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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조선시대에도 사교육 열풍-입시 비리 있었다

입력 | 2024-08-10 01:40:00

500년 전의 ‘입시지옥’ 과거 급제
책 1000권 암기에 10년 이상 소요
당파 간 경쟁 속 입시비리도 만연
◇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이한 지음/328쪽·1만8000원·위즈덤하우스





“요즘 부모들은 아이가 겨우 말을 가리면 글을 가르치며, 사모하는 것은 과거 급제요 바라는 것은 부귀입니다. 학문하는 도리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떼 지어 웃고 헐뜯습니다.”

조기교육, 선행학습 등 현대 사회의 사교육 세태를 떠올리게 하는 이 글은 16세기 조선 시대 인종에게 과도한 교육열을 고발한 내용이다. 교육은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지기에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현실에서는 부와 명예, 권력을 갖기 위한 수단으로의 존재감이 더 클 때가 있다. 500년 전인 조선 시대에도 ‘입시 지옥’의 천태만상이 펼쳐졌다.

조선왕조실록 같은 공식 기록부터 퇴계 이황의 편지, 다산 정약용 문집 등 여러 사료를 토대로 한 책은 조선 시대 교육관과 과거 제도부터 설명한다. 조선 시대는 신분제 사회였지만 양반이라도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얻지 못하면 존중은 물론이고 먹고살 길도 해결되지 않았다. 이를 위해 1000권 이상의 책을 암기하고, 글 실력과 필체까지 가다듬어야 했으니 최소 10년에서 길게는 20∼30년이 걸렸다.

이런 바탕에서 사교육 열풍이 불었고, 교육 과정 또한 부정행위 및 입시 비리로 문란해지기 일쑤였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아들들의 학업 성취도를 묻고 공부를 재촉하는 편지를 보냈고, 제자들에겐 진정한 학문의 길을 걸으라 설교했던 이황도 아들에겐 어떻게든 과거에 급제하라 성화를 부렸다. 사도세자를 미치게 만든 영조처럼 욕심 때문에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도 있었다. 이들은 ‘싹을 뽑는 사람’이라는 뜻의 ‘알묘’라 불렸다.

조선 중기를 넘어 당쟁이 치열해졌을 땐 당파마다 세력을 불리기 위한 입시 비리가 만연했다. 숙종 때는 시험장에서 남인 유력자의 아들을 찾는 시험관에게 서인 아무개가 손을 들어 급제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숙종 때는 성균관 안과 밖을 연결하는 40m 대나무 관이 발견됐다. 문제지와 답안지를 남몰래 교환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됐지만 증거가 없어 미제 사건으로 남기도 했다. 이런 권력형 입시 비리는 조선 말기까지 이어졌다. 아니 불공정한 입시경쟁은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