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조기 쟁취 매몰돼 발목잡기만 남발 탄핵 등 당력 허비… 국가 미래담론 실종 저조한 全大투표율-정당지지율 ‘경고등’ 사법리스크 피하려다 신뢰 위기 부를 판
정용관 논설실장
요즘 더불어민주당은 참 낯설다. 정치부 기자로 처음 출입했던 정당이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였다. 약 30년 전 일이다. 그 뒤로도 하도 이합집산을 많이 해서 역사를 읊기도 쉽진 않지만 민주당 계열 정당은 치열한 노선 싸움을 벌이며 그들 나름대로 ‘당내 민주화’의 길을 걸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친노 패권, 친문 패권 등 특정 계파의 당권 독점으로 분란이 끊이질 않았지만, 그 또한 30% 안팎의 비주류는 늘 존재했기에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다. 그걸 알기에 아무리 비명들이 횡사했어도 이번 전당대회에서 2위 후보가 30%까진 아니라도 20% 안팎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예측도 했다.
순진한 착각이었다. 민주당은 ‘이재명 1인 옹위(擁衛) 정당’으로 완벽하게 변모하는 중이다. 올림픽 일정에 맞춰 전대 일정을 짰는지, 공교롭게 일정이 겹치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소리 소문도 없다. 중간 결과는 85%를 넘는 득표율. ‘전체주의 정당’ 소릴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투표율은 낮고 특정 1인의 득표율만 높은 ‘외화내빈’은 ‘일극(一極) 체제’의 정당성도 위협한다. 이 후보는 “일극은 맞지만 체제는 틀린 말”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일극’은 “다양한 국민들, 민주당 당원들이 선택한 결과”일 뿐 자신이 인위적으로 만든 ‘체제’가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권리당원 10명 중 7명은 팔장을 끼고 있다는 사실은 뭘 의미할까. ‘다양성’이 지금 민주당에 있기는 한가.
지금 민주당은 오로지 윤석열 정권을 어떻게 무너뜨릴 것인지의 권력 쟁취에만 혈안인 듯 보인다. 그런 광적인 분위기가 90% 득표율의 ‘이재명 옹위’로 발현되고 있다. “메뚜기떼” “전체주의 유령” “제왕적 1인 정당” 등의 비판은 내부 총질로 치부된다. 단일대오로 외부의 적에 맞서자는 논리다.
사실 전당대회는 당원들의 잔치, 집안 잔치다. ‘개딸 잔치’로 흐르건 말건 뭔 상관이냐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170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대표를 뽑는 선거가 그들만의 행사일 수는 없다. 매년 수백억 원의 국고보조금을 지원받고 1명당 10억 원의 세금이 지원되는 국회의원을 170명이나 거느린 정당이어서만은 아니다. 돈 문제를 떠나 국가 시스템의 핵심적인 한 축인 입법부가 어떻게 운영될 것인지와 직결된 사안이기에 그렇단 얘기다.
그 점에서 볼 때 민주당은 낯설기만 한 게 아니라 한심하다. 불과 몇 달 전 윤석열 정권 심판론을 바탕으로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도 국민의힘보다 정당 지지율이 낮고, 이 후보의 대선후보 지지율도 20%대에서 맴돌고 있다. 이유가 뭘까. “3년도 길다”던 윤석열 정권을 왜 빨리 끝장내지 못하냐는 불만 여론 때문일까.
민주당은 정국을 리드할 수도 있었다. 대통령 탄핵이니 25만 원이니 하며 귀한 시간을 허비할 게 아니라 국가경쟁력, 미래 등의 담론을 주도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연금, 저출산, 신성장 동력 등 굵직한 국가적 과제가 한둘인가. 그런데도 지엽적인 정파적 이슈에만 매몰돼 있다. 이는 무슨 거창한 국가 비전을 떠나 기본적인 공적 책무(責務)와 관련된 문제다. 더 선명해질 ‘단색(單色)’ 조직이 어떻게 다양한 가치와 인적 역량을 담아낼 수 있을까. 민주당이 이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면 사법리스크 떼려다 더 큰 신뢰 위기, ‘무능(無能) 리스크’에 빠지게 될 것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