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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전기차 화재에 지하 주차장 쑥대밭… 시한폭탄 안은 아파트

입력 | 2024-08-04 23:30:00

경찰과 소방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2일 오전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불이 난 차량을 감식 하고 있다. 전날 오전 6시15분께 해당 아파트 지하 1층에서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나 8시간 20분 만에 진화됐다. 이 화재로 지하주차장에 있던 차량 140여대가 피해를 입었다. 뉴시스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 1대가 폭발해 주변에 주차된 차량 140여 대가 불에 탔고 주민 120여 명이 대피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주차장 천장 배관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등 건물도 무사하지 못했다. 그 여파로 4일째 아파트 5개 동 480여 가구의 전기와 수도 공급이 끊기면서 무더위 속에 주민들이 인근 행정복지센터에서 이재민 생활을 하고 있다. 1대의 전기차 화재로 대형 사고나 자연 재난 상황에 버금가는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이번 화재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처럼 폐쇄적인 공간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줬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화재 발생 빈도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한 번 불이 붙으면 ‘열폭주’ 현상이 일어나 대형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전기차에 사용되는 리튬이온배터리는 불이 나면 순식간에 온도가 1000도까지 오르고, 산소와 가연성 가스가 배출돼 진화가 어렵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층고가 낮고, 차들이 밀집한 비좁은 공간이다. 이번 화재 때도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었고, 불이 난 전기차를 물에 담그는 이동식 수조도 펼칠 수 없어 무용지물이었다. 이 때문에 불을 완전히 끄기까지 8시간이 넘게 걸렸다. 환기가 되지 않는 지하 주차장 특성상 전기차 화재 시 배출되는 가연성 가스 등이 잘 빠져나가지 않는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 도심지 약 70%가 아파트이고 지상 주차장을 없애는 추세다. 언제든지 청라 아파트 사고와 비슷한 지하 주차장 내 전기차 화재가 재발할 수 있다. 자칫 대규모 인명 피해도 우려된다. 하지만 소방당국은 가능하면 지상 주차장에 충전기를 설치하라고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권고를 하고 있을 뿐 지하 주차장 안전 규제는 거의 공백인 상태다. 미국화재예방협회(NFPA) 등 해외에서는 충전 시설을 전기 케이블 등 위험 시설과는 충분한 거리를 두고 설치하도록 했고, 지하 환기 시설과 단열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등 꼼꼼히 규제하고 있다.

전기차 보급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난해 전기차 화재가 72건으로 2021년(24건)에 비해 3배 늘었다. 전기차 보급에 속도를 내느라 안전은 뒷전이었던 것은 아닌가. 불이 난 전기차에 덮어 산소를 차단하는 질식소화덮개나 이동식 수조 등 전기차에 맞는 화재 진압 장비 보급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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