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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사회적 문제 드러내는 한국형 미스터리 되길

입력 | 2024-08-03 01:40:00

최근 급부상한 오컬트-누아르 등
사회 부조리 다루는 방식에 한계
사적 응징보다 공적 책임 환기를
◇이것은 유해한 장르다/박인성 지음/252쪽·2만원·나비클럽





이 책의 부제는 ‘미스터리는 어떻게 힙한 장르가 되었나’다. 책 제목은 얼마간 ‘미스터리하다’. 대약진운동 시대 중국이 참새를 박멸하려 했듯이 미스터리 장르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박멸을 지시할 독재자는 없다.

하지만 “범죄 드라마와 영화를 아이들이 보고 배운다”며 눈살을 찌푸리는 ‘어른들’은 있다. 저자는 미스터리가 ‘관습과 문법에 있어서 가장 치밀하게 발달한 장르’이면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장르’라고 설명한다. 말하자면 제목은 일종의 반어(反語)다. “미스터리는 유해한 이야기가 아니라 유해함에 대한 이야기다. 진실을 알려면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들어야 한다. 좋은 미스터리는 사회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제공한다.” ‘범죄라는 형태로 드러난 사회적 문제를 공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이야기 모델이 미스터리’라는 것이 이 책의 설명이다.

문학평론가인 저자의 시선은 ‘셜록 홈스’ 시리즈에서 최신의 서사와 더불어 소설에서 영화와 드라마, 게임까지를 거침없이 오간다. ‘퇴마록’ ‘곡성’ ‘파묘’로 대표되는 오컬트 장르, 역사와 공상과학(SF) 미스터리 등을 차례로 분석하며 저자는 한국의 경우 특히 영화로 꾸준히 제작되고 관객들의 선호도 분명한 누아르 장르가 흥미롭다고 말한다.

고전적인 하드보일드 탐정이 부도덕한 사회로부터 스스로 거리를 둔다면 한국적 네오 누아르의 주인공은 부도덕한 세계에 섞여 있으면서(심지어 그 최전선에 있으면서) 스스로 탈출을 꿈꾼다. 개인이 믿을 만한 구원의 손길은 공적 체제가 아니라 가족을 중심으로 한 혈연 집단에서 오고, 이는 ‘자경단’에 비유된다. 지난해 나온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이 대표적 예 중 하나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은 가족과 혈연관계 때문에 청부살인 업계에 뛰어들고 그 때문에 몰락한다.

이처럼 미스터리 장르는 법률과 제도, 사회라는 공적 영역에 대해 ‘사적인 방식에 대한 대항 서사’가 되지만 이런 측면에서 한국 미스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트릭의 정교함이나 소재의 강렬함에서 갈 길이 멀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미스터리가 오늘날 한국 독자들에게 어떤 사회적 책임을 환기할 수 있는가의 측면에서다. 미스터리가 대중적 장르가 된다는 것은, 대중 각자가 개인적 만족을 추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을 매개할 수 있는 공공의 영역을 구성하는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가 강조하는 부분은 지역성, 즉 ‘로컬리티’로 향한다. 범죄에 얽힌 사연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화된 억압이나 소외와 이어져 있을 때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 미스터리의 고유함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그 안내판을 세우는 일이야말로 중요하다. 사회적 증상으로서의 범죄자에 대한 미스터리 특유의 논리적 사연이 더해질 때 한국의 본격 미스터리는 대중적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부산가톨릭대 교수 및 교보문고 문학팀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