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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아빠 찬스’가 아니라 나라 망칠 특권 세습이다

입력 | 2024-08-09 14:01:00


나는 ‘아빠 찬스’라는 말이 싫다. 특히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과 관련해선 절대 쓰면 안 될 용어라고 본다. ‘아빠’라는 유아적 단어에다 TV퀴즈에 나오는 ‘찬스’를 붙여 귀엽고 가볍고 심지어 웃기는 느낌을 줌으로써 문제의 심각성과 중대성, 정치사회적 폭발성을 뭉개는 치명적 맹점이 있어서다.

이숙연 신임 대법관이 6일 윤석열 대통령의 임명 재가를 받자 대부분의 언론은 ‘아빠 찬스’ 논란 끝에 이숙연 대법관이 임명됐다고 보도했다. 20대인 그의 딸은 용산 재개발지역에 7억 원 대 빌라 보유자다. 7년 전 제 돈 달랑 300만 원에 아버지한테 증여받은 돈 900만 원을 더해 아버지가 골라준 주식을 샀다가 6년 만에 아버지한테 되팔아 4억 가까운 돈을 벌었다. 여기에 또 아버지한테 증여받은 돈을 더해 빌라를 샀다는 것이다.


지난달 25일 이숙연 대법관 후보자가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모두발언 하고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그 딸은 좋겠다. 아빠가 돈도 많고 능력도 많아서. 사실 ‘아빠 찬스’처럼 단 넉자로 그사세(그들만이 사는 세상)의 끔찍한 자식사랑, 알음알음 배타적으로 벌어지는 편법 탈법적 특권 세습을 이토록 섹시하게 전달하는 정치적 용어도 없다. 그러나 그런 아빠가 되지 못한, 그런 아빠를 갖지 못한 대다수 국민은 청문회를 보며(또는 TV를 끄며) 억장이 무너졌음을 윤석열 정부는 알아야 한다.

● 조국 수사했던 검찰총장, 대통령 되니 변했다

돌아보면 맨 처음 윤석열 정부가 국민을 절망케 한 것도 인사, 그 중에서도 아빠 찬스라고 본다. 검찰 편중, 동창 편중인사가 국민을 실망시켰지만 절망까진 아니었다.

일찍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SNS에 이렇게 써 국민 속을 뒤집긴 했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돈도 실력이야.” 결과적으로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 몰고 왔던 최순실 사태였으나 그때만 해도 엄마 찬스란 말은 없었다. 아빠 찬스는 2019년 9월 조국 법무부 장관 인사 청문회 때 처음 나왔다. “편법, 위선, 그리고 ‘엄마 찬스’ ‘아빠 찬스’를 이용해 딸이 (대학에) 부정입학을 한 것이 아닌가.” 딸의 표창장까지 가짜로 만든 조국에게 정점식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호통을 쳤던 것이다.


2019년 9월 7일 새벽 조국 당시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마치고 청문회장을 나서는 모습. 동아일보 DB


그때 이미 조국 수사에 착수했던 당시 검찰총장이 지금의 윤 대통령이다. 그랬던 윤 대통령이 집권 뒤 첫 조각부터 아빠 찬스 수두룩한 장관 후보자들을 마구 들이민 건 국민에 대한 배배배배배신이 아닐 수 없다. 참여연대가 윤 정부 첫 장관 후보자 19명(총리 포함)을 검증했더니 공직윤리법 위반이 15명, 자녀 진학 취업 병역 등 특혜 의혹이 13명이다. 이명박 정부 때보다 부자가 많은 건 죄라고 할 수 없지만(당시 총리 포함 장관 16명 평균 재산은 31억원·윤 내각은 41억원) 땅 투기나 탈세가 드러나 낙마했던 것과도 차원이 다른, 희한한 양상이다.

● 불법 아니어서 더 섬뜩한 ‘특권 세습사회’

‘아빠 찬스’ ‘엄마 찬스’ ‘세금 탈루’…위법만 안 나오면 공정한가. 2022년 4월 22일자 동아일보 사설 제목은 핵심을 찌른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한국 풀브라이트 동문회장 시절 아들과 딸이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미국 유학한 사실이 확인돼 자진 사퇴했다.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도 경북대병원 부원장-원장 시절 딸과 아들을 의대 특혜 편입시켰다는 의혹에 43일간 “부정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다 대통령 지지율만 까먹고 물러났다.


2022년 4월 22일자 동아일보 사설.



경북경찰청 수사에선 ‘무혐의’로 나오긴 했다. 하지만 조국 수사 하듯 털었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지는…알 수 없다. 윤 정부 장관 자제들의 숱한 의혹들은 꼭 ‘불법’이라고는 할 수 없기에 외려 섬뜩하다. “법과 제도를 잘 아는 사람이거나 가진 자들만의 일이다 보니 괴리감과 위화감을 느끼게 한다”고 하태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장이 경향신문 기고에 쓴 걸 보니, 알 것 같다. 편법적 행태가 합법임에도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게 보이는 것은 전문가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만 헤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국민 대다수는 모르고 살지만 회원제 클럽처럼 알음알음 전화 한통, 돈과 명품선물과 네트워킹(쉽게 말하면 ‘빽’)은 물론이고 때로는 온갖 치사찬란한 방법을 불사해 자식세대에 학벌과 부동산과 계급을 물려주는 ‘특권 세습사회’는 분명 존재한다. 유럽 선진국에선 왕족을 비롯한 상류계급이 전쟁 나면 맨 먼저 달려 나가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발휘해 범접 못할 클라스와 함께 사회통합을 유지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르다. 이 험한 세상, 믿을 건 내 식구밖에 없다는 ‘피난민 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 나라에선 남들이 뭐라 해도 법과 세금 피해가며 내 자식한테 모든 걸 다 물려줘야 하는 것이다.

● 윤 대통령 뚝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미국 하와이대 명예교수 구해근은 ‘특권 중산층’(2022년)에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중산층이 줄어들면서 한국사회도 고소득 전문직·관리직의 상위 10%와 나머지로 분리됐다고 썼다. 고위공무원, 대기업 관리직, 의사, 변호사 등 상위 ‘특권 중산층’은 점점 더 불안해지는 사회에서 자기들이 획득한 계급을 자식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사교육에 경쟁적 이기적 기회주의적으로 매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 ‘80년대 학번-60년대생’이 번듯한 일자리를 차지해 90년대생 자식세대에 학력·소득·직업·인맥·문화적 역량 등을 세습한다는 것이 조귀동이 쓴 ‘세습 중산층 사회’(2020년)였다. 그 2030세대는 ‘공정’에 극도로 예민하다.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요원 정규직 전환) 사태와 조국 사태가 공정감각에 불을 질렀다. 그래서 2022년 ‘공정과 상식’을 들고 나온 국민의힘 후보 윤석열에게 표를 던졌던 것이다.

그러나…부모가 대학교수이고 사립 초등학교, 서울대 법대를 나와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아파트에 살던 윤 대통령은 특권 세습 인사들을 대놓고 내각에 앉혔다. 검찰 만능주의에 공감능력과 거리가 있어(배우자 제외)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 봤어요?”하며 싸고돌 뿐이다. 그렇게 좋빠가(좋아, 빠르게 가!)로 총선까지 패배하고도 최근 또 아들 의경 특혜 의혹의 경찰청장 후보, 장남의 병역 기피 의혹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를 내놓았으니 윤 대통령의 뚝심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 인사검증했던 한동훈, 이준석처럼 “no” 할수있나

3월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인사를 나누는 모습. 동아일보DB


정부 출범 초, 이준석 당시 국힘 대표는 윤 대통령과의 첫 회동에서 “(논란이 되는) 인사 문제에 대해선 지방선거 전에 최대한 빠르게 판단해 달라”며 할 말을 했다. 이름까지 콕 찍어 말하진 않았으나 윤 대통령이 “위법행위는 없었다”고 방어하는 ‘40년 지기’ 정호영을 자르라고 할 수 있는 결기는 이준석 아니면 누구도 못 했을 일이다(믿기 힘든 독자를 위해 날짜를 적시하면 2022년 5월 13일이다. 이런 말까지 했기에 그는 쫓겨난 당대표 1호가 됐다).

초대 법무부 장관 시절 인사검증을 맡은 한동훈 국힘 대표는 책임을 통감할 필요가 있다. 첫 조각 검증은 그가 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국회에서 임명 동의안이 부결됐던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한동훈이 검증했다. 대학생 아들의 김앤장 인턴 특혜 의혹, 가족의 10억 주식 재산신고 누락 등을 알고도 대통령 친구의 친구라는 이유로 침묵했던 일이 반복될까 우려스럽다. 특권 세습 장관 인사가 또 나온다면, 당 대표로서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부자·특권세습·양남(서울강남·영남)정당으로 각인돼서야 정권 재창출이 가능할지, 상위 10% 아닌 국민의 삶은 나아진다는 희망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73년생 한동훈은 8학군 출신이고 85년생 이준석은 상계동 출신이다. 한동훈은 ‘공공선’을 강조하고 이준석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강조한다. 한동훈이 다음 대선에 출마할 것은 분명하지만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어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준석이 대선에 나올지는 잘 모르지만 상계동에서도, 동탄에서도 자기처럼 공부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나오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학원 안 다니면 큰일 나는 나라에서 ‘수학 국가교육 책임제’ 같은 교육사다리 정책을 통해서다. 한동훈과 이준석의 짱짱한 경쟁이 보수와 나라 개혁의 신재생에너지가 됐으면 한다.





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