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곳곳 ‘오버 투어리즘’ 몸살 산토리니 하루 관광객, 주민 수 육박… 바르셀로나엔 연간 인구 7.6배 방문 관광 물가, 집값 상승 부추기고… “지역 문화재 훼손” 불만 속출 분노한 주민들, 거리로 나와 시위… “관광 사업 멈춰라” 단식 투쟁도 각국, 입장료 도입해 여행 억제… 일부선 관광객과 공생 방법 모색
관광객들로 가득차 발 디딜 틈도 없는 그리스 산토리니섬 골목길의 현실. 사진 출처 인스타그램
“오늘도 1만7000명이 우리 섬에 도착한다. 또 힘든 하루가 다가왔다.”
하얀 외벽에 바다를 닮은 파란색 지붕. 한국에서도 인기 신혼여행지로 꼽히는 섬. 세계적인 인기 관광지 그리스 산토리니섬 주민들은 요즘 매일 아침이 두렵다.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산토리니섬의 파나기오티스 카발라리스 시립단체회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X에 이 같은 한탄을 쏟아냈을 정도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산토리니섬의 인구는 1만5000명. 섬 거주민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괴롭단 얘기다. 나중에 관광객 수는 1만1000명으로 정정됐다. 하지만 여전히 과한 규모다. 섬이 외지인으로 가득 차 혼잡이 예상되자 카발라리스 회장은 주민들에게 “웬만하면 집에 있으라”고 조언했다.
관광객 폭증으로 인해 고통받는 건 산토리니섬뿐만이 아니다. 팬데믹이 끝난 뒤 몇 년을 참았던 여행 욕구가 폭발하면서 최근 세계 곳곳이 ‘오버 투어리즘(과잉 관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요 관광지 주민들은 “외지인들이 몰려들어 일상생활마저 힘들 정도”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특히 유럽의 오버 투어리즘은 한계를 넘어서고 있단 평가마저 나온다. 여름 바캉스 기간이 길고 국경을 쉽게 넘나들 수 있다 보니 유독 두드러진다.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지역 문화재를 훼손하는 경우까지 생기며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이에 이탈리아나 스위스 등에선 관광객을 줄이려 입장료를 받고, 스페인에선 시민들이 ‘관광객 반대’ 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 “우리 도시, 관광객에게 안 팔아”
올해 6월 1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도심에서 시위대들이 ‘관광객은 집으로 가라’란 슬로건을 들고 관광객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시위에는 약 500명의 주민이 참여했다. 바르셀로나=AP 뉴시스
바르셀로나 관광청에 따르면 지난해 이 도시 방문자는 약 1220만 명. 도시 인구(약 160만 명)의 7.6배에 이르렀다. 바르셀로나는 유명 건축물과 요리, 프로축구팀 FC바르셀로나 등 이른바 ‘관광 자산’이 넘친다. 공항과 항구 인프라 등이 잘 갖춰져 관광객들이 항공편과 크루즈선으로 찾아오기 쉽다. 바르셀로나 지역 정치인들이 크루즈 관광객들을 ‘메뚜기 떼’에 비유해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북아프리카 서쪽 해안에 있는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도 ‘투어리즘 포비아(Tourism Phobia·관광 공포증)’가 심각하다. 국내 한 예능 프로그램 촬영지로도 입소문을 탄 이곳은 검고 흰 모래가 이색적인 화산섬으로 유명하다. 인구가 약 221만 명인데 지난해 관광객은 6배가 넘는 1390만 명이 찾아왔다.
올 4월엔 좀 더 극단적인 시위마저 벌어졌다. 카나리아 제도의 가장 큰 섬인 테네리페섬에서 ‘카나리아 제도는 이제 지쳤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주민들이 단식 투쟁에 나섰다. 이들이 바라는 건 호텔 및 해변 리조트 건설 같은 관광 개발 사업의 중단이다. 단식 투쟁 단체의 루벤 페레스 플로레스 대변인은 현지 언론에 “(지역 당국이 우리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이 사람들은 목숨을 걸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이탈리아 북부의 ‘바다 위의 도시’ 베네치아에선 올 4월 관광객 유입을 제한하기 위한 도시 입장료 5유로(약 7400원) 도입을 두고 찬반 시위가 뜨거웠다. 결국 시 정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보호하고 베네치아를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겠다며 입장료 부과를 결정했다. 하지만 일부 시민들은 “입장료만으로 오버 투어리즘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도시 이미지만 나빠진다”며 반대하고 있다.
사실 관광객이 늘면 국가 경제에 분명 도움이 된다. UNWTO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 관광 수입은 1조5000억 달러(약 2060조 원)에 이른다. 이 중 유럽은 6600억 달러로, 어느 대륙보다도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런데도 주민들이 관광객을 거부하는 주된 이유는 물가가 치솟고 관리 비용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 관광협회는 “관광객이 늘면서 이 지역 물가가 오르자 공공 서비스가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관광 수익이 늘어나도 지역 주민에게 고르게 분배되지 않아 주민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불만도 나온다.
오히려 관광객 탓에 주민들의 주거난이 심각해지기도 한다. 관광객을 받으려는 호텔이나 숙박 예약 플랫폼 에어비앤비의 주택이 늘다 보니 정작 실수요자들이 적절한 비용으로 생활할 수 있는 주택이 줄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 동부의 발레아레스 제도의 이비사섬에선 주민들이 집을 구하지 못해 차량이나 텐트에서 살기도 한다. 이 지역 시민경비대 IGC 측은 영국 BBC방송에 “경비 3, 4명이 섬의 차량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을 정도다.
실수요자를 위한 주택이 부족하니 집값도 계속 뛰고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주택 임차료는 지난 10년간 약 68%가 올랐다. 바르셀로나에서 교사로 일하는 카를로스 라미레스 씨(26)는 미 CNN방송에 “바르셀로나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2∼4명씩 같이 사는 것”이라며 “현지인, 특히 젊은이들이 도시에서 자기 공간을 갖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외지인들이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점도 주민들의 심기를 건드린다. 지난해 이탈리아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선 한 독일 남성이 16세기에 만들어진 분수에서 사진을 찍으려다 조각상을 망가뜨려 지역민들의 분노를 샀다. 피렌체시는 동상 훼손으로 들어갈 보수 비용을 약 5000유로로 추산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선 영국 남성들이 눈총을 받았다. 주말에 저렴한 여행상품으로 건너와 술집을 돌아다니며 공공장소에서 노상 방뇨를 하고 운하에 구토하는 장면이 목격됐기 때문이다. 결국 암스테르담시는 지난해 18∼35세 남성 관광객의 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처벌을 경고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일각에선 최근 관광객 증가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관광지 주민들에 대해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관광업을 통해 지역경제가 발전했고, 수입도 늘었는데 불편이 커지자 관광객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근시안적인 생각이라는 것.
실제로 오버 투어리즘으로 인한 불만이 가장 많이 나오는 유럽의 경우 관광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세계관광및여행협회(WTTC) 통계를 인용해 2022년 기준 유럽 전역에서 약 3470만 명이 관광업에 종사했고, 지중해 지역 국내총생산(GDP)의 약 15%가 관광에서 발생한다고 전했다. 그리스 산토리니섬 GDP의 90%는 관광업이 창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이터통신도 스페인의 관광 로비단체 등을 인용해 지난해 스페인의 경제 성장을 관광업이 이끌었다고 전했다.
● 쓰레기 청소하면 무료 투어
이탈리아 서북부 해안을 따라 위치한 다섯 개의 절벽 마을 친퀘테레는 낭만적인 해안 산책로 ‘사랑의 길’을 지난달 12년 만에 재개장하며 입장료를 도입했다. 방문객들은 사전에 5유로의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입장 인원도 시간당 400명으로 제한했다. 방문객들은 가이드 안내를 받으며 리오마조레에서 마나롤라까지 한 방향으로만 걸을 수 있다.
2020년 종영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인 스위스 호수 마을 이젤트발트도 드라마 팬들이 몰리자 통행료 5프랑(약 7800원)을 받기 시작했다. 입장료 외에도 도시로 들어오는 크루즈선을 줄이거나 신규 호텔 건설을 금지하는 규제들도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관광객 억제책도 한계가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올해 도시 입장료 5유로를 도입했지만 관광객이 오히려 늘었다고 한다. 베네치아는 내년에 입장료를 10유로로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관광객 수 줄이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관광객 줄이기 대신 관광객과의 공생을 모색하는 도시들도 있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관점 바꾸기’ 전략을 쓰고 있다. 관광객들이 ‘암스테르담은 파티의 도시’란 인식을 버리고 지역 주민의 시각에서 도시를 경험하게끔 유도하는 전략이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은 관광객의 친환경 활동을 장려하는 ‘코펜페이’란 시범 사업을 도입했다. 수로에 떠다니는 쓰레기를 줍거나 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박물관을 방문하거나 도시 정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면 관광 혜택을 준다. 예컨대 현지 환경 비영리기구 ‘그린카약’은 녹색 카약을 타고 시 수로를 따라 물에 떠다니는 쓰레기들을 줍는 봉사자에게 무료 수상 투어를 해준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