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핵폭탄 투하 막전막후… 美-日 주요 의사결정 이끈 3인 항복 선언 하기까지 과정 담아… 역사적 결단 뒤의 인간적 고뇌 결사항전 막은 한 관료의 용기… 미공개 일기 등서 생생히 전달 ◇항복의 길/에번 토머스 지음·조행복 옮김/392쪽·2만2000원·까치
1945년 8월 8일 수요일. 미국 전쟁부 장관 헨리 스팀슨은 새벽부터 심장 발작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이날 기어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만났다. 역사를 바꾼 군사작전을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손에 황량한 잿빛으로 변해버린 일본 히로시마 사진을 쥐고 있었다. 핵무기로 인해 파괴된 건물과 교량, 터미널 등의 모습이 적나라했다.
신간은 원자폭탄이 일본에 투하된 1945년 8월을 자세히 조명한다. 영화 ‘오펜하이머’가 핵폭탄의 탄생 과정을 다뤘다면, 이 책은 원자폭탄이 어떤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이끌었는지에 집중한다. 독특한 건 스팀슨과 미국 태평양 전략공군사령관 칼 스파츠, 일본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라는 세 인물에게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전쟁부 장관 헨리 스팀슨. 그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하기로 결정한 주요 인물로 훗날 대량 살상을 주도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까치 제공
미국 태평양 전략공군사령관이었던 칼 스파츠. 그는 구두 명령 대신 서면 명령을 고집하며 핵폭탄 투하 명령서를 받아 이행했다. 까치 제공
결사항전을 고집하던 일본 대신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항복을 주장한 일본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 그가 아니었다면 전쟁이 계속돼 무의미한 희생이 커졌을 수 있다. 까치 제공
원폭 투하 전후 국면을 자세히 살펴본 저자는 “미국이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할 필요까지 없었다”는 주장은 잘못됐다고 못 박는다. 사이판 등 일본이 점령한 태평양의 여러 섬들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많은 군인을 잃은 미국이 본토 사수에 나선 일본군과 정면으로 맞섰다면 더 큰 희생이 불가피했다는 것. 사실 미국은 결사항전을 고수한 일본 강경파에 맞서 세 번째 원폭 투하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제79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대한민국 현대사의 시작을 연 역사적 과정을 되짚어보기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