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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땐 펄펄 날았는데…올림픽서 실수? ‘초킹’이 뭐길래[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입력 | 2024-08-10 14:00:00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김예지 선수가 2일(현지시간)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여자 25m 권총 예선에서 눈을 감고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샤토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왜 그랬지? 잘 모르겠어요.”

김예지 선수가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사격 25m 권총 결선 진출에 실패한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극찬으로 전 세계적 관심 속에 금메달을 노리고 출전한 그는 어이없는 실수로 주 종목에서 탈락했다. 정해진 시간 내에 격발하지 못해 한 발이 아예 0점 처리돼서다. 그는 “원래 잘 안 나오는 실수인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올림픽 때마다 큰 무대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평소 같으면 하지 않을 실수를 하는 선수들이 종종 나온다. 허웅 선수는 남자 기계체조 안마 결선에서 다리가 기구에 걸려 떨어지는 뜻밖의 실수를 하기도 했다. 다시 기구에 올라 경기를 이어 갔지만 결국 8명 중 7위에 그쳤다.

사실 연습 때는 잘 하다가 실전에서 어처구니 없는 실책을 하면 누구보다 선수 본인이 가장 크게 당황할 것이다. 혹독한 훈련과 엄청난 연습량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심리적 압박감이 크길래 이런 일이 일어날까.

● 압박감에 ‘숨 막힘’ 현상

스포츠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초킹(choking·숨 막힘)’이라고 한다. 압박적인 상황에서 각성·불안 수준이 과도하게 올라가서 운동수행 능력이 급작스럽게 저하되는 것을 의미한다. 불안감에 압도돼 몸이 평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특징 때문에 국내 학계에서는 초킹을 ‘얼어붙음’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골프나 야구에서 압박감 때문에 동작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현상을 겪는 입스(yips)도 유사한 개념이다.

4일(현지시간) 올림픽 남자 체조 안마 결선에 나선 허웅 선수가 기구에 다리가 걸려 떨어지는 실수를 한 뒤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다. 파리=뉴시스


초킹을 경험하는 선수는 평소엔 하지 않던 실수를 하는 등 갑자기 경기력이 뚝 떨어진다. 경기 시작 전에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경기에 집중이 안 되고, 여유가 없어져 급하게 움직이거나, 그동안 훈련해 온 것들을 하얗게 잊어버리고 초보자 같은 동작이 나온다. 심장 뛰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거나, 손이 떨려 경기를 방해받기도 한다.

초킹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꼽힌다. 우선, 자기 초점 이론(self-focus theory)에서는 선수가 자기 몸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과도하게 모니터링하는 것을 문제로 본다. 복잡한 신체 운동은 훈련을 통해 무의식적이고, 자동화된 행동으로 나올 때 가장 결과가 좋다. 그런데 긴장감으로 인해 동작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춰 집중하게 되면, 연습 때는 아무 문제 없이 자동으로 나오던 동작이 부자연스러워지게 된다.

이는 피아니스트가 외운 곡을 자동으로 연주하다가 갑자기 손가락 하나하나에 주의 집중하며 순서를 곱씹으면, 손동작이 부자연스러워지며 연주가 갑자기 잘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4일(현지시간) 올림픽 남자 양궁 개인전 8강에서 패한 뒤 관객석을 향해 인사하는 김제덕 선수. 10점을 연달아 쐈던 이전 경기들과 다르게 첫 세트와 마지막 세트 첫 발부터 8점을 쏘며 흔들렸다. 파리=뉴시스

또 다른 이유는 경기 외 요소에 주의를 빼앗기는 방해 이론(distraction theory)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실패하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 외에 각종 잡생각, 시끄러운 군중의 소음 등으로 주의가 흐트러지면 실수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주의 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경기 외적 요소에 주의를 빼앗기면, 주의 용량의 한계를 초과해 버려 정작 경기에 집중력을 온전히 쏟지 못한다.

● 여론 관심 높을수록 각성 과다

사실 스포츠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각성 수준이 너무 높아지면 성과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1908년 미국 심리학자인 로버트 여키스와 존 도슨이 주장한 여키스-도슨 법칙(Yerkes-Dodson law)에 따르면, 각성과 성과의 관계는 거꾸로 된 U자 그래프를 그린다. 처음엔 각성 수준이 높아질수록 성과가 좋아지지만, 적정 수준을 넘어버리면 오히려 성과가 떨어진다.

여키스-도슨 법칙을 시각화한 그래프. 각성이 중간 수준일 때 가장 높은 성과를 내지만, 점점 높아질수록(그래프 오른쪽으로 갈수록) 오히려 성과가 떨어진다. Slide Player


스포츠 선수에게 각성이 높아지기 쉬운 조건은 대중이나 언론의 관심이 과도하게 높을 때다. 물론 경기장 관객의 응원을 받을 때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켜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 심리적 압박이 큰 상황일 땐 이에 압도되는 역효과가 일어난다. 시간, 감정, 에너지, 돈을 투자하며 자신을 응원해 준 이들을 실망하게 할까 봐 부담을 느껴서다.

이런 이유로 홈 관중이 많은 경기에서 일부 선수들은 ‘홈 어드벤티지’ 대신 초킹을 겪기도 한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정확도에 더 신경을 쓰게 되면서 동작 하나하나를 모니터링하게 될 수 있어서다. 그러면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자동화된 운동감각에 방해가 되면서 경기력이 떨어진다.

● 이름값 못할까 봐 부담

명성이 높은 선수일수록 심리적 압박감이 클 수 있다. 파리 올림픽에서는 여자 체조 3관왕에 올랐지만,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심리적 압박감을 이유로 기권한 미국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가 대표적이다. 당시 전 세계에서 ‘체조 여왕’ 바일스가 5개 체조 종목 금메달 싹쓸이에 성공할 것인가를 두고 큰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당시 바일스는 “위와 아래를 구분할 수 없고, 몸을 조금도 통제할 수 없다”며 “세상의 무게를 짊어진 느낌”이라는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축구 경기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거물급 스포츠 스타들이 결정적 순간에 실수할 확률이 높다. 실패하면 명성에 금이 가는 등 잃을 게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오슬로 스포츠과학학교 연구진은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1982~2006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1976~2004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1996~2007년)에서 발생한 페널티킥 366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슈퍼스타’ 선수일수록 페널티킥 실패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슈퍼스타의 기준은 FIFA 올해의 선수상 등 공식 수상 경력이 있는 선수로 한정했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슈퍼스타 스포츠 선수들이 일반 선수들보다 경기 중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할 확률이 의외로 더 높다. (기사 내용과 직접 관계없는 사진) 게티이미지


슈퍼스타들의 페널티킥 성공률은 65%였다. 그런데 수상 경력이 없는 일반 선수들의 성공률은 73.6%로 더 높았다. 더 흥미로운 점은 페널티킥 당시엔 수상 경력이 없었지만, 훗날 상을 받게 된 ‘예비 슈퍼스타’ 선수들의 성공률은 88.9%에 달했다는 점이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연구진은 이미 슈퍼스타인 선수들과 나중에 상을 받게 되는 예비 슈퍼스타 선수들의 기량에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대신 페널티킥 당시 이들에게는 이름값에 따른 명성과 대중의 기대치가 달랐다는 차이가 있다. 연구를 진행한 게이르 조르데 교수는 “대중의 기대감으로 경기의 결정적 순간에 심리적 압박을 받은 정도에 따라 성과가 갈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외에도 마지막 한 번의 기회에 승부가 걸렸거나, 이에 따른 명예나 상금 등 보상이 클수록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할 확률이 높다. ‘한 번에 모든 게 걸렸다’고 생각할수록 압박이 심해져서다.

미 오리건주립대 연구팀은 2002~2010년까지 미국프로농구(NBA) 경기에서 경기 종료 1분 전 점수 차 1점 이하인 급박한 상황에서 선수들의 자유투 성공 결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경기중 자유투 성공률보다 경기 종료 1분 전 접전 상황에서 자유투 성공률이 5~10% 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 미 아이다호대 연구팀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2004~2012년 경기 결과를 분석한 결과, 대회 상금이 클수록 선수들이 마지막 18번 홀에서 퍼트를 실수할 확률이 높았다.

● 나만의 마음 안정 루틴 개발하면 도움

초킹을 극복하는 방법은 아직까진 전 세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며 연구 중이다. 이 가운데 일부 효과가 입증된 방법은 경기 전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되는 개인별 맞춤 루틴을 개발하는 것이다.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대 연구팀은 과도하게 긴장하는 볼링 선수들에게 개인이 원하는 행동들을 조합해 경기 전 시행하는 루틴을 지도해줬더니 성과가 나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경기 시작 전 심호흡, 경기에 대한 시각화 시뮬레이션, 스윙 동작 연습, 긍정적인 확언(예: “할 수 있다”) 반복 등이 포함됐다.

올림픽 펜싱 경기에서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할 수 있다” “의심하지 마” 등을 외치는 것도 압박감을 덜기 위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 금메달리스트 박태준 선수도 스마트폰 배경으로 설정한 ‘이까짓 일로 죽기야 하겠냐’ ‘시간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긍정 문구를 공개하기도 했다. 또 바일스 선수는 도쿄 올림픽 기권 후 초킹을 극복하기 위해 경기가 있는 날 아침마다 심리치료사를 만나는 루틴을 만들었다고 직접 밝혔다.


미국 체조 시몬 바일스 선수가 치료견 ‘비컨’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goldendogbeacon)


이 외에 미국 체조 국가대표팀은 이번 올림픽에서 동물 치료를 도입하기도 했다. 훈련받은 치료견인 4살짜리 골든레트리버 ‘비컨’을 파리에 데려와 선수들의 정서적 안정을 돕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인간이 개와 교감할 때 안정된 뇌파가 나오고, 심신이 이완되는 호르몬 작용이 이뤄져 해외 병원에서는 치료견을 도입한 사례가 많다(지난 기사 참고: “내 배 한번 만져볼래?” ‘댕댕이’ 안으면 묘하게 힐링 되는 과학적 이유).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자기애 수준이 높을수록 압박적인 상황에서 부담을 덜 느끼고 좋은 성과를 낸다는 점이다. 초킹의 개념을 처음 정의하고 연구하기 시작한 미국의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거듭된 실험 연구를 통해 자기애가 높은 사람들이 긴장되는 상황에서 압박감을 덜 느낄 뿐 아니라, 성과도 좋다는 점을 발견했다. 자기애가 높은 이들은 자기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라고 믿기에 자신감도 높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자기애란, 성격장애 수준의 나르시시스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의 평가와 관계없이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특성을 일부라도 갖고 있으면, 누군가를 실망하게 할까 봐 두려워하는 정도가 훨씬 덜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어쩌면 경기에 대한 압박감 극복의 출발점은 선수 자신이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려는 노력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