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되는 두려움 ‘포모 증후군’ 유행-대인관계 뒤처진다는 불안에 SNS 집착하며 남과 비교하고 좌절 배제되면 끝이란 사회적 생존본능… 삶에 불만 클수록 소외불안 높아 낙오됐다는 느낌은 실제보다 과장… 자존감 키우고 ‘허세계정’ 멀리해야
금요일 오후 10시, 지친 몸으로 귀가해 샤워하고 푹신한 거실 소파에 드러눕는 상상을 해 보자. 이제 가장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시작한다. 일주일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그런데 아뿔싸! 무심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앱을 연 게 잘못이었다. 그날 저녁 나만 빼고 모인 친구들 사진을 보고 말았다. 다들 세상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다. 차라리 보지 말 것을…. 1분 전까진 소파 위가 천국 같았는데, 나 홀로 외딴섬에 고립된 느낌이다.
소외당하는 상황이 즐거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유난히 ‘나만 빼고’ 일어나는 일을 못 견뎌 하는 사람도 있다. 나 없이 그들끼리만 돈독한 사이가 되진 않을지, 나는 모르는 이야깃거리로 소외당하지 않을지 걱정돼서다. 더 나아가 ‘누가 날 싫어하나?’ ‘내가 뭘 놓쳤나?’ 하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나 빼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SNS를 강박적으로 확인하기도 한다.
먹고 입고 마시는 각종 트렌드에 민감한 ‘트민남(男)’ ‘트민녀(女)’도 비슷하다. 다른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화에서 내가 소외될까 걱정한다. 올 상반기만 해도 SNS에서 두바이 초콜릿, 생과일 하이볼, 요거트 아이스크림같이 빠르게 뜨고 진 먹거리 인증샷이 수없이 올라왔다. 어떤 이들은 ‘인싸템(인사이더+아이템·인기 많은 사람들이 쓰는 물건)’을 사려고 수십 km 떨어진 가게까지 가서 ‘오픈런(개장과 동시에 매장으로 뛰어들기)’을 하거나, 몇 시간씩 줄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 소외감이 만들어낸 공포
소외당할까 봐 걱정하며 사는 건 요즘 사람만의 특징은 아니다. 2000년 전 고대 로마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도 대세에서 소외될까 봐 불안해 했다. 키케로는 수도를 잠시 떠나 있을 때마다 하인을 시켜 중앙 정치 쟁점부터 스캔들, 가십 같은 자잘한 이야기까지 모조리 편지로 받아 봤다고 한다. 그에게 소식을 전달하는 팀도 있었다. 일종의 인간 SNS를 둔 셈이다.
디지털 시대 들어 이같이 오래된 두려움에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말로는 소외불안증후군 또는 고립공포증후군이라고 한다. 나 혼자 소외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의미한다. 미국 기업가이자 ‘포모 사피엔스’ 저자 패트릭 맥기니스가 2004년 소비자의 조바심을 이용한 마케팅 용어로 처음 소개하며 알려졌다. 이후 심리학 분야에서 대인관계 소외감과 SNS 중독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 “나 혼자잖아?” 뇌에선 비상 선포
양상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소외 불안이 소비, 대인관계, 투자를 비롯해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는 이유는 집단에 소속돼 안정감을 찾고 싶어 하는 인간 기본 욕구와 관련돼 있어서다.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 욕구를 5단계로 나눴다. 1단계는 먹고 자는 생리적 욕구, 2단계는 안전 욕구다. 1, 2단계에서 최소한의 생존 욕구가 채워지면 3단계로 소속감과 애정을 갈망한다. 신체적 생존 다음으로 중요한 사회적 생존 욕구다.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되면 사회적 생존에서 낙오되는 강렬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뇌에서도 소외당하는 상황에 놓이면 생존 위협 신호로 인지한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를 관찰한 연구에 따르면 따갑거나 뜨거운 신체 통증에 반응하는 뇌 영역과 대인관계에서 소외됐을 때 반응하는 뇌 영역이 같다. 몸이 아플 때나 마음이 아플 때나 뇌는 똑같은 위급 상황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그래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네이선 드월 미국 켄터키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 결과 대인관계로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때 중추신경에 작용하는 타이레놀 같은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진통제를 먹으면 심적 고통이 완화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 모임 못 나가면 불안… 소속감 갈망
소외불안이 큰 사람들은 유행을 따르고 많은 모임에 나가는 등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으로는 외로움, 우울감, 낮은 자존감 같은 심리적 결핍이 있을 수 있다. 모임에 못 나가면 불안해하고, 혼자 있을 땐 다른 사람들 뭐 하나 신경 쓰여 SNS를 확인하느라 편히 쉬지도 못한다.
앤드루 프시빌스키 영국 옥스퍼드대 인간행동기술학 교수는 소외불안을 느끼는 사람들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22∼65세 2079명을 조사했다. 소외불안 수준과 함께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대인관계나 자기 능력에 만족하는 수준은 어떤지, 평소 어떤 기분으로 지내는지를 측정했다.
그 결과 전반적인 삶과 대인관계, 자기 능력을 못마땅히 여기는 사람일수록 소외불안을 더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좌절, 우울, 불안,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도 소외불안 수준이 높았다. 미 휴스턴대 심리학과 연구팀의 비슷한 연구에서는 자존감이 낮고 ‘더 잘해야 한다’며 자신을 몰아붙이는 사람일수록 소외불안이 높았다.
즉, 자신과 삶에 관련한 만족감이 전반적으로 낮을 때 외부 집단에 소속돼 안정감을 찾으려는 욕구가 높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결과는 10, 20대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에서 고르게 나타났다.
● ‘낙오됐다’는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소외불안의 핵심 문제는 ‘나는 중요한 존재인가’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가’ 같은 질문일 수 있다. 자기 능력이나 존재 자체를 못마땅히 여기고 삶이 불만족스러운 상황에서는 유행을 따르고 SNS에 집착한들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우선 나만 낙오됐다는 느낌은 대부분 실제보다 왜곡된 경우가 많기에 불안감이 과장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인관계, 소비, 투자 등에서 남들과 비교하며 ‘나는 왜 이 모양이지’ 하는 질투심, 소외감, 조바심을 느낀다면 자신이 소외불안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박 교수는 “어쩌면 대한민국 전체가 상위 몇 %의 삶과 비교하며 ‘낙오됐다’고 여기는 함정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며 “하루하루 나아지는 내 모습을 스스로 칭찬해 주며 만족감과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핵인싸(아주 인기가 많은 사람)’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서 거리를 두는 것도 방법이다. 실제로 SNS에서 친분, 부(富), 행복을 과장해 ‘인싸력(力)’을 자랑하는 화려한 사진을 보면 뇌의 보상회로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쾌감, 부러움, 질투가 동시에 일어난다. 이런 느낌은 열등감, 초조함, 우울함까지 일으킬 수 있어 심각한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박 교수는 “허세가 심한 사람의 SNS 계정을 차단하거나 단체 채팅방에서 나오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