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7월 임시국회에 이어 8월 임시국회에서도 줄줄이 충돌할 전망이다. 8월 임시국회 첫 본회의부터 야당의 ‘노란봉투법’ 강행 처리가 예고돼 있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도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7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모습. 뉴스1
“민주당이 총선에서 그렇게 크게 이기고도 또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
지난주 만난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이해찬 전 대표가 이런 걱정을 하더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민주당이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채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180석이나 만들어줬는데 대체 뭐 했냐.”
총선 때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냈던 이해찬 전 대표는 총선 다음날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발언을 신호탄으로 민주당은 22대 국회가 문을 열기도 전부터 대여 초강경 모드에 돌입했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5월 22일 오후 충남 예산군 스플라스 리솜에서 열린 ‘제22대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대표 뒤로 ‘실천하는 개혁국회, 행동하는 민주당’ 이란 슬로건이 적혀 있다. 뉴스1
당 차원에서 밀어붙이겠다고 발표한 ‘중점 추진 법안’만 무려 57개였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총선 때 공약했던 전 국민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관련 특별법을 비롯해 채 상병 특검과 김건희 특검 등이죠. 그리고 5월 30일 22대 국회가 문을 연 직후 민주당은 이를 포함해 45개에 이르는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습니다. 당론으로 정해지면 자당 의원들도 동의하든 안 하든 무조건 따라야 합니다. 지난달 곽상언 의원은 당론으로 정해진 ‘박상용 검사 탄핵안’에 기권 표를 행사했다가 원내부대표 자리에서 쫓겨나듯 물러나야 했습니다.
1호 당론 법안이었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법’도 7월 18일 소관 상임위인 행안위를 통과한 데 이어 같은 달 31일 법사위를 야당 단독으로 통과했습니다. 8월 1일 본회의도 물론 야당 단독으로 통과했고요. ‘방송4법’도 모두 같은 방식, 비슷한 스피드로 본회의까지 속전속결로 통과했습니다.
지난해 8월 윤석열 대통령이 여름 휴가를 맞아 천안함 정식 함명이 적힌 모자와 티셔츠를 착용한 채 경남 진해 해군기지를 방문해 기지내 군항을 둘러보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윤 대통령은 이번 주 여름휴가를 떠나지만, 휴가 중에도 민생회복지원금법과 방송 4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합니다. 미국 출장 중에도 전자결재로 채 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던 분인데 휴가 중이라고 못 할 것 없겠죠. 민주당은 5일 열리는 8월 임시국회 첫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도 강행 처리할 예정이지만, 이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의 거부권이 예상되는 바입니다. 노란봉투법 역시 이미 21대 때 한 번 거부권을 행사했던 법안입니다.
민주당의 한 원로 정치인은 “민주당이 윤석열을 간과했다”며 “윤 대통령은 정치적 책임을 계산하거나 여론 눈치를 보지 않는다. 마치 잃을 게 없는 사람 같아서, 민주당이 아무리 막무가내로 밀어붙여도 결국엔 민주당이 지는 구조다”라고 하더군요.
실제 요즘 민주당 내에선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고 법을 통과시키면 뭐 하냐, 어차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물거품”이라는 불만이 슬슬 나오기 시작하는 중입니다. ‘일하는 국회’를 표방하며 밀어붙였건만 오히려 더 아무것도 안 되고 있다는 거죠. 이런 불만은 민심에도 서서히 반영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토록 벼르던 청문회들도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기껏 채택한 핵심 증인들이 죄다 불출석하는 탓에 새로 나오는 팩트는 없고, 여야 의원들끼리만 밤늦게까지 싸우다 서로 실언만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돌아봐도 기억에 남는 건 정청래 법사위원장의 ‘퇴거 명령’과 최민희 과방위원장의 ‘뇌 구조가 이상하다’는 발언 등 뿐입니다. 과방위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 유례없는 ‘3일 인사청문회’를 벌였지만, 이 위원장은 임명 당일 기어이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임명안과 KBS 이사진의 추천안을 의결했죠. 스코어로만 본다면 민주당이 또 진 겁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현 의원(오른쪽 세 번째)이 8월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다른 야당 관계자들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 제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민주당 김용민 의원, 조국혁신당 이해민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김 의원,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 뉴시스
이진숙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이 7월 3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방통위에서 열린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일하기는커녕,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는 국회를 만든 건 결국 민주당입니다. 180석일 때도 한 게 없더니, 192석을 얻고도 아무것도 못 하고 있습니다. 물론 민주당은 “이건 다 국민의힘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그건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여당’이라는 또 다른 문제고요, 국회의장부터 법사위원장, 운영위원장까지 독식한 원내 1당에겐 그만큼 책임지고 입법부를 이끌고 갈 의무가 있는 겁니다. 더군다나 유권자들이 192석을 만들어줄 때는 여당을 잘 설득해 꼬인 실타래를 잘 풀어가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을 겁니다. 이렇게 ‘노답’ 식으로 끝장까지 싸우란 건 아니었을 겁니다.
8월 18일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나면 이재명 후보가 다시 민주당 사령탑에 오를 가능성이 농후해 보입니다. 진짜로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내부 전략을 재수립할 때 같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8월 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에 반대하는 국민의힘의 무제한 토론이 시작되는 것을 지켜보며 대화하고 있다. 뉴스1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