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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지 핵심 ‘전극 공정’ 강자로 우뚝… LFP 신사업 등 광폭 행보

입력 | 2024-08-12 03:00:00

[Stock&Biz] 피엔티
공장 증설로 2차전지 장비 ‘풀 밸류체인’ 완성… 글로벌 성장 도약
맞춤형 장비 제작 기술 탁월… 수주 폭발적 증가로 최근 2조원 돌파
삼성SDI, LG에너지,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3사 제품 공급





김준섭 대표

국내 2차전지 장비 업체 매출 1위인 피엔티가 설립 20년 만에 연 매출 1조 원, 누적 수주 2조 원에 도전하는 그룹사로 거듭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피엔티는 창사 이래 역대급을 기록 중인 수주에 대응하기 위한 생산 설비를 구축하고 성장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사업다각화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리튬인산철(LFP) 양극재 사업은 물론 소성로와 같은 신규 배터리 사업도 진출하는 등 2차전지 장비 사업 경쟁력 제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피엔티-피엔티머티리얼즈-피엔티엠에스(옛 명성티엔에스)로 연결되는 2차전지 밸류체인 구조를 완성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포부다.

2차전지 전극 생산 설비. 피엔티 제공

피엔티는 미래 먹거리로 떠오른 2차전지 산업 발전의 주역이다. 국내외 대기업에 핵심 설비·장비를 공급하며 2차전지 산업을 뿌리부터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2차전지 산업 생태계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첨단 설비·장비 등 제조업의 근간인 ‘뿌리 산업’이 튼튼해야 뒷받침할 수 있다. 피엔티의 기술력은 2차전지 산업에 보이지 않게 깊숙이 스며들어 완제품의 품질 경쟁력을 좌우한다.

김준섭 피엔티그룹 대표는 2차전지 산업의 기초체력을 강화하는 전극 공정 설비·장비 생산 기술력으로 대기업의 2차전지 흥행에 한몫하고 있다는 자긍심이 넘쳤다.

“피엔티의 성장 비결은 고객사의 요구 사항을 세세하게 파악해 맞춤 장비를 공급하는 커스터마이징(맞춤 제작) 기술력에 있다. 고객사의 2차전지 생산 제품이 명품이 될 수 있도록 오래도록 맞춤 제작에 공을 들여왔다. 고객사 특성에 맞는 장비를 생산하기 때문에 중복되는 건 하나도 없다.”

2차전지 전극 생산 설비. 피엔티 제공

2차전지 설비·장비 분야에서도 커스터마이징 기술은 진입장벽이 높은 것으로 손꼽힌다. 기술만 가졌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기술개발 단계에서부터 대기업과 함께 합을 맞춘 회사에 수주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의 기술적 이해도도 높아야 한다. 피엔티는 국내 배터리 3사를 모두 고객사로 두고 있다.



일본 히라노 제치고 명실상부 세계 1위 우뚝

피엔티엠에스의 2차전지 분리막 생산 설비.

피엔티는 2003년 12월 설립된 2차전지 소재 제조사다. 전극-조립-활성화로 이어지는 2차전지 제조 공정에서 전극 공정에 필요한 롤투롤 기술에 특화된 경쟁력을 지녔다.

롤투롤은 필름, 동박(구리 포일) 등 얇은 모재(소재)를 회전하는 롤에 감으면서 특수 물질을 도포하는 기술이다. 코팅 밀도를 높이고 소재 변형을 최소화해야 하므로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요구된다. 배터리를 비롯해 광학필름 등 첨단 소재 분야에 널리 사용된다.

피엔티는 일본 기업이 주도하던 기술을 2009년 국산화하는 데 성공하면서 성장 발판을 다졌다. 이후 2010년 중반부터 주요 경쟁사와의 격차를 크게 벌리며 국내시장 점유율 1위를 굳건히 지켜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2년 전에는 세계시장 선두였던 일본 히라노를 매출에서 추월하며 명실상부 세계 1위 기업으로 우뚝 섰다.

올해는 매출 1조 원, 2025년 1조5000억 원, 2026년 2조 원의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2차전지와 소재 등 2개 사업 부문을 영위하는 이 회사의 수익 창출원은 단연 2차전지사업부다. 지난해까지 약 75%를 차지했던 2차전지사업부 매출 비중은 최근 85%까지 올라갔다. 장비 수주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장기적 수익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2018년 말까지만 해도 2049억 원 수준이었던 수주 잔고도 지난해 말 1조7000억 원으로 늘었고 최근엔 2조 원 수주 돌파로 곳간을 넉넉히 채웠다. 매출의 상당 부분이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삼성SDI, SK넥실리스, 롯데알미늄 등 대기업에서 나온다.

2차전지 전극 생산 설비. 피엔티 제공

2차전지의 양극(+)과 음극(-)을 만드는 전극 공정 장비가 이 회사의 주력이다. 전극은 배터리의 심장으로 불린다. 전극 공정 기술력이 확보되면 배터리 수율과 생산량 확보에 유리하다.

2차전지 생산 공정은 크게 △전극 공정(전극판의 에너지밀도를 높이는 공정) △조립 공정(전극판과 원재료를 조립해 2차전지를 만드는 공정) △활성화 공정(충전과 방전을 반복해 2차전지를 작동하는 공정)으로 나뉜다. 이 회사는 이 중 난도가 가장 높은 전극 공정용 장비를 생산한다. 고객사의 요구 사항을 반영한 맞춤형 장비를 주문자 생산 방식의 커스터마이징으로 제작하며 급성장했다.

2012년과 2017년에는 세계 최초로 광폭 전극 코팅 장비와 고속 코팅 장비(속도 100m/min)를 개발했다. 이외에도 프레싱(압연) 장비, 슬리터(절단기), 노칭기(극판에서 필요한 부분만 잘라내는 장비) 등의 양산에도 성공하며 전극 공정에서 턴키(일괄생산) 역량을 가진 국내 선두 주자로 우뚝 섰다.

국내에서 2차전지 전극 공정을 턴키로 납품할 수 있는 업체는 서너 곳에 불과하다. 그중 피엔티의 기술력이 가장 앞서 있다는 평이다.



리튬인산철 배터리 미래 기술 국산화 ‘박차’

피엔티머티리얼즈의 LFP 배터리.

김 대표는 2차전지 장비 및 소재 사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앞으로도 피엔티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성장시킬 방침이다. 요즘 김 대표의 화두는 신사업 육성이다. 2차전지 장비 분야에서 쌓아온 핵심 기술력을 기반으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국산화 등 미래 신사업 분야의 핵심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다. 그는 “신사업 추진을 위한 인재를 유치하고 육성하는 데도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기존 장비 사업은 지속적인 기술 고도화로 매출 안정화를 꾀하면서 새로운 원천 기술·장비를 개발해 신사업을 모색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자회사 ‘피엔티머티리얼즈’를 설립해 LFP 배터리 직접 생산에 나섰다.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LFP 배터리 시장에서 국산화를 선도하겠다는 시도다.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8월 중국산 전기차용 배터리 수입액은 44억7000만 달러(약 6조 원)로 전년(2022년) 같은 기간보다 114.6% 증가했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전 세계에서 수입한 전기차용 배터리는 46억3000만 달러 규모였는데 이 중 중국산이 97%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대중(對中) 전기차용 배터리 수출액은 6600만 달러로 작년 전기차 배터리 한 품목에서만 6조 원 가까운 대중 무역적자를 봤다.

LFP 배터리는 기존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와 비교해 에너지밀도가 낮고 주행거리가 짧으나 안전성이 높고 양산이 쉽다는 강점이 있다. 최근에는 LFP 배터리 성능이 크게 개선되면서 비중국 시장에서도 LFP 채택이 빠르게 늘어가는 추세다. LFP 배터리는 전동 모터와 전동 오토바이, ESS(에너지저장장치) 등에 들어가는 부품으로 부가가치도 높다. ESS는 평소에 저장해둔 잉여 전기를 피크시간 대에 사용하는 에너지저장시스템을 말한다. 시간 제약 없이 전력 활용도를 높일 수 있어 전 세계의 주목도가 높지만 한국은 뒤처져 있는 모양새다. 중국은 올해 1분기 글로벌 ESS 출고량에서 1위부터 7위까지 휩쓸었다.

피엔티는 내년 말부터 0.2GWh(기가와트시) LFP 배터리를 직접 생산해 납품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구미 하이테크밸리 내에 리튬인산철 양극활물질을 생산하는 신공장을 건설 중이다. 김 대표는 “LFP 배터리와 피엔티의 최고급 장비를 접목하는 턴키 방식으로 3년 안에 2차전지 시장에서 독보적 입지를 차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1000억 원을 투자한 피엔티머티리얼즈의 LFP 배터리 공장은 2만 평(약 6만6000㎡) 규모로 내년 완공된다. LFP 배터리 양극재의 연간 생산 능력은 6000t 규모를 목표로 하며 내년 1분기 시험 생산 후 2분기 양산할 예정이다.

피엔티머티리얼즈를 통해 LFP 원소재 가공부터 전구체(양극활물질의 재료가 되는 물질), 활물질까지 내재화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된 것이다.

김 대표는 “양극활물질은 물을 이용한 수계 방식으로 만드는데 이는 세계 최초”라며 “아직 유계를 사용하는 중국과 차별화된다”고 강조했다. 수계 기반 활물질은 정제나 회수 등 별도의 환경 설비가 필요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피엔티는 양극재 생산에 필요한 소성로 사업도 함께 추진한다. 소성로는 양극재 생산의 핵심 공정이다. 열로 서로 다른 물질을 섞는 작업에 필요한 장비다. 양극재의 경우 프리커서(전구체)와 리튬을 결합할 때 쓴다. 양극재는 이러한 소성을 수차례 거치고 첨가제를 투입해 생산된다.



계열사 간 시너지 확대로 생존력 기르고 질주

2차전지 전극 생산 설비. 피엔티 제공

피엔티는 앞서 2022년 3월 ‘피엔티엠에스(옛 명성티엠에스)’ 인수를 결정했다. 피엔티에서 피엔티머티리얼즈, 피엔티엠에스로 이어지는 2차전지 사업 구도를 완성하기 위해서다.

피엔티엠에스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리튬이온배터리 분리막(LiBS) 장비를 제조하는 기업이다. 분리막 기술 국내 1위로 꼽힌다. 원래 대구에 거점을 둔 방직·섬유 기업이었는데 이 기술력을 활용해 분리막으로 진출, 경쟁력을 확보했다.

2차전지 분리막은 리튬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게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분리막에는 나노입자 크기의 미세한 구멍들이 뚫려 있어 전기를 발생시키며 전해질 잔류물로 인해 분리막 구멍이 점차 막히면서 전기 발생이 감소하고 배터리 수명이 줄어들게 된다.

피엔티엠에스가 특히 강점을 발휘하는 분야는 ‘분리막 추출기’(EXTRACTOR) 영역이다. 추출기는 습식 분리막 제조의 필수 핵심 설비이자 MC 용액조에서 필름에 함유된 파라핀 오일을 추출해 나노입자 크기의 미세한 구멍(RORE)을 생성하는 장비다. 결과적으로 분리막 장비는 피엔티엠에스 제품을 써서 피엔티머티리얼즈가 배터리 소재부터 화학물질을 개발하고, 이를 피엔티 전극 공정 장비와 합쳐 셀까지 만들자는 큰 구상이다.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업종을 모두 모아 3사가 협력할 수 있는 사업 구도를 구축한 것이다. 이를 통해 앞으로 피엔티의 전극 공정용 코팅 장비 기술력, 피엔티머티리얼즈 분리막 장비 턴키 솔루션, 피엔티엠에스를 통한 동박, 분리막 등 배터리 핵심 소재 장비 공급 등으로 계열사 간 시너지효과를 톡톡히 낼 것으로 보인다.



피엔티엠에스 수주 성과… 코스닥 거래 재개 자신감

한편 거래정지 중인 피엔티엠에스는 2년 전 인수 당시와 마찬가지로 아직 거래 재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지난 1월 피엔티엠에스가 제출한 개선 계획 이행 내역서 등 심사를 시작했다. 절차에 따라 상장폐지 여부를 심의·의결할 예정이다. 최대주주인 피엔티 측에선 어느 정도 지연이 발생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코스닥 거래 재개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리튬이온배터리 분리막(LiBS) 장비를 제조하는 피엔티엠에스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에 자신감이 있어서다.

실제로 피엔티엠에스는 꾸준히 수주 잔고를 늘리며 지난해 매출 반등을 이뤘다. 2021년 매출 116억 원에서 2022년 62억 원으로 감소했다가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 매출 250억 원을 거뒀다. 2021년 255억 원 수준이던 수주 잔고는 지난해 말 331억 원으로 늘어났다. 경영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피엔티와의 시너지효과가 충분한 상황이다. 모회사인 피엔티의 실적이 지속 상승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신호로 읽힌다.

문제는 운영자금이었는데 최근 최대주주인 피엔티로부터 지원을 받으면서 자금 문제도 해결했다. 피엔티엠에스는 운영자금 등 25억 원을 조달하고자 지난 4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공시했다. 기업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선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피엔티그룹은 아직 국산화되지 않은 장비 위주로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구상하며 생존력을 기르고 쉼 없이 질주하고 있다. 20년 업력을 앞세워 2차전지 장비 시장이라는 거대한 그라운드를 누비며 종횡무진 맹활약하고 있다.

오랜 세월 쌓아온 실력은 공든 탑이 된다. 2차전지 장비 분야에서 공든 탑을 쌓은 피엔티그룹의 계속된 성장이 2차전지 미래 산업의 마중물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

태현지 기자 nadi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