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빌미 없이 비무장지대 이북에 낙하 가능… 국제법 따른 정당한 자위권 행사
7월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경내에 북한이 살포한 오물풍선 1개가 떨어졌다. 대통령실 청사 인근에 오물풍선이 떨어진 적은 있어도 경내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대통령실 경내에 북한 오물풍선이 떨어진 것 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이에 대한 안보당국의 대응이었다.
‘위험물’ 北 오물풍선
6월 9일 북한이 살포한 오물풍선이 서울 잠실대교 인근에서 발견됐다. [뉴시스]
대통령실과 합동참모본부는 “용산 일대로 날아든 북한 오물풍선의 동향을 실시간 추적했고, 낙하 후 수거해 조사한 결과 위험성 및 오염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오물풍선이 대통령실 경내에 떨어질 때까지 요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어떤 물질이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풍선을 쏴 떨어뜨릴 경우 오히려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어떤 물질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위험물’이 지난 두 달여 동안 국민 머리 위에 3600여 개나 떨어졌음에도 당국은 아무런 대응조차 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오물풍선이 급기야 대통령실 경내에까지 떨어지자 군 당국은 대통령실 인근 방공부대에 최근 개발된 국산 레이저 대공무기를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초 레이저 대공무기를 배치하기 위한 방공시설 설계 용역을 맡겼는데, 현재 마무리 단계라 가까운 시일 내 배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군 당국은 레이저 대공무기는 실탄을 사용하지 않아 낙탄 피해 우려가 없는 만큼 도심에서도 쓰기 수월하다고 평가했다. 물론 레이저 무기는 기관포를 쏠 때와 달리 소음이나 낙탄 우려가 없다. 하지만 군 당국 스스로 “어떤 물질이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하는 풍선”이라고 규정한 물체가 대통령실 인근까지 날아올 때까지 지켜보다가 격추하겠다는 방침은 여러모로 이상하다. 이처럼 위험한 물체가 수도 한복판까지 오기를 굳이 기다렸다가 격추하는 것은 리스크가 큰 데다, 자칫 격추된 풍선이 인근 주민들 머리 위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물풍선 유효 낙하율 96% 기록
북한이 살포한 오물풍선이 7월 24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인근에 떨어졌다. [뉴스1]
그 결과 지난 두 달 동안 북한 오물풍선의 ‘유효 낙하율’은 점점 높아졌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7월 24일 10차 살포 때는 96%를 기록했을 정도다. 북한이 날린 오물풍선 500여 개 가운데 480여 개가 한국 국토에 떨어진 것이다. 심지어 그중 상당수는 서울 등 주요 대도시에 떨어졌다. 7월 24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한 민가 옥상에 떨어진 풍선에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터지도록 설계된 기폭장치까지 달려 있었다. 이제 북한은 풍선으로 원하는 지역에 10㎏ 안팎 중량의 ‘무언가’를 살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다. 이런 형태의 풍선은 일반 무기에 비해 대단히 저렴하다. 유사시 대량의 탄도미사일과 방사포, 장사정포탄, 드론에 더해 무기화된 풍선이 한미연합군의 레이더 스크린을 가득 채워 방공망을 무력화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국토 전역이 초토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현재 한국 영토에 떨어진 북한 풍선으로 인한 국민 피해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북한 풍선을 전방에서 격추할 경우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군 측 주장은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국제법상 문제가 없으면서 북한에 확전 빌미도 주지 않을 풍선 격추 방법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풍선이 너무 높이 상승해 터지지 않게끔 3~5㎞ 고도를 유지하며 한국으로 날아들도록 하고 있다. 흔히 오물풍선으로 불리는 물체는 각각 2~5m 크기의 풍선 2~3개를 한데 묶어 그 아래에 오물 봉투를 달아놓은 형태다. 부피가 워낙 커서 레이더는 물론, 육안으로도 관측이 용이하다. 초속 5m 정도 속도로 느릿느릿 나는 데다, 항공기나 드론처럼 회피기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격추하기 쉬운 물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오물풍선을 격추하는 데 적합한 수단은 무엇일까. 이런 공중 표적을 전방에 배치된 야전방공무기로 대응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20㎜ 혹은 30㎜ 기관포는 탄 자체가 크고 사거리도 길어 전방 대공진지에서 발사하면 군사분계선(MDL)은 물론, 비무장지대 넘어 북한 영내에 직접적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다.
한국 육군 헬기에서 사격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기관총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물론 육상 진지에 설치된 기관총으로 3~5㎞ 고도를 날아다니는 풍선을 격추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반면 기동헬기에 설치된 기관총으로 비슷한 고도에 있는 풍선을 격추한다면 난도는 대폭 낮아진다. 한국군의 주력 기동헬기인 KUH-1 수리온은 4590m, UH-60P 블랙호크 헬기는 5790m 고도까지 상승할 수 있다. 감시정찰자산으로 북한 오물풍선이 군사분계선 이북 20~50㎞ 구간 전술조치선(TAL)을 통과해 날아오는 것을 지켜본 후 풍향·풍속 등 기상정보를 바탕으로 예상 접근 경로를 산출해 길목에 헬기 몇 대를 띄우면 된다.
한국 육군의 K16 7.62㎜ 기관총. [SNT모티브 제공]
기동헬기에 장착되는 K16 7.62㎜ 기관총의 유효 사거리는 800m지만 고배율 광학조준장치를 달면 1㎞ 넘는 거리의 표적을 맞히는 것도 어렵지 않다. 전방 GOP 선상의 헬기에서 기관총 사격을 하면 오물풍선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오기 전 비무장지대 북측 영역에 떨어뜨릴 수 있다. 7.62㎜ 기관총탄은 말 그대로 지름 7.62㎜, 탄자 길이 26.5㎜, 탄자 무게 9.33g에 불과한 무기다. 날아갈 수 있는 거리도 4000m가 되지 않아 비무장지대를 넘어갈 일도 없다. 비무장지대 북측 영역 어딘가에 떨어지겠지만 탄이 작고, 비행거리만큼 탄속이 급격히 느려져 운동에너지가 격감한다. 북측 시설이나 인원에 피해를 입힐 가능성도 대단히 적다.
헬기에서 기관총탄을 난사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공중 정지한 헬기에서 저격용 소총으로 풍선을 쏴 떨어뜨리는 방법도 있다. 대대급 부대에 보급된 K14 저격용 소총은 K16 같은 7.62㎜ 규격이지만 더 정밀한 사격을 위해 전용탄을 사용한다. 풍선이 발견되면 난사할 필요도 없이 기관총보다 훨씬 먼 거리에서 풍선을 격추할 수 있다. 물론 기관총이나 저격총 모두 3~5㎞라는 비교적 높은 고도에서 쏴야 하기에 작전요원이 고산병으로 고생하지 않도록 산소 공급 대책이 적절히 강구돼야 할 것이다.
한국군은 KUH-1 계열 220여 대, UH-60P 130여 대 등 총 350여 대의 기동헬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헬기는 모두 주야간 전천후 작전 능력을 갖췄다. 총기에 장착하는 고배율 광학조준장비, 야간용 적외선 조준장비도 일선 부대에 충분히 보급돼 있다. 의지만 있다면 이들 전력을 이용해 북한 오물풍선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오기 전 요격할 능력이 차고 넘치는 것이다.
국민 피해 속출하는데…
일각에선 오물풍선을 요격하겠다고 북한 영내에 실탄을 쏘면 탄 크기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 군사 도발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오물풍선에 기폭장치를 장착하는 등 무기화해 날려 보내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한국 국민의 실질적 피해가 발생했다. 유엔 헌장 제51조는 이런 군사적 도발이 발생할 경우 안전보장이사회가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공격 당한 국가가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유엔군사령부도 북한의 오물풍선 투발을 정전협정 위반 행위로 규정한 바 있다. 오물풍선을 날리는 도발을 먼저 시작한 것은 북한이다. 그 풍선을 북한 상공에서 요격하는 것도, 이 과정에 실탄을 사용하는 것도 국제법으로 인정되는 자위권 행사라는 얘기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51호에 실렸습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