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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여자 복서 시상대 나란히…北 방철미, 임애지 한마디에 미소

입력 | 2024-08-09 09:56:00

방철미와 기념촬영하는 임애지. 뉴시스


2024 파리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메달 시상식에서 태극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걸렸다.

9일 프랑스 파리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임애지(25·화순군청)와 방철미(30·북한)가 나란히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북한 방철미가 9일 복싱 여자 54㎏급 시상식에서 임애지를 바라보고 있다. 뉴스1

두 사람은 지난 4일 열린 준결승전에서 각자 패해 동메달이 확정됐다. 올림픽 복싱은 별도의 3·4위전을 진행하지 않고, 준결승에 오른 선수 두 명 모두에게 동메달을 준다. 이날 결승전으로 금-은메달의 주인공까지 가려진 후에야 시상식이 열렸다. 창위안(중국)이 금메달을, 하티세 아크바시(튀르키예)가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임애지는 시상대로 향하며 환하게 웃었지만, 방철미는 굳은 표정이었다. 입상자들이 다 같이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마트폰으로 셀카(셀프카메라)를 찍는 ‘빅토리 셀피’ 시간에도 다른 선수들은 밝은 표정이었지만 방철미는 무표정이었다.

대한민국 복싱 대표팀 임애지가 9일 복싱 여자 54㎏급 시상식에서 선수들과 빅토리 셀피를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튀르키예 하티세 아크바시(은메달), 중국 창위안(금메달), 북한 방철미(동메달), 임애지. 뉴스1

시상식 후 기자회견장에서도 긴장감이 흘렀다. 방철미는 동메달 소감을 묻는 말에 한참을 생각한 뒤 “1등을 생각하고 왔지만, 아쉽게도 3등밖에 쟁취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대회를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지 묻는 말에도 뜸을 들인 뒤 “올림픽은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대로 결과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답하기 전 기자회견장 옆쪽에 서 있는 북한 지도자의 눈치를 살피기도 했다.

남북이 같이 동메달을 딴 소감에 대해 방철미는 “선수로서 같은 순위에 든 것일 뿐”이라며 “다른 감정은 없다”고 했다. 임애지는 “(남북이 함께 메달을 따) 보기 좋았다. 내가 원하는 (금메달이라는) 결과는 아니었지만, 다음에는 결승에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임애지는 앞서 준결승이 끝난 직후 “(방)철미 언니를 안아봐도 될까요”라며 시상식에서의 다정한 모습을 예고했다. 하지만 실제 시상식에서는 포옹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취재진이 ‘지난번에 방철미를 안아봐도 되냐고 했는데, 시상식이나 무대 위 아닌 곳에서 안았느냐’고 묻자, 임애지는 “비밀로 하겠다”고 말했다. 이때 방철미가 기자회견 도중 처음으로 잠깐 미소를 지었다.

대한민국 복싱 대표팀 임애지와 북한 방철미가 9일 복싱 여자 54㎏급 시상식을 마친 후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임애지는 기자회견 전 공동취재구역에서 방철미를 친근하게 대하기 어려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원래는 (방철미가 말이나 행동을) 먼저 하는데, 그렇지 않는다면 곤란한 상황이라고 생각해서 나도 가만히 있는다”며 “(방철미가) 곤란해하는데 내가 먼저 내색하면서 다가가면 오히려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교류해선 안 된다고) 티를 내는 거니까, 더 다가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임애지와 방철미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당시 인사를 주고받으며 얼굴을 익혔다고 한다. 두 사람은 그간 훈련장이나 경기장에서 만나면 조금씩 안부를 묻고 서로를 격려하기도 했다.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