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동아일보와 대한적십자사는 고국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시는 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재한 원폭 피해자, 강제 징용 사할린 동포, 고려인과 3회차에 걸쳐 ‘동행’하며 상처를 딛고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를 되짚어 봅니다.
고려인 남루이자 씨(왼쪽)와 손녀 남아니따 양. 뉴시스
그러던 중에 전쟁터로 변한 헤르손에 살던 고려인 후손 남아니따 양(당시 10살) 소식이 들려옵니다. 현지 대피소와 루마니아를 거쳐 헝가리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와 생이별했죠.
남아니따 양이 살던 우크라이나 헤르손 지역 집 안이 폭격으로 인해 엉망이 된 모습. 남아니따 양 가족 제공.
인천공항에 나가 있던 할머니 고려인 3세 남루이자 씨(65)는 손녀를 보는 순간 눈물을 흘리면서 손녀를 안았습니다. 그렇게 아빠와 할머니는 딸을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아니따 양의 피란 소식은 당시 한국에 머물던 고려인 커뮤니티에서 특히 큰 화제가 됐어요. 그 소식을 들은 우크라이나 국적 고려인들은 동포들의 초기 정착을 지원해 온 광주고려인마을에 하소연해 옵니다.
신조야 대표가 항공권 서류철을 보여주는 모습. 광주=임현석 기자 lhs@donga.com
“고려인들은 동포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요. 예전 구소련 때부터 같이 옮겨 다니고 고생한 기억이 남아서겠죠.”
다행히 이들 고려인마을 소식을 듣고 십시일반 후원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2023년 3월까지 대한적십자사가 고려인 귀환 지원에 참여하면서 총 876명의 우크라이나 국적 고려인이 한국으로 와 가족들과 만나게 됐습니다.
광주고려인마을에서 만난 남루이자 씨. 동아일보 유튜브 영상 캡처
남루이자 씨를 광주고려인마을에서 만났습니다. 7월 27일 동아일보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루이자 씨는 “한국이 우리에게 해준 일에 대해서 매우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크라이나를 떠나 한국에 완전히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고요.
1937년 강제 이주로 인해 중앙아시아 곳곳에 자리 잡게 됩니다.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그 먼 곳까지 흘러가게 된 겁니다. 여전히 우리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는 고려인 분들과의 동행을 위한 과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고국에 돌아오신 분들이라면, 한국 생활에 적응해서 안착해야 하고요. 돌아오지 못하고 현지에서 어렵게 사시는 고려인분들이 핏줄에 대한 자긍심을 잃지 않고 건강히 살아가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이 두 과제는 모두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래픽=정시은CD jey_sieun@donga.com
항공표 지원을 통해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를 벗어나 한국에 온 김블라디미르 군 가족. 광주고려인마을 제공.
첫 번째 과제부터 살펴봅시다. 어렵사리 돌아오신 분들이라면, 한국 사회에 안착하기 위해선 행정 차원에서 동포로 인정받는 과정이 우선인데요.
지금 같은 전쟁 상황에선 피란민들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현재 고려인 4세대까진 우리 재외동포 비자(F-4)를 발급받을 수 있지만, 피란민들은 가족관계증명서나 출생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우크라이나는 우리처럼 온라인으로 서류를 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많은 고려인 동포분이 전쟁 통에 6개월짜리 임시비자(G-1)를 받아서 입국했는데, 동포임을 입증할 수 있는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할 수 없을 경우 비자 연장이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아 가까스로 고국에 온 이들이 불법체류자로 내몰리기도 했습니다.
논란 끝에 2023년 3월부터는 우리 정부가 임시 비자를 연장해 주고 있지만,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죠. 올 4월 말엔 우크라이나 정부가 자국민에 대한 여권 갱신 업무를 중단했습니다. 전쟁이 길어지고 있으니, 우크라이나로 돌아오라는 거죠. 우크라이나로 돌아와야만 여권 갱신을 해주겠다고 합니다.
고려인 남편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밝히는 황엘레나 씨(왼쪽). 광주=임현석 기자 lhs@donga.com
그는 광주에 아내 황엘레나 씨(38)와 자식을 남겨두고 떠나며 사람들에게 ‘돌봐달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생활고 탓에 우크라이나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가족들에겐 겨울엔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엘레나 씨와 블라디미르 씨는 온라인으로 소식을 주고받는데요. 엘레나 씨는 남편의 문자 답장이 조금이라도 늦어질 땐, 마음이 철렁한다고 합니다.
그래픽=정시은CD jey_sieun@donga.com
유럽의 곡창이라고 불릴 만큼 비옥한 우크라이나 지역은 일종의 계절 농사인 ‘고본질’ 농업이 발달한 곳이었는데요. 많은 고려인이 이 계절 농사를 짓기 위해 국경을 옮겨 다니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소련이 붕괴했고요. 농사를 짓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머물다가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해 무국적 신분이 됩니다. 그런 고려인들이 우크라이나에만 무려 4만~5만 명이 있다고 합니다. 전쟁 통에도 모셔 오기 어려운 분들이죠.
2022년 7월 임시로 만들어진 광주 광산구 고려인광주진료소에서 건강 상담을 받는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 동아일보DB
그래픽=정시은CD jey_sieun@donga.com
7월 고려인마을을 방문했을 때, 아이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었습니다. 비행편 지원을 받아 지난해 한국에 온 고려인 5세 박밀로프(7·가명)의 고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도 한국어를 하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한국어를 배우기보다는 러시아어가 익숙한 아이들끼리만 어울리게 되죠.
우크라이나 고려인 난민 동포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적응 프로그램 진행 모습. 상당수가 이처럼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광주고려인마을에서 국내 적응을 위한 방과 후 수업을 받고 있는 고려인 자녀들. 광주=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이런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자 대한적십자사는 고려인 항공편 지원과 초기 정착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지난해까지 진행한 바 있습니다. 충분한 관심이 모인 뒤 다음 차수 지원도 이어간다는 방침인데요. 대한적십자사는 고려인 대상으로 한국행 티켓과 기초 생계비, 분유 및 생필품 등을 지원했습니다. 515가구, 1067명이 대상이었죠.
여전히 이러한 기초 지원도 중요하고요. 더 나아가 고려인 분들이 고국에 정착할 수 있게끔 관심도 필요해 보입니다. 기자가 만난 국내 거주 고려인들은 한국에서의 환대에 감사해하면서 고국에서 오래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습니다.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주에서 탈출한 김알렉산드르 씨와 우크라이나인 아내 김타냐 씨도 그랬는데요.
김알렉산드르 씨는 고향에서도 고려인 이웃들이 전통 명절 중 하나인 한식 때마다 다 모여서 제사를 지내던 기억이 지금도 훤하다고 말했습니다. 고려인들은 타지에서도 핏줄 정체성을 이어나가고 있다면서요.
광주고려인마을에 정착한 우크라이나인 김타나(35 왼쪽), 고려인 김알렉산드르(36) 가족. 광주=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우리 동포들이 다 흩어져 살잖아요. 내 고향과 집이 없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곳은 제 고향 같습니다. 조상들이 계셨던 곳이라 그런 거겠죠.”
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찍으면 동아일보 디지털 스토리텔링 콘텐츠 ‘동행’ 시리즈로 연결됩니다. 한때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로 볼 수 있습니다.
광주=임현석 기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