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에 있는 지리산 뱀사골 계곡은 반야봉에서 산내면 반선마을까지 지리산 북사면을 흘러내리는 총연장 약 14km 골짜기다. 봄엔 철쭉이 피고, 여름엔 짙은 녹음 사이로 삼복더위를 얼어붙게 하는 냉기가 감돈다. 뱀사골 가을 단풍은 피아골 단풍과 쌍벽을 이룬다.
● 지리산 뱀사골 신선길 트레킹
전북 남원에 있는 지리산 뱀사골에서 와운마을로 올라가는 계곡길.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신선길이다.
어느 해 이를 이상히 여긴 한 승려가 기도자로 뽑힌 승려의 옷에 독을 묻혀 놓았다. 이튿날 연못 뱀소 근처에 큰 이무기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이후 이 계곡을 이무기(뱀)가 죽은(死) 골짜기라는 뜻으로 뱀사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세상을 떠난 스님들이 절반쯤 신선이 됐다는 의미로 계곡 앞마을은 반선(半仙)마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신선이 될 수 있는 뱀사골 트레킹은 시작부터 1.3km 구간에는 나무 덱으로 만든 무(無)장애 탐방로로 조성돼 노약자나 임산부도 쉽게 걸을 수 있다. 탐방로 중간중간에 계곡으로 내려가 잠깐 발을 담그고 신선놀음을 할 수도 있다.
계곡에는 빨치산들이 전단이나 자료를 등사하던 석실, 멧돼지들이 목욕했다는 연못 돗소, 용이 머리를 흔들며 승천했다는 요룡대 같은 기암괴석과 에메랄드빛 물이 어우러진 명소가 잇따른다.
화개재와 와운마을 갈림길에서 가파른 산길을 택하면 지리산 천년송이 있는 와운마을로 통한다. 해발 800m에 자리 잡은 1300년 된 마을. 산이 높고 골이 깊어 구름도 누워서 간다는, 하늘 아래 첫 동네다.
와운마을 뒤편 언덕에 있는 지리산 천년송.
이 천년송은 할머니 소나무로 불리는데 20m 더 올라가면 할아버지 소나무도 있다. 화려하고 우람한 할머니 소나무와 달리 할아버지 소나무는 ‘S’자 모양의 맵시 있는 몸매를 자랑한다. 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음력 정월 10일에 할아버지 소나무 앞에서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비는 당산제를 지낸다. 두 그루 노송 덕에 와운마을은 신선이 살 만한 이상향으로 소문 났다.
천년송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천년송 가는 길 펜션 & 식당’이 있다. KBS 다큐 ‘지리산 와운골, 아버지의 산’에 나온 공안수 씨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다. 4대째 와운골에 터를 잡은 이 가족은 해발 1500m가 넘는 험준한 지리산을 오르내리면서 송이버섯과 노루궁뎅이버섯을 캐며 살아왔다고 한다. 이곳에서 시원한 오미자차 한잔을 들이켰다. 한여름 무더위가 싹 가셨다.
꼭 찾아가 볼 곳이 또 있다. 폭포다. 우리나라 폭포 대부분은 건폭(乾瀑)으로 봄가을에는 물이 마른다. 비가 많은 한여름엔 물줄기가 장쾌하게 쏟아지는 귀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남원 주천면 덕치리에 있는 구룡계곡에도 약 30m 길이의 구룡폭포가 있다. 오래전부터 남원 소리꾼들이 ‘산공부’를 하던 곳이다. 남원 출신 오지윤 명창은 어릴 적부터 이 폭포 아래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소리를 들으며 목청을 틔웠다고 한다.
● 지리산 자락 숨은 명소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내 숲을 바라볼 수 있는 통창.
전북 완주 ‘아원고택’은 전해갑 건축가가 디렉팅한 미술관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갤러리 곳곳에는 잠시 쉬며 ‘숲멍’(숲을 바라보며 잡념을 떨치고 멍하게 있기)을 할 수 있는 통창이 있다. 소나무 숲과 멀리 보이는 지리산 능선 그리고 하늘의 조화가 무척 아름다운 창이다.
지역 출신 작가 작품을 주로 소개하는 이 미술관에선 남원 출신 김병종 작가 초기작 ‘바보 예수’부터 근작인 ‘풍죽’ ‘송화분분’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미술관을 지을 당시 김병종 작가는 미술관이 지리산의 아름다움에 잘 녹아들면서, 납작 엎드린 듯한 모양새의 ‘겸손한 미술관’이 되길 바랐다고 한다.
김병종 작가의 ‘생명의 연가-탄생, 젊음, 침잠’.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김 작가는 ‘화첩기행’을 비롯한 많은 저서를 펴내 글 쓰는 화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미술관에는 에세이, 시나리오, 희곡 같은 그의 육필 원고도 전시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전북지사는 올해 ‘강소형 잠재 관광지’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을 선정했다. 강소형 잠재 관광지는 알려지지 않은 지역 유망 관광지를 선정해서 한국관광공사와 지방자치단체가 힘을 합쳐 육성해 나가는 사업이다.
지리산 실상사 보광전 앞 석등과 돌계단.
실상사는 그 한가운데 꽃밥 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일까. 실상사 천왕문 밖 연못에는 하얀색, 분홍색 연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실상사 안으로 들어가 보면 텅 빈 고요와 피안의 느낌을 받는다. 대웅전 역할을 하는 보광전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보광전 앞 쌍둥이 3층 석탑과 석등은 창건될 때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석등 앞에는 작은 돌계단이 놓여 있다. 석등에 불을 켤 때 올라가던 계단이라고 한다.
약사전에는 지리산 천왕봉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철불(약사여래철제좌상·보물 제41호)이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실상사는 조선 세조 때인 1468년 원인 모를 큰불이 난 데 이어 정유재란 중에 전소됐다고 한다. 숙종 때인 1680년 중건(重建)되기까지 200년 이상을 폐허가 된 빈터에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던 철불이다.
그런데 철불의 손만 매끈한 나무로 돼 있어 이상하다. 약사여래철불은 일제강점기 일제가 양손을 절단했다는 이야기가 구전돼 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2013년 3월 철불 보존 처리를 하는 도중 잘린 손이 철불 몸 안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철제 수인(手印)은 현재 약사전 유리상자 속에 전시해 놨고 철불 손은 나무로 복원해 놨다.
그리스 산토리니섬 같은 허브밸리 카페 ‘아티나’.
글·사진 남원=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