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 역사 佛‘벨루티’ 공방 가보니 “손맛으로 미세 조정해야 만족해”… 속도의 시대에 느린 수작업 제작 中 불경기 럭셔리 기업 매출 감소… 파리 올림픽 맞아 ‘장인 정신’ 홍보 지나치게 상업적인 이미지 걸림돌… 원단 조각 파는 온라인 플랫폼도
2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의 남성복 브랜드 ‘벨루티’의 한 공방에서 수공업자들이 신발을 손수 제작하고 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조은아 파리특파원
방 대여섯 개를 갖춘 주택 같은 공방에선 방마다 구두가 단계별로 제작되고 있었다. 장인 20여 명은 방마다 네다섯 명씩 앉아 자신의 업무에 몰입하고 있었다. 팀별로 각자 구두의 천을 손수 물감으로 칠하거나, 염색된 가죽을 바느질로 구두 위에 입혔다.
프랑스 남성복 브랜드 ‘벨루티’가 제작한 2024 파리 올림픽 프랑스 선수단의 개회식 복장. 벨루티 인스타그램 캡처
● 편한 구두는 손에서 태어나
1895년 이탈리아 출신 알레산드로 벨루티가 설립한 벨루티는 1900년에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여하면서부터 유명해졌다. 벨루티란 상호를 사용한 것은 1928년 창립자의 아들인 토렐로 벨루티가 파리 몬타보 거리에 ‘벨루티, 명품 수제화’란 간판을 걸고 매장과 공방을 열었을 때부터였다. 대를 이어가고 있는 이 브랜드는 1994년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에 인수됐다.
이제 벨루티는 파리 시내에서 구두 공방과 의류 공방 각각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구두는 한 켤레 제작에 보통 80시간이 투입된다. 고객이 주문한 뒤 완성품을 받아보려면 대략 9개월에서 1년까지도 기다려야 한다.
제작 속도가 느린 이유는 100% 수작업 맞춤형으로 제작되기 때문이다. 요즘 중국 ‘알테쉬(알리·테무·쉬인)’로 대변되는 ‘패스트 패션’의 속도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느리다. 빠르게 소비하고 버리는 패션 브랜드가 넘치는 시대에 벨루티는 왜 수작업을 고수할까. 현장에서 ‘인공지능(AI) 시대에 왜 기계로 작업을 하지 않는가’란 질문에, 카살롱가 책임자는 “인간다움이 우리의 경쟁력”이라고 했다. 구두를 기계로 빠르고 정확하게 찍어 내더라도 소비자들은 결국 장인이 직접 ‘손맛’을 담아 세심하게 조정해 주길 바란다는 얘기다.
장인들의 손맛은 양복 제작 과정에도 묻어났다. 파리 6구 고급 백화점 근처에 있는 벨루티 신사복 공방 역시 양복을 수작업으로 제작한다. 양복 재단사들은 소비자 체형을 측정할 때 몸을 한쪽으로 기울이거나 어깨를 구부리는 등의 미세한 습관까지 포착해 옷 디자인에 반영했다. 매 순간 편안한 양복을 만들기 위한 배려다.
옷 소재를 고를 때는 재단사와 소비자가 함께 색상과 무늬가 제각각인 다양한 천들이 전시된 쇼룸으로 들어간다. 재단사는 소비자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추천한다. 이때 고객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까지 고려해야 한다. 기후에 따라서 적합한 섬유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방문에 동행한 파리시의 한 자원봉사자는 “모든 게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천천히 정성을 다하는 장인 정신이 프랑스 패션의 가치로 남을 것”이라고 평했다.
● 위기의 명품 브랜드, CEO 교체도
이날 파리시가 이례적으로 벨루티 공방 현장 취재를 마련한 건 ‘명품 패션 기업’들이 최근 겪고 있는 어려움과도 관련이 있다. 최근 프랑스를 포함해 세계 각국의 명품 패션 기업들이 전체적으로 실적이 줄며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세계 소비자들이 럭셔리 구매를 줄이고 있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영국의 럭셔리 브랜드 버버리는 상황이 더 안 좋다. 지난달 공개된 1분기(1∼3월) 매출은 전년 동기에 비해 22% 감소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23%나 감소해 부진이 두드러졌다. 이에 따라 버버리는 조너선 아케로이드 CEO를 취임 2년 반 만에 교체했다. 앞으로 코치와 지미추 CEO를 맡았던 조슈아 슐먼이 버버리를 이끌게 됐다. 또 버버리는 배당금 지급도 중단할 예정이다.
그나마 실적이 괜찮은 브랜드는 초고가의 부유한 소비자를 공략하는 곳들이다. 예컨대 에르메스는 오히려 상반기 매출이 약 13% 증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명품들은 자존심을 접고 아시아 지역에서 과잉 재고를 해소하기 위한 대폭 할인 판매도 하고 있다.
● 남은 원단 판매 플랫폼도 등장
지나치게 상업적이란 이미지도 명품 브랜드엔 성장의 걸림돌이다. 젊은 세대들이 합리적 소비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친환경 소비를 중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명품 브랜드들은 재활용 소재를 활용하거나 제품 제작 과정에서 남은 원단을 저렴하게 파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클로에는 ‘클로에 크래프트’란 개념을 도입했다. 클로에의 주요 상품인 시그니처 토트백과 스니커즈, 데님 등에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클로에 신발의 밑창은 케냐 해변에서 발견된 슬리퍼들을 재활용하는 사회적 기업 ‘오션 솔’과 함께 제작했다.
프랑스 LVMH그룹은 그룹 산하 디올, 지방시, 루이뷔통 등 다양한 아틀리에에서 수거한 데드스톡(남은 원단)을 재판매하는 온라인 플랫폼 ‘노나 소스’를 선보였다.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프라다도 버려진 어망으로 만든 재활용 나일론을 제품에 쓰고 있다. 영국 명품 알렉산더맥퀸의 세라 버턴 디자이너는 재활용 폴리에스터로 드레스를 만들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조은아 파리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