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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國父의 딸, ‘민주투사’서 ‘독재자’로 몰락[지금, 이 사람]

입력 | 2024-08-07 03:00:00

대규모 시위에 물러난 하시나 총리
관저 도우미 ‘470억 뇌물 수수’ 이어
‘유공자 자녀 공직 할당’에 국민 공분





반정부 시위 격화에 총리에서 사임한 셰이크 하시나 전 방글라데시 총리(77·사진)가 5일 인도로 피신했다. 국부(國父)의 딸로 한때 방글라데시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하시나 전 총리는 이제 독재자란 비판을 받으며 영국 망명을 모색하는 처지에 놓였다.

하시나 전 총리는 1971년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할 때 지도자였던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 초대 대통령의 딸이다. 1975년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군부 쿠데타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포함해 사실상 온 가족이 몰살되자, 당시 유럽에서 유학 중이던 하시나 전 총리는 1981년까지 영국과 인도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방글라데시로 돌아와 군부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벌인 하시나 전 총리는 1996년 총선에서 승리하며 총리가 됐다. 이후 2001년 총선에선 패배했지만 2009년 총선에서 승리한 뒤 총리직에 다시 올랐고 올해 초 연임에 성공했다.

“총리 쫓아냈다” 환호하는 방글라데시 시민들 5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사임 소식을 들은 뒤 기념비 위에 올라가 환호하고 있다. 다카=AP 뉴시스

하지만 하시나 전 총리의 정치적 이미지는 지난 15년 새 ‘민주화의 상징’에서 ‘독재자’로 바뀐다. 로이터통신은 “하시나 전 총리가 야당 인사와 시민 활동가를 대대적으로 체포하고, 초법적 살인도 자행하며 사실상 일당 통치를 했다”고 평가했다. ‘가족의 비극’이 협상과 대화를 거부하는 독재의 길로 하시나 전 총리를 이끌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야당 방글라데시민족주의당(BNP) 소속으로 정치적 경쟁 관계였고 가택연금 생활을 해온 칼레다 지아 전 총리는 하시나 전 총리의 가족을 죽인 지아우르 라만 전 대통령의 부인이다.

하시나 전 총리 집권 중 방글라데시는 의류 산업을 기반으로 한때 연간 국내총생산(GDP)이 6∼7%씩 성장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방글라데시 경제는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47억 달러(약 6조4568억 원)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만큼 고꾸라졌다.

부친 동상도 철거 시위대는 독립 영웅이자 하시나 전 총리의 아버지인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 초대 대통령의 동상까지 철거하며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하시나 전 총리는 군부까지 등을 돌리자 이날 사임을 발표하고 인도로 피신했다. 다카=AP 뉴시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하시나 전 총리의 관저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가 뇌물 수수로 470억 원에 달하는 부를 쌓았다는 게 밝혀지며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독립유공자 자녀 공직 할당제’ 도입과 경제 불평등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강경 진압한 것도 국민들의 반감을 키웠다.

방글라데시에선 와케르우즈자만 육군 참모총장이 이끄는 군부와 모함메드 샤하부딘 대통령이 과도 정부 구성에 나섰다. 시위를 주도한 학생 지도자들은 “군이 이끌거나 돕는 정부는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빈곤 퇴치 운동가인 무함마드 유누스(84)가 임시정부 수반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신병 치료차 프랑스에 있는 유누스는 6일 일간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대안이 없다면 상황에 따라 (과도)정부를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