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의 ‘입시지옥’ 과거 급제 책 1000권 암기에 10년 이상 소요 당파 간 경쟁 속 입시비리도 만연 ◇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이한 지음/328쪽·1만8000원·위즈덤하우스
조기교육, 선행학습 등 현대 사회의 사교육 세태를 떠올리게 하는 이 글은 16세기 조선 시대 인종에게 과도한 교육열을 고발한 내용이다. 교육은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지기에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현실에서는 부와 명예, 권력을 갖기 위한 수단으로의 존재감이 더 클 때가 있다. 500년 전인 조선 시대에도 ‘입시 지옥’의 천태만상이 펼쳐졌다.
조선왕조실록 같은 공식 기록부터 퇴계 이황의 편지, 다산 정약용 문집 등 여러 사료를 토대로 한 책은 조선 시대 교육관과 과거 제도부터 설명한다. 조선 시대는 신분제 사회였지만 양반이라도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얻지 못하면 존중은 물론이고 먹고살 길도 해결되지 않았다. 이를 위해 1000권 이상의 책을 암기하고, 글 실력과 필체까지 가다듬어야 했으니 최소 10년에서 길게는 20∼30년이 걸렸다.
조선 중기를 넘어 당쟁이 치열해졌을 땐 당파마다 세력을 불리기 위한 입시 비리가 만연했다. 숙종 때는 시험장에서 남인 유력자의 아들을 찾는 시험관에게 서인 아무개가 손을 들어 급제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숙종 때는 성균관 안과 밖을 연결하는 40m 대나무 관이 발견됐다. 문제지와 답안지를 남몰래 교환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됐지만 증거가 없어 미제 사건으로 남기도 했다. 이런 권력형 입시 비리는 조선 말기까지 이어졌다. 아니 불공정한 입시경쟁은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