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이 지난달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위원국의 만장일치로 등재됐는데, 2주일이 지나도록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가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데 동의한 경위를 놓고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는 탓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앞서 기자들에게 “일본이 전체 역사를 반영하기로 약속했고, 실질적 조치를 이미 취했다”고 등재 동의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막상 등재 뒤 우리 언론이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의 관련 전시물을 확인해 보니 ‘강제동원’ ‘강제노역’ 표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우리 외교부는 동원의 강제성 표현은 이번엔 협상 대상이 아니었다고 했다. 일본 측이 되풀이하진 않았지만 2015년 하시마 탄광(일명 군함도) 등재 당시 ‘한국인 등이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동을 했다’고 밝힌 것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언론이 관련 전시에 ‘강제’ 표현을 안 쓰는 데 한국이 사전 합의했다고 보도하자 외교부는 즉시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부정했다.
▷그러나 사실무근이라는 해명이 사실무근이었다. ‘굴욕 외교’라는 지적에 외교부는 “전시 내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강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일본의 과거 사료 및 전시 문안을 요구했으나 최종적으로 일본은 수용하지 않았다”고 뒤늦게 밝혔다. 일본이 강제동원 명시를 거부했는데도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해준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등재 과정을 왜곡한 정황은 또 있다. 외교부는 세계유산위 개최를 앞두고 배포한 보도자료에선 “모든 노동자”를 위한 전시물을 설치했다는 일본 대표의 발언에서 단어를 “한국인 노동자”로 바꿔 전달했다. 일본이 위원국들 앞에서 모호한 표현을 쓴 걸 우리 정부가 국민들에게 감춘 셈이 됐다.
▷일본이 하시마 탄광 등재 당시의 ‘전체 역사를 소개하겠다’는 약속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데, 처음부터 등재 동의를 작심하지 않고서야 이 같은 저자세 외교를 할 리가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협상 과정에서 ‘등재를 표결로 가져갈 수도 있다’는 각오는 찾아볼 수 없다.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안보협력 확대를 외교 성과로 꼽고 있는 대통령실의 직간접적 지침이 없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