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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과학 자부심 띄운 ‘열기구 성화대’[이기진의 만만한 과학]

입력 | 2024-08-08 22:57:00

이기진 교수 그림




새벽녘 학교에 도착할 때면 체육관에 운동하러 가는 끈 이론 전공 홍 교수를 만난다. 무슨 규칙이 있는지 모르지만, 신기하게도 물리학과가 있는 건물 입구에서 매일 같은 시간에 마주친다. 곧이어 연구실에서 강의 준비를 하고 있으면 강남에서 한강을 따라 자전거로 출근하는 광학 전공 김 교수가 샤워를 하러 지나간다. 두 물리학과 교수가 만드는 일상적인 아침 풍경이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내가 심각하게 ‘운동해야지’ 생각한 것은 대학에 부임한 지 10년이 지날 즈음이었다. 소위 번아웃 상태가 찾아왔다. 극도로 피곤하고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수업을 마치면 기운이 빠져 연구실 책상에 엎드려 있어야 했다. 얼마 후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연구실 문을 박차고 나가 헬스장을 찾았다.

그때 운동을 시작한 것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다. 퇴근 후엔 될 수 있으면 회식은 피하고 운동을 최우선으로 한다. 주말의 이른 아침엔 꼭 등산을 한다. 운동을 시작한 후 체력이 은행 잔고처럼 쌓였다. 그 체력을 바탕으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처럼 체력은 연구의 중요한 밑바탕임에 틀림이 없다.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 올림픽의 불꽃을 밝히는 열기구 성화대가 화제다. 콩코르드 광장과 루브르 박물관 사이의 튀일리 정원 60m 높이에서 증기를 내뿜으며 떠 있는 열기구 성화대가 마치 동화 속 달처럼 아름답다.

열기구 성화대는 과거 1783년 몽골피에 형제가 튀일리 정원에서 최초로 띄웠던 열기구에 영감을 얻어 디자인됐다. 열기구를 통해 지구 중력을 벗어나 최초로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몽골피에 형제의 도전은, 1903년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한 미국의 라이트 형제보다 120여 년 앞선 것이었다. 이 열기구 원리에 과학적 이론을 제공한 인물은 프랑스 물리학자 자크 샤를이었다. 그의 이름을 딴 ‘샤를의 법칙’에 따르면 열역학적으로 기체의 압력과 부피 변화가 절대온도에 비례한다. 아마도 프랑스는 열기구 성화대를 통해 개최국의 과학적 우월성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어찌 됐든, 나는 멋진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올림픽이 시작되자 연일 인간 승리의 감동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중이다. 올림픽이 국가 간의 메달 경쟁이라고 하지만 출전한 선수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승부의 순간은 지극히 짧다. 오랜 시간 그들은 어떻게 인내하고 기다렸을까? 운동 경기의 승패는 대부분 눈 깜짝할 사이에 결정된다.

‘눈 깜짝할 사이’의 물리학적 시간은 몇 초일까? 눈 깜짝할 사이는 평균 0.4초 정도다. 눈꺼풀이 내려가고 내려간 눈꺼풀이 정지한 암흑의 시간, 그리고 눈꺼풀이 다시 올라가는 시간이다. 한자로 일순(一瞬)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한 번 눈 깜짝하는 사이의 시간을 말한다. 대부분 경기는 ‘눈 깜짝할 시간’에 승부가 결정적으로 갈린다. 올림픽 때마다 기록이 경신된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승부의 시간이 더 짧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가 프랑스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다. 100년 전, 그는 지금 파리에서 전 세계인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경기를 즐기게 될 줄 상상이라도 했을까? 지구촌 인간의 도전과 연대, 존중, 인간다움을 생각하게 만드는 올림픽,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