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낯설고 먼’ 포스터. 흑인에 대한 백인의 증오가 빚어내는 비극의 무한 루프. 넷플릭스 제공
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아! 눈을 떠보니 카터의 악몽이었군요. 가슴을 쓸어내린 카터는 이번엔 진짜로 그녀의 아파트를 나와 담배를 피우는데…. 이게 웬일? 꿈에서 본 경관 머크가 다가오는 게 아니겠어요? 꿈에서와 똑같은 상황이 일어나면서 카터는 머크의 총을 맞고 죽어요.
아! 이것도 악몽이었네요. 알고 보니 악몽이 무한 반복되는 타임 루프에 갇힌 카터. 카터는 99회 똑같은 악몽을 되풀이한 끝에 최종 결심해요. “대화만이 해결책이야!” 아파트를 나선 카터는 머크 경관에게 먼저 대화를 청해요. 곧 두 사람에게 일어날 끔찍한 일을 설명하고는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가도록 경관님이 나를 데려다 달라”고 요청하지요. 아! 카터의 진심이 머크의 마음을 움직여요. 순찰차로 카터를 집 앞까지 에스코트해준 경관. 악수하고 돌아서는 카터의 뒤통수에 대고 머크는 말해요. “이번엔 재밌었어. 역사에 남을 연기야!” 역시나, 총알을 날려요.
어때요? 우리도 이런 낯설고 먼 자들이 벌이는 대결의 무한 루프를 매일 보지요? 야당의 법안 일방 처리→여당의 필리버스터→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말이에요. ‘어벤져스’ 속 우주 최강의 빌런 타노스처럼 손가락을 탁 튕겨서 깡그리 없애버리기 전엔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타르콥스키 영화보다 더 지루한 이 촌극은 무간지옥처럼 반복되고 있지요.
하지만 절망은 일러요. 영화엔 비극적 현실을 타개할 지혜가 숨어 있으니까요. 얼마 전 건강검진이 그랬어요. 제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채혈도, 대장내시경도 아닌 심박 변이도 검사였어요. 양 손목과 발목에 수갑처럼 생긴 클립을 끼운 채 “심장 박동 간의 시간 간격을 분석해서 자율신경계의 조절 상태를 알아보는 검사로, 피로도와 스트레스 정도를 살펴보는 검사예요”라는 상냥한 설명을 듣는 순간부터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게 뛰면서 없던 스트레스도 생겨나는 검사가 아닐 수 없었어요. “부정맥 진단 받으신 적 있나요?”라는 질문까지 받고 재검사에 들어가니 심장은 가일층 미친놈처럼 뛰기 시작하였어요.
이때 저는 눈을 감은 채 2021년 작 이탈리아 영화 ‘일 부코’를 생각하였어요.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명상용임을 알 수 있는 이 영화는 대사가 없어요(유일한 대사라면 나귀들을 부르는 촌부의 “어억, 떼잇떼잇떼잇” 하는 소리랍니다). 1960년대 이탈리아 북부에 고층빌딩이 세워질 무렵, 남부 끝 신비로운 동굴을 700m 깊이의 심연까지 탐험해 들어가며 지도를 만들어 가는 탐험가들의 지난한 모습을 90분 동안 다큐멘터리처럼 관찰하듯 보여주는 작품이죠. 인간과 자연, 개발과 발견, 죽음과 삶의 경계를 모색하는 이 영화만 떠올리면 심장박동이 사망에 가까운 고요에 이르게 되는 초현실적 경험을 선물받게 되어요.
그래요. 영화엔 현실 극복의 묘수가 있어요. ‘해리 포터’ 시리즈를 보세요. 너무도 무섭고 두려워서 사람들이 절대로 그 이름을 발설할 수 없어 단지 ‘그’라고만 불리는 어둠의 마술사도, 주인공 해리가 “볼드모트!”라고 이름을 대놓고 부르며 맞서는 순간, 그 위력은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두려움은 대부분 막연하고 부풀려져 있기 마련이라, 두려움의 대상을 직시하고 그 정체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순간, 두려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철학적 메시지가 깃든 클라이맥스죠.
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