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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체조 새 역사, 시상대 위 흑인밖에 없었다

입력 | 2024-08-07 03:00:00

[2024 파리올림픽]
여자마루 흑인 선수가 1∼3위 차지… 안드라지 우승, 바일스 4관왕 무산
4시간 걸어서 체육관 다니던 소녀
브라질 역대최다 메달 주인공으로



“블랙파워 보여주자” 조연 자처한 美스타들… BBC “금메달보다 값진 장면” ‘체조 여제’ 시몬 바일스(미국·왼쪽)가 5일 파리 올림픽 체조 여자 마루운동 시상식에서 팀 동료 조던 차일스(오른쪽)와 함께 무릎을 꿇은 채 이날 우승자 헤베카 안드라지(브라질)를 축하하는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올림픽 체조 시상대에 흑인 세 명만 오른 건 남녀를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파리=AP 뉴시스



올림픽에서 다른 종목 선수들이 ‘경기’를 할 때 체조 선수들은 ‘연기’를 한다. 주연에 익숙한 이들은 조연을 꺼리게 마련이지만 주연 중의 주연인 ‘체조 여제’ 시몬 바일스(27·미국)는 달랐다. 바일스가 조연을 자처한 덕에 파리 올림픽 여자 마루운동 시상대가 더욱 빛났다.

이번 대회 4번째 금메달을 노리던 바일스는 5일 파리 올림픽 체조 여자 마루운동에서 14.133점을 받았다. 이 종목 1위 헤베카 안드라지(25·브라질·14.166점)에게 뒤진 2위 기록이었다. 이어 조던 차일스(23·미국·13.766점)가 3위에 올랐다. 그러면서 남녀부를 통틀어 올림픽 체조 역사상 처음으로 시상대에 흑인 세 명이 오르게 됐다.

셋 중 가장 먼저 시상대에 오른 차일스는 은메달 시상이 끝난 뒤 바일스에게 “우리가 예를 갖춰 안드라지를 맞이하는 세리머니를 하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바일스는 “물론이지”라고 답했다. 안드라지가 시상대에 오르는 순간 두 선수는 몸을 낮췄고 안드라지는 활짝 웃는 얼굴로 두 팔을 하늘 위로 뻗으면서 시상대에 올랐다.

올림픽 역사에 길이 남을 시상식 사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 순간을 담은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면서 “올림픽은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영국 BBC방송도 “금메달보다 더 값진 명장면”이라고 거들었다.

바일스는 “시상대에 흑인 선수만 오르게 돼 기분이 ‘짱’이었다(super exciting)”면서 “안드라지는 완벽한 연기를 펼쳤다.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차일스는 “팬들에게 ‘블랙 파워’를 보여주고 싶었다. 안드라지는 우리에게 아이콘이자 전설”이라고 말했다.

2021년 도쿄 대회 뜀틀에 이어 개인 두 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한 안드라지는 “그들이 너무 귀여웠다. 올림픽 결선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인데 세계 최고인 그들의 세리머니를 받아 정말 영광”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 금메달은 안드라지가 색깔에 관계없이 따낸 6번째 올림픽 메달(금 2개, 은 3개, 동메달 1개)이기도 했다. 안드라지는 이 메달로 브라질 역사상 올림픽 메달을 가장 많이 딴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안드라지는 브라질 상파울루주 구아룰류스 외곽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미혼모였고 자식은 8남매나 됐다. 이모의 소개로 체조에 입문했지만 당시 가사 도우미로 일하던 어머니가 체육관으로 가는 버스 비용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그래도 체육관까지 4시간을 꼬박 걸어 체육관으로 가 꿈을 키웠고 마침내 바일스마저 넘어섰다.

여자 체조는 1928년 암스테르담 대회 때부터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됐다. 이후 64년이 지난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때가 되어서야 첫 번째 흑인 메달리스트가 탄생했다. 당시 단체전 동메달을 목에 건 도미니크 도스(48·미국)가 첫 메달 주인공이었다. 이어 개비 더글러스(29·미국)가 2012년 런던 올림픽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하면서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체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아인 여성 가운데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건 1976년 몬트리올 대회 때 소련 대표로 참가했던 넬리 블라디미로브나 김(67)이다. 고려인 2세인 김은 당시 단체전, 뜀틀, 마루운동에서 3관왕에 올랐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