 모자라게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퐁’을 개발한 놀런 부슈널이 창립한 ‘아타리’는 게임기를 개발하던 도중 자금난에 허덕이자 투자자를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타리 2600, 출처 게임동아
자금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나서던 놀런 부슈널 앞에 나타난 회사는 다름 아닌 영화사 ‘워너 브라더스’였습니다. 게임 시장의 성장에 주목하던 ‘워너브러더스’는 약 2천 8백만 달러에 이르는 투자를 단행하는데, 이 투자금을 통해 개발된 것이 1977년 출시된 세계 최초로 컴퓨터 그래픽을 탑재한 게임기 ‘아타리 2600’이었습니다.
황금기의 절정에서 시작된 위기
‘아타리 2600’의 성공을 목격한 ‘워너브러더스’는 ‘아타리’의 완전 인수를 추진하여 ‘아타리’를 자회사로 편입시킵니다. 그리고 1980년까지 미국의 경제 부흥기와 함께 ‘아타리’는 매년 최고 매출을 경신해 나갔고, 워너브러더스 그룹 전체 매출의 절반을 게임 부문에서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성장세를 기록했습니다.
70~80년대 아타리 게임들. 출처 게임동아
하지만 비극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워너브러더스는 경영 효율성 증가와 성과 증진을 위해 이른바 ‘전문가’들을 대거 아타리의 경영진으로 배치했는데, 문제는 이 ‘전문가’들이 게임에 완전한 ‘문외한’이었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많은 개발자가 이 정책에 반발하며 이탈하기 시작했고, 이 퇴사자 중에는 창립자인 놀런 부슈널도 있었습니다. (이때 나간 인원들이 창립한 회사가 얼마 전 MS에 무려 687억 달러에 인수된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액티비전’이었습니다.)
경직된 회사 분위기, 핵심 인력의 이탈 등으로, 성장 동력을 잃어버린 ‘아타리’는 점점 수준 낮은 게임들만 출시하게 되었고, 후발주자들에게 밀려 매출이 감소하게 되죠. 이때 이 ‘전문가’들은 또 하나의 자충수를 두게 되는데, 바로 검증 단계를 거치지 않고 최대한 많은 게임을 ‘아타리’의 이름으로 판매하는 물량전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유명 개발자도 검증할 만한 시스템도 없는 상황에서 등장하는 게임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더욱이 ‘워너브러더스’의 성공을 본 다른 대기업들도 앞다투어 게임 부서를 만들었고, 이들도 아타리의 물량전에 뛰어들면서 미국의 게임 시장은 순식간에 저질 게임으로 가득해졌습니다.
‘아타리 쇼크’를 촉발한 E.T
이 곪아가던 미국 게임 시장의 문제가 폭발하게 된 시발점은 다름 아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T’였습니다.
E.T 게임표지. 출처 게임동아
1982년 ‘워너브러더스’는 ‘E.T’의 판권을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구매한 뒤 아타리 개발진에게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추어 게임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는데, 문제는 이 모든 일이 크리스마스 시즌을 불과 5주 앞둔 상황에서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5주 만에 블록버스터 게임을 개발해야 한다는 황당한 지시를 받은 ‘아타리’의 개발진은 최선을 다해 게임을 개발했지만, 날림으로 개발한 이 게임에는 온갖 버그와 저질 콘텐츠로 가득했고, 결국 ‘E.T 게임’은 곧 대규모 반품 사태를 겪게 됩니다.
이렇게 엄청난 손해를 본 ‘아타리’의 경영진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더욱 자극적인 저질 게임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재고로 남은 게임까지 덤핑 할인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게임사들 모두 이 할인 경쟁에 뛰어들게 만들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유저들마저 이 행태에 등을 돌리게 되었고, 1983년부터 게임 시장의 매출은 급격히 하락했습니다. 설상가상 게임 시장 붐을 타고 자금을 투자한 기업들이 수익이 감소하는 것을 보자 투자금을 황급히 회수했고, 이에 많은 게임사가 자금난에 허덕이며 ‘줄도산’하기 시작했죠.
미국 게임시장 동향. 출처 게임동아
이 ‘아타리 쇼크’는 1980년 39억 달러에 달하던 북미 게임 시장을 불과 2년 만에 단 1억 달러로 곤두박질치게 했고, 수많은 게임사들을 문 닫게 했습니다. 더욱이 시장을 지키던 기업들이 사라지자 닌텐도, 세가 등의 일본의 기업들이 대거 미국에 진출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결과로 이어졌죠.
2000년대 마이크로소프트가 Xbox를 출시하기 전까지 20년간 미국의 게임 시장은 사실상 일본 게임사들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였고, 이때 들어온 일본 게임을 접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일본 문화에 익숙해져 이를 동경하게 되는 효과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아타리 쇼크’는 전문성을 잃어버린 경영진의 그릇된 방향성, 저질 제품의 난립, 윤리 의식의 부족 그리고 수익만 좇은 개발사들의 부도덕함 등 여러 요소가 결합해 벌어진 사건입니다.
비록 게임 시장이라는 작은(?) 분야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이 ‘아타리 쇼크’가 다른 산업군에도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도 있듯 한 산업을 송두리째 흔든 이 ‘아타리 쇼크’를 반면교사 삼아 앞으로의 일에 대비하는 것은 어떨까요?
조영준 게임동아 기자 ju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