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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관세갈등 남북전쟁후 160년… 도농격차-정치양극화로 ‘심리적 내전’[권오상의 전쟁으로 읽는 경제]

입력 | 2024-08-04 22:57:00

내전 치렀던 美, 심상찮은 분위기
18세기 독립전쟁-19세기 남북전쟁
모두 관세 등 경제정책 놓고 충돌… 각각 2만명-62만명대 사망자 기록
현재는 잘사는 도시 vs 못사는 시골
민주당 vs 공화당 지지층으로 갈려… 먹고사는 문제 놓고 내부 갈등 격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가운데)이 1862년 10월 남북전쟁 당시 앤티텀 전투를 치른 부대 장교들을 방문한 모습.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우리가 해외에서 제조된 제품을 사면 우리는 제품을 가지고 외국인이 돈을 가집니다. 우리가 국내에서 제조된 제품을 사면 우리는 제품과 돈을 둘 다 가지지요.” 보호 무역을 옹호하는 위 말을 한 사람은 누굴까? 세계화를 거스르는 그 뜻을 보건대 과거의 누군가라고 짐작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19세기 독일의 경제학자 다니엘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후진국인 독일은 애덤 스미스나 데이비드 리카도가 주장한 자유 무역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냈다. 자유 무역은 선진국인 영국이 후발 주자가 따라오지 못하도록 꾀를 낸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거였다. 알고 보면 위 주인공은 미국인이다. 그것도 아주 유명한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1861년 미국 대통령이 된 링컨은 1854년에 생긴 미국 공화당의 첫 번째 대통령이었다. 위 말은 링컨이 대통령 선거 유세 때 했던 말이다. 오늘날 링컨은 흑인 노예 해방의 선구로 기억되지만 1860년 대통령 선거 때 그의 핵심 공약은 노예제 폐지가 아니라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 높이는 거였다. 노예제에 관해 링컨은 한마디로 어정쩡한 입장이었다. 링컨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에 선출되자 공화당원 중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분통을 터뜨릴 정도로 링컨의 입장은 이도 저도 아니었다.》




18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링컨의 득표율은 39.8%였다. 이는 1824년 32.7%로 선출된 존 퀸시 애덤스 다음으로 낮은, 역대 밑에서 두 번째의 득표율이었다. 모두 네 명이 경쟁한 1860년 선거에서 링컨의 승리는 미국 동부와 오대호 연안의 중서부 주에서 모조리 승리한 덕분이었다. 이들 주는 무엇보다도 관세를 올리겠다는 링컨의 공약에 호응했다. 제조업이 중심인 그들은 앞선 영국 제품의 가격이 미국 내에서 높아야 이익을 내기에 유리했다.

권오상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공동대표 ‘전쟁의 경제학’ 저자

링컨의 공약은 곧 나머지 미국인의 뺨을 때리는 격이었다. 당시 남부의 주들은 전 세계 면화의 75%를 생산했다. 미국 수출액의 절반 이상을 담당한 남부의 면화 농업은 수지가 맞았다. 가령 남부 무역의 중심지인 뉴올리언스는 1840년 미국에서 가장 부유하고 인구도 세 번째로 많은 도시였다. 또한 남부는 대부분의 소비재를 영국에서 수입했다. 그런 만큼 남부가 보기에 링컨의 관세 인상은 북부의 양키만 살찌우고 남부의 생활 수준은 떨어뜨리는 일종의 강도질이었다.

1775년 북아메리카의 13개 영국 식민지가 모국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들은 한마음이었다. 그때는 다 합쳐 240만 명 인구에 면적은 현재의 9분의 1로서 오늘날의 에티오피아 정도 크기였다.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 데다가 물러설 곳이 없는 미국 민병대는 징집돼 끌려온 영국 정규군보다 악착같이 싸웠다. 게다가 영국 식민지의 반란을 고소하게 바라보던 프랑스와 스페인은 영국에 물을 먹일 생각으로 북아메리카와 유럽에서 영국군과 싸웠다. 1783년 독립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국은 최소 2만5000명의 전사자를 냈다.

그로부터 8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영토가 넓어지면서 미국은 하나로 남기엔 모순이 커졌다. 남부의 주들은 링컨이 대통령이 되면 분리 독립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1861년 3월의 대통령 취임이 다가오자 남부는 그해 2월 아메리카연합국을 선포했다. 미국 독립 당시의 13개 식민지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버지니아를 포함해 4개가 남부 연합에 속했다. 남부의 딕시가 보기에 약 80년 전의 미국 독립과 지금의 남부 독립은 하나도 다른 게 없었다. 서로 입장이 달라졌으니 각각 다른 국가로 살아가자는 거였다.

북부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남부가 떨어져 나가면 자신들의 경쟁력 없는 제품이 안 팔려 경제적 손실을 볼 터였다. 그건 바로 1773년 12월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난 원인이기도 했다. 영국의 법령을 무시하고 차를 네덜란드에서 밀수하던 식민지의 이른바 ‘자유의 아들들’은 1773년 5월에 새로 공표된 ‘차법’에 위기감을 느꼈다. 영국 동인도회사가 팔던 차에 부과되던 관세가 높아 밀수가 돈이 됐는데 이제 법이 바뀌어 관세가 붙지 않은 차가 들어오면 쫄딱 망할 터였다. 자유의 아들들은 폭력으로써 정식 수입된 차를 망쳐 놓았다.

남부의 독립 선언에 링컨은 곧바로 무력 진압을 천명했다. 결국 1861년 4월 12일 내전이 터졌다. 1865년 내전이 끝날 때까지 양쪽은 도합 60만 명 이상의 전사자를 냈다. 이는 당시 미국 인구 3100만 명의 2%에 해당했다. 어쨌든 북부는 무력으로 남부를 붙들어 놓는 데 성공했다.

미국은 관세 정책, 노예 해방을 놓고 갈등하던 북부와 남부가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남북전쟁을 치렀다. 최근에는 도시의 민주당 지지층과 시골의 공화당 지지층 사이의 반목, 정치 지도자들의 극심한 양극화 속에서 ‘심리적 내전’ 상태에 돌입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 1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워싱턴 의사당 난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다시 시간이 흘러 요즘 미국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당장 두 쪽으로 갈라져 내전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상징적으로 2016년 마블 스튜디오는 당연히 한편이어야 할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서로 싸우는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내놓았다. 금년 4월에는 미국이 4개로 쪼개져 전쟁하는 스토리의 영화 ‘시빌 워’가 개봉했다. KBS의 PD특파원 강윤기는 5월 ‘ON AIR, 미국은 내전 중’이라는 책을 냈다.

현재 미국의 양분은 남북전쟁 때와 성격이 다르다. 크게 보면 잘사는 도시와 못사는 시골의 대립이다. 가령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주에서도 도시는 대개 바이든 편이다. 거꾸로 민주당이 강한 주라도 시골은 공화당 차지인 경우가 많다. 이는 경제학의 비교 우위론의 맹점을 보여준다. 리카도가 주장한 비교 우위론은 후진국도 자유 무역을 하는 게 이익이라는 이론이다.

가령 앞선 도국과 뒤처진 레국이 있다고 하자. 두 나라 모두 로봇 엔지니어와 바나나 농부가 산다. 도국의 엔지니어와 농부가 레국의 엔지니어, 농부보다 각각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어도 도국은 로봇만 제조하고 레국은 바나나만 경작해 서로 수출하는 게 결과적으로 더 많은 로봇과 바나나를 누릴 수 있다는 게 비교 우위론이다. 문제는 도국의 바나나 농부다. 하루아침에 로봇 엔지니어가 될 방법이 없어서다. 당연히 그들은 먹고살기가 예전 같지 않다. 장벽을 세우자는 트럼프류에게 그들의 마음이 끌리는 이유다.

미국이 다시 내전을 벌일까? 미국의 헤지펀드 밸류액트에서 일했던 데이비드 록우드는 이를 국가의 최적 크기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 국가는 너무 작아도 문제이고 너무 커도 문제라는 게 그의 주장의 핵심이다. 너무 작으면 공공재의 규모의 경제가 안 나오고 옆 나라의 침공을 막기도 힘들다. 반대로 너무 크면 공동의 이해관계가 옅어지고 내부의 대립이 심화된다. 그러므로 너무 작은 나라는 합칠 필요가 있고 너무 큰 나라는 나눌 필요가 있다.

록우드에 의하면 국가의 최적 크기는 시대의 환경 변화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그건 전쟁 빈도, 국방 비용, 자유 무역, 소득 불평등, 국제기구 등 다섯 요소에 좌우된다. 구체적으로, 전쟁이 드물수록, 국방 비용이 낮을수록, 자유 무역이 퍼질수록, 소득 불평등이 클수록, 그리고 유효한 국제기구가 많을수록 국가의 최적 크기는 작아진다.

19세기와 비교하면 현재는 다섯 가지 모두 다 국가가 작아져도 괜찮다는 쪽이다. 그만큼 미국의 크기는 과하다고 볼 만하다. 내부에서 다툴 일이 없도록 국가를 평화롭게 둘로 나누는 게 정답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도시와 시골로 쪼개서 두 나라로 만들 방법은 사실상 없다. 록우드는 한 가지 길이 더 있다고 지적한다. 필요 이상으로 큰 나라가 쪼개지지 않으면 내부의 갈등을 강제로 억누르는 과정에서 권위주의 체제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러고 보면 영토가 1위와 2위인 러시아와 중국은 둘 다 권위주의 체제다.



권오상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공동대표 ‘전쟁의 경제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