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 산 잘 탄다는 평가에 너무 무리해서인지 이젠 높은 산을 못 타요. 오르는 것는 괜찮은데 내려올 땐 무릎 통증에 시달려요. 수술하지 않고 무릎을 보호하면서 등산을 즐기는 방법을 찾다 평지를 걷거나 낮은 산을 오르고 있어요. 그런데 낮은 산을 타다 보니 그동안 안 보이던 아름다움이 보이네요.”
박경이 전 국립산악박물관 관장이 산을 오르고 있다. 1997년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중 하나인 가셔브룸2봉(8035m)까지 올랐던 그는 이제 무릎 보호를 위해 평지를 걷거나 낮은 산을 타며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박경이 전 관장 제공.
한때 히말라야 8000m 14좌 중 하나인 가셔브룸2봉(8035m)까지 올랐던 여성 산악인 박경이 전 국립산악박물관 관장(58)은 요즘엔 가급적 낮은 산을 탄다.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강원 속초시에 사는 박 전 관장은 매일 영랑호 둘레길 8km를 걷거나, 주변 주봉산(331m)이나 청대산(230m)을 오른다.
“젊어서 설악산 오를 땐 못 느꼈던 설악산 전경(全景)의 아름다움을 주봉산 청대산을 타면서 제대로 느끼고 있어요. 솔직히 설악산 등산하면 오르는데만 신경을 쓰다보니 전체적인 경관을 감상하기가 쉽지 않아요. 정상에 올랐을 땐 그 산의 외관이 더 잘 보이죠. 명산 명봉을 오르는 것도 좋지만 집 근처 낮은 산에 올라도 그 주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더군요.”
박경이 전 관장이 암벽을 오르다 포즈를 취했다. 박경이 전 관장 제공.
“선배들과 함께 백두대간 종주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백두대간 및 조선 시대 지리서 산경표 연구자인 고 이우형 선생님이 ‘산경표에 나와 있는 대로 백두대간을 실제로 답사해야 한다’고 부탁해서 시작했죠. 백두대간 개념이 생소하던 때라 대학연맹 집행부가 약 4달 동안 지도 수십 장을 강의실에 깔아놓고 산경표를 바탕으로 지도의 능선을 잇는 작업을 했었죠. 지금이야 백두대간이 널리 알려졌지만 그때는 정보도 없고 개인이나 산악회 차원에서 실행하기 어려운 프로젝트였어요. 백두대간을 15구간으로 나눈 후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지도를 들고 7월에 4박 5일간의 종주를 시작했죠. 전 이화령에서 속리산까지 내려가는 구간의 대장이었어요. 종주 후에 우리가 쓴 보고서가 발표되고, 1990년대부터 백두대간 종주 붐이 일어났죠.”
박경이 전 관장이 백두산 장백폭포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박경이 전 관장 제공.
겨울엔 아이들과 스키를 즐겼다. 한창 스키를 탈 때 산악계 선배가 보고 산악스키 아시안컵대회 출전을 권유했다. 2007년 대회에 출전해 3위를 했다. 이를 계기로 국제 산악스키 심판자격증을 획득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박 전 관장은 을지대 스포츠아웃도어학과 교수, 국립산악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했다. 2022년 1월부터 2023년 6월까지 국립산악박물관 관장을 지냈다. 국립산악박물관은 우리나라 산악의 역사를 알리고 등산을 대중화하기 위해 2014년 세워진 국내 유일의 1종 국립박물관이다. 1종 박물관은 100점 이상의 유물과 학예사, 전시실, 수장고, 세미나실 등을 갖춘 시설 중 심사를 통해 국가 인증을 획득한 곳이다.
박경이 전 관장이 스키를 타고 있다. 박경이 전 관장 제공.
등반엔 다양한 스토리가 있다. 6000m, 7000m, 8000m 등판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7500m 그 위를 죽음의 지대라고 부른다. 죽음의 지대에서 발생하는 여러 신체적 위험요소와 산악인들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면서 오를까?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어떤 일들이 발생하는가. ‘히말라야’에서 이런 궁금증을 설명하고 있다.
‘백두대간’은 백두대간에 얽힌 모든 스토리가 담겼다.
“백두대간 종주가 버킷리스트라는 사람들이 많아요.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있고, 하려는 사람들은 너무 많은데 백두대간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백두대간의 모든 것을 설명했습니다. 알고 종주하면 더 의미 있는 산행이 될 수 있습니다.”
박경이 전 관장이 설산에 올라 포즈를 취했다. 박경이 전 관장 제공.
박경이 전 관장에 카약을 타고 있다. 박경이 전 관장 제공.
“집 근처 영랑호가 있어 카약을 시작했는데 정말 색다른 묘미를 줘요. 호수나 강 근처에는 산이 있어요. 캠핑 도구를 챙겨 카약을 타고 가다 보면 좋은 캠핑 장소가 나옵니다. 그리고 산도 오를 수 있죠. 산악 선진국에서는 카약을 산악스포츠로 부르고 있어요. 그 이유를 카약을 타 보니 알겠습니다.”
박 전 관장은 무릎을 최대한 보호하는 운동에 신경을 쓰고 있다. 무릎이 망가진 것은 젊었을 때 20~30kg의 배낭을 매고 고산을 올라서다. 그는 “무거운 짐을 지고 설악산 지리산 능선을 타다 보면 어느 순간 무릎이 펴지지 않기도 한다. 그땐 몰랐는데 나이 드니 고스란히 고통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무릎을 살살 사용하려고 노력하죠. 오래전부터 자전거를탔어요. 자전거는 무릎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전신 운동을 할 수 있어 좋았죠. 거의 매일 피트니스센터에서 무릎 주변 근육 강화운동도 많이 하고 있죠.”
박경이 전 관장이 자전거를 타다 포즈를 취했다. 박경이 전 관장 제공.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