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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고의 저주’ 日증시 12.4% 대폭락… 원엔 환율 964원

입력 | 2024-08-06 03:00:00

[증시 사상최대 폭락]
日 금리 인상에 슈퍼엔저 끝나… 엔화 빌려 투자하던 헤지펀드 등
손실 늘어나자 서둘러 청산 수순… 변동성 확대로 글로벌 증시 악영향




일본 도쿄의 한 전광판에 역대 최대 하락 폭을 다시 쓴 일본 닛케이평균주가가 표시돼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일본 증시가 하루 만에 4,400엔 넘게 급락하며 1987년 ‘블랙 먼데이’를 뛰어넘는 사상 최대 낙폭을 보였다. 미국발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와 일본 증시 상승을 견인해온 ‘슈퍼 엔저’의 종말이 맞물리면서 일본 대표 지수는 올해 상승분을 모두 토해냈다. 일본은행(BOJ)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향후 엔고(円高) 현상이 가속화되면 일본의 수출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을 거란 전망도 나온다.

엔고의 저주 걸린 日 증시

5일 도쿄 주식시장에서 닛케이평균주가(닛케이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2.4%(4,451엔) 폭락한 31,458.42엔에 마감했다. 3,836엔 떨어졌던 1987년 10월 20일 ‘블랙먼데이’를 뛰어넘는 하락 폭이다. 이날 일본 중견기업 1900개를 포함한 토픽스는 전장보다 12.23%(310.45포인트) 하락한 2,227.15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토픽스와 닛케이지수 선물 거래를 일시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지만 폭락세를 멈추진 못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은 앞서 2일 발표된 미국의 7월 고용지표 등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가 투자 심리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이날 주가 움직임에 대해 “만석인 극장에서 누군가 ‘불이야’를 외쳤을 때와 같은 광경”이었다며 “시장 참가자 전원이 주식 매도로 움직였다”고 전했다.

여기에 일본이 지난달 2010년부터 이어온 ‘제로(0) 금리’ 정책에서 완전히 벗어나면서 엔화 가치가 급등한 것도 주식시장 불안을 부추겼다. 앞서 일본 중앙은행은 지난달 말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정책금리를 현행 0∼0.1%에서 0.25%로 인상했다. 3월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한 지 4개월 만이다.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을 결정한 뒤 그간 지속돼 왔던 ‘슈퍼 엔저’ 시대가 저물고 엔화 가치는 급등하고 있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41엔대까지 떨어졌다(엔화 가치 상승). 엔-달러 환율은 지난달 초 161.90엔까지 올랐지만 한 달여 만에 20엔 가까이 하락한 것이다. 원-엔 재정 환율도 하루 만에 40원 이상 올라 5일에 100엔당 960원대까지 상승했다.

엔 캐리 청산, 증시 폭락 부추겨

‘엔 캐리 트레이드’(싼 이자로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국가에 투자하는 방법)가 청산 수순을 밟으면서 글로벌 유동성이 축소돼 증시 하락이 더 가팔라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보원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일본은 10년 넘게 유지해온 통화 정책을 비로소 바꾼 만큼 정책 변경에 따른 파장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슈퍼 엔저가 막을 내리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는 일본 내에서도 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짚었다.

헤지펀드 등 글로벌 투자자들은 일본에서 저렴하게 돈을 빌려 미국의 채권이나 주식 등 글로벌 시장에 투자해 왔다. 하지만 일본의 금리 상승으로 이자 비용이 불어나고 엔화 가치 급등으로 인한 손실도 커지면서, 투자자들이 서둘러 자산을 매각하고 빚 갚기에 나서 변동성이 확대됐다는 얘기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글로벌 증시 폭락을 더 부추기고 있다”며 “미국의 경기 침체는 달러화 약세, 엔화 강세로 나타나기 때문에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더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본격화하지 않았다면서 글로벌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낮은 금리로 엔화를 빌려 세계 각지에 투자하는 금융거래. 요즘처럼 일본 금리가 오르면 저렴한 엔화로 사들인 자산을 되팔아야 하기 때문에 금융시장에 충격을 준다.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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