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여성 최초의 노벨상 작가… 타계 5주기 맞아 데뷔작 재출간 한 소녀의 삶 비극으로 내몬… 인종차별 폭력성 생생히 그려 ◇가장 파란 눈/토니 모리슨 지음·정소영 옮김/272쪽·1만5000원·문학동네
저자가 2008년 아프리카 작가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의 출간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1993년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저자는 유려한 필체로 흑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신간은 1993년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저자가 1970년에 쓴 데뷔작이다. 5일 그의 타계 5주기를 기념해 재출간됐다. 책은 1940년대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미국의 현실을 흑인 소녀 페콜라의 비극을 통해 풀어낸다. 미국의 노예제는 남북전쟁 후인 1865년 폐지됐지만, 여전히 흑인들은 열악한 현실을 견뎌야 했다. 저자는 1993년에 쓴 서문에서 “한 인종을 통째로 악마화하는 기괴한 현상이 여자아이라는 사회의 가장 연약한 구성원 속에 어떻게 뿌리박게 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소설은 흑인 소녀 클로디아의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진행된다. 부모님과 언니 프리다와 함께 사는 클로디아의 집에 갈 곳이 없어진 소녀 페콜라가 떠맡겨진 것이다. 폭력적인 페콜라의 아버지 촐리는 집에 불을 질렀고, 어머니 폴린은 가정부로 일하는 백인의 집에 살며 딸을 무시한다. 클로디아의 어머니는 딸을 구박하다가도 그녀가 아프면 정성껏 돌보지만, 페콜라에게는 아무도 없다.
책의 서정적인 문체는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갈망하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페콜라의 감정에 더욱 이입하게 한다. 흑인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신체를 혐오하게 된 사람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딸에겐 가해자지만 인종차별의 또 다른 피해자이기도 한 페콜라 부모의 트라우마 또한 소설을 다채롭게 한다. 푸른 눈을 갖게 해달라는 페콜라의 소망이 이뤄지길 바라면서도 그렇지 않을 것을 알기에 한편으론 씁쓸해진다.
어린아이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순수한 문체는 끔찍한 비극을 더 극적으로 드러낸다. 빈곤과 차별이 대물림되는 흑인 사회의 단면을 제대로 보게 한다. 흑인이 문학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던 시기, “내가 읽고 싶은 소설을 쓰겠다”며 작가가 된 저자의 반(反)인종주의 문학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책이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