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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없애니 갑상샘 기능 항진증이 사라졌다”[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입력 | 2024-08-10 01:40:00

하정훈 서울성모병원 교수-갑상샘 질환 김혜정 씨
잠 못자고 불안… 이유없이 체중급감
항진증 진단 후 퇴사, 스트레스 관리… 약물 투여하며 취미 몰두, 완치 판정
증세 다양해 병 모르고 키우기 쉬워… 임의로 치료 중단하면 재발 가능성



하정훈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왼쪽)는 갑상샘 기능 항진증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관리할 것을 주문했다. 하 교수에게 진료받은 김혜정 씨는 희망퇴직 후 삶을 즐기면서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덕분에 병을 고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갑상샘(갑상선)은 목 앞쪽 중앙 부위에 있는 내분비기관이다. 양쪽으로 나비 날개를 펼친 모양새다. 갑상샘 호르몬을 만드는 게 주 역할이다. 갑상샘 호르몬은 체온을 유지하고 신체 대사 균형을 맞추는 일을 한다. 과다하게 분비되면 갑상샘 기능 항진증, 부족하게 분비되면 갑상샘 기능 저하증이 된다.

갑상샘 기능 항진증일 때 나타나는 증세는 다양하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픔이 가시지 않거나, 그렇게 많이 먹었는데도 체중이 감소하기도 한다. 더위를 특히 참지 못한다.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기도 한다. 불안하거나 초조할 수도 있고,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기도 한다.

하정훈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갑상샘 기능 항진증의 증세가 너무 다양해 병을 인식하지 못하고 증세를 키우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병을 방치하면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신속하게 병을 진단하고 성실하게 치료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김혜정 씨(59)의 투병 사례를 들려줬다.

● 갑자기 체중 쭉쭉 빠져

2021년 초였다. 좀처럼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신경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졌다. 초조함과 불안 증세도 나타났다. 심장 박동수도 빨라지는 것 같았다. 과격하게 운동하지도 않았고, 일부러 다이어트를 한 것도 아닌데 3개월 사이에 8㎏이 빠졌다.

김 씨는 업무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김 씨는 수십 년째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 무렵은 팀장을 맡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가 컸다.

그래도 정확한 원인을 알고 싶었다. 특히 단기간에 체중이 확 빠진 게 걱정됐다. 그해 4월 김 씨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이 검진을 통해 병의 정체를 알았다. 갑상샘 기능 항진증이었다. 갑상샘 기능 항진증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는 혈액검사를 통해 갑상샘 호르몬 수치를 확인한다. 김 씨의 경우 갑상샘 호르몬이 정상치의 3배를 넘었다.

김 씨는 하 교수를 찾아갔다. 하 교수는 “김 씨에게 나타난 증세들은 갑상샘 기능 항진증으로 생기는 전형적인 것들이다”고 말했다.

가령 심장이 빨리 뛰기 때문에 심박수가 빨라졌다. 대사 작용이 지나치게 활발해지니까 체중도 빠졌다. 동시에 땀이 나거나 예민해지고 불안과 초조감도 느껴야만 했다. 하 교수는 “김 씨는 겪지 않았지만, 위장과 대장 운동이 지나치게 활발해지면서 허기를 느낀다거나 설사를 자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 호르몬 조절 약물 사용

김 씨는 호르몬 생성을 차단하는 약물을 처방받았다. 하 교수는 “호르몬 상태를 확인하면서 약의 용량을 제대로 조절하는 게 치료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필요량 이상으로 용량을 늘리면 오히려 갑상샘 기능 저하증이 나타날 수 있어서다. 드물게는 영구적으로 갑상샘 기능에 손상이 생길 수도 있다.

김 씨의 경우 처음에는 5mg 정도를 투입했다. 약은 이틀마다 투입했다. 2주가 지나자 약효가 나타났다. 하 교수는 “혈액검사에서 호르몬 수치가 확 떨어졌다”고 말했다. 더불어 몸에 나타나던 증세도 조금씩 개선됐다. 쭉쭉 빠지던 체중도 더 이상 빠지지 않았다. 김 씨는 “무엇보다 체력이 다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2개월 정도가 지나자 더 이상 약효가 없는 것 같았다. 하 교수는 용량을 7.5mg으로 늘렸다. 다시 호르몬 수치가 많이 떨어졌다. 다시 용량을 줄였다. 나중에는 2.5mg까지 줄였다. 투입 횟수도 2일에서 3일에 한 번으로 조정했다.

김 씨는 이런 방법으로 2023년 초까지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약물을 처방받았다. 그러다 2월에는 더 이상 약을 투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약물을 끊었다. 이어 10월, 김 씨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사실 이 병은 재발이 비교적 잘 되는 병이다. 이 때문에 평생 약을 먹어야 할 수도 있다. 김 씨는 자신도 그런 과정을 밟을까 봐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씨는 2년여 만에 약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하 교수는 “보통 1년∼1년 6개월 동안 약물을 쓰면 호르몬 수치가 정상 범위가 되지만 재발을 막기 위해 충분한 기간(2∼3년)에 걸쳐 약을 쓴다”고 말했다.

김 씨의 투병기를 들여다보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하 교수는 “갑상샘 기능 항진증 치료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스트레스”라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야 치료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 퇴사 후 못했던 일 도전… 활력 되찾아

갑상샘 기능 항진증 진단을 받고 4개월 후인 2021년 8월, 김 씨는 희망퇴직을 했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김 씨는 “나로서는 큰 결단이었다”며 “35년 동안 열심히 일한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후 김 씨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에 열정을 쏟았다. 평소 책 읽기 좋아하고 메모하고 일기 쓰는 습관이 있었던 터라 간호사 생활 35년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책 집필에 도전했다. 1년 6개월 동안 원고를 정리했고, 마침내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은 열망이 강했는데, 그 꿈도 이뤘다. 2개 대학에서 간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수 있게 됐다.

활기가 조금씩 살아났다. 김 씨는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좋아하는데 잘 하지 못했던 분야, 바로 운동에 도전한 것. 김 씨는 물 공포증 때문에 수영을 전혀 하지 못했었는데 용기를 냈다. 공포를 이겨내니 수영이 즐거워졌다. 어렵다는 접영까지 다 배웠다. 탁구도 잘하고 싶었다. 동네 탁구장에 자주 갔다. 덕분에 동네 친구들이 많아졌다.

김혜정 씨는 지난해 자전거 타기에 도전한 후 국내외 여러 지역을 다녔다. 김혜정 씨 제공 

작년에는 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했다.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매주 두세 번은 자전거를 탔다. 한 번 자전거를 타면 50㎞는 보통이고, 많게는 하루에 100㎞ 이상까지 달렸다. 국내 웬만한 곳은 다 누비고 다녔다. 얼마 전에는 일본 홋카이도까지 가서 9일 동안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김 씨는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해 줬기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에 미쳐 봤다”며 “그랬더니 어느새 증세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다. 하 교수도 “여건이 허락한다면 갑상샘 기능 항진증 환자의 경우 당분간이라도 일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게 아주 좋은 치료법이 된다”고 말했다.

● 요오드 섭취, 신중히 해야

김 씨는 단 한 번도 약 복용을 빠뜨린 적이 없다. 하 교수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의외로 중간에 치료를 관두는 환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보통 2주 정도 약을 먹고 나면 증세가 좋아지는데, 이 상황을 ‘완치’로 지레짐작하고는 약을 끊는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그런 환자들은 대부분 재발해서 다시 병원에 온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이어 “치료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병원 진료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며 “혈액검사도 정기적으로 꼭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김 씨는 3개월마다 혈액검사를 받았다.

하 교수는 요오드 섭취에 신중할 것을 강조했다. 갑상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요오드가 많이 들어간 다시마 환이나 김과 같은 음식을 과도하게 먹지 말라는 것. 하 교수는 “그랬다가는 갑상샘 호르몬이 제 기능을 하지 않게 되고, 그 결과 갑상샘 기능 저하증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 교수는 “갑상샘 기능에 문제가 있다면 김이나 다시마 환 같은 것을 무조건 먹지 말고 의사와 상의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갑상샘 기능 항진증 치료를 끝냈는데 재발할 확률은 낮지 않다. 만약 재발한다면 종전의 증세가 똑같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재발은 약 복용을 중단하고 치료를 끝낼 때부터 3∼6개월 사이에 가장 많이 나타난다. 이런 점 때문에 김 씨는 6개월 혹은 1년마다 재발 여부를 확인한다. 완치 판정을 받은 후부터 현재까지는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