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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올림픽은 ‘AI 올림픽’

입력 | 2024-08-11 09:19:00

경기장 곳곳에 숨은 AI가 관람, 판정, 안전 도우미로 활약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로 만든 2024 파리올림픽 AI 기술 이미지. [이종림 제공]

2024 파리올림픽은 인공지능(AI)이 본격 도입된 올림픽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경기장 안에서는 더 정확한 판정과 선수 능력 향상에, 밖에서는 방송 해설과 테러 감시에 다각도로 AI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꼼꼼히 판정하는 AI의 눈

AI 심판 지원 시스템은 체조선수들의 회전 각도와 점프 높이 등을 정밀하게 분석한다. [후지쯔 제공]

파리올림픽에서 AI가 적극 활용되는 경기는 체조다. 미국 시몬 바일스 선수가 마루운동에 출전해 팔을 들어 경례한 뒤 도움닫기를 시작하자, 경기장 내 관중의 시선과 함께 카메라 포커스가 한곳으로 집중됐다. 힘차게 도약해 공중에서 연기를 펼치는 동안 바일스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궤적을 포착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 또 다른 카메라가 존재한다. 바로 매트 각 모서리에 배치된 카메라다. 국제체조연맹(FIG)과 협력해 AI 심판 지원 시스템을 개발한 일본 후지쯔가 설치한 것으로, 경기를 엄격하게 심사하는 또 다른 눈이다.

AI 심판 지원 시스템에는 휴먼 모션 애널리틱스(Human Motion Analytics·HMA) 데이터 분석 플랫폼이 탑재돼 있다. 카메라를 통해 선수 동작을 일련의 4차원(3차원+시간) 움직임으로 인식하는 캡처 기술이다. 과거에는 라이다(LiDAR) 기술을 사용해 체조선수의 경기를 3D(3차원) 합성 영상으로 제작했지만, 요즘에는 고화질 카메라로 선수의 움직임을 포착해 3D 모델로 만든다. 이를 통해 선수들이 수행하는 동작이 심사 기준에 맞는지 확인한다. AI의 장점은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정보를 인식해 정확하게 판정한다는 것이다. 회전 각도나 점프 높이 등을 정밀하게 식별하고 복잡한 움직임도 일관되게 인식한다. 훈련 시 가이드로 참고할 수 있으며, 시청자에게는 판정 이유를 설명할 자료로 제시된다.

파리올림픽에서는 이런 심판 지원 시스템 외에도 다양한 곳에 AI가 활용되고 있다. 4년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인텔을 포함한 AI 기업들과 협력을 통해 올림픽 여러 분야에 AI를 도입할 계획임을 밝혔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AI 시스템이 선수들이 최고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돕고, 공정한 경기를 보장할 것”이라며 “파리올림픽의 목표는 올림픽 가치를 보존하면서 변화를 수용해 AI 스포츠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중 한 가지는 스포츠 팬의 시청 경험 확장이다. IOC는 “더욱 개인화된 팬 경험을 만들겠다”며 5G(5세대 이동통신), VR(가상현실), 드론, AI 기술을 도입하고 선수 스토리 애플리케이션(앱)부터 몰입형 3D 방송까지 다방면으로 준비했다. 올림픽 AI 플랫폼 파트너사인 인텔은 IOC와 협력해 스포츠 팬을 위한 대화형 AI 앱인 ‘애슬리트365(Athlete365)’를 개발했다. 이 앱을 쓰면 사용자 관심사에 맞춰 특정 선수의 여정을 따라가거나 다양한 올림픽 스포츠를 체험할 수 있다. 또한 360도 비디오와 공간 오디오를 지원해 경기장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올림픽 박물관의 일부 컬렉션을 대화형 디지털 환경으로 가져와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기능도 제공한다. 선수들에게는 생성형 AI 챗GPT 같은 챗봇 기능을 지원한다. 올림픽에 출전한 약 1만1000명의 선수는 챗봇을 통해 파리올림픽 빌리지에서 길을 찾는 방법부터 경기 규칙 및 가이드라인까지 쉽게 물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경기장에서 사진을 게시하는 것이 경기 중에 허용되는지, 선수가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림픽 관련 상업 콘텐츠를 올려도 되는지 등에 대한 지침을 얻을 수 있다.

올림픽 중계에도 AI 기술 도입

매일 올림픽 관련 브리핑을 제공하는 딥페이크 기술. [NBC 제공]

올림픽 중계방송에도 새로운 AI 기술이 시도되고 있다. 알리바바그룹의 알리바바 클라우드는 올림픽방송서비스(OBS)와 협력해 AI 기반의 멀티카메라 리플레이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비치발리볼, 테니스, 유도, 럭비 등 12개 경기장에 AI 기반의 리플레이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서비스는 경기장에 배치된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클라우드 기반 3D 모델로 변환해준다. 새로운 시점에서 가상 프레임을 만들어 선수들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로 회전하거나, 치열한 경쟁 지점의 동작을 몰입감 있는 3D 영상으로 구현함으로써 경기를 더욱 실감나게 보여준다. 방송국에서는 딥페이크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NBC 방송국은 미국의 유명 스포츠 캐스터인 앨 마이클스의 음성을 AI로 생성해 올림픽 기간 일일 브리핑과 하이라이트를 제공한다. 이 AI 서비스를 사용하면 수십 개 종목의 선수들 정보를 종합해 700만 개의 다양한 표현을 생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올림픽에서 AI가 하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보호와 감시’다. IOC는 선수 보호 차원에서 AI를 활용해 SNS 게시물을 관리하고 있다. 올림픽 기간 선수들과 관련해 생성될 것으로 예상되는 SNS 댓글 수만 약 5억 개다. AI는 대량의 댓글을 확인해 선수들에게 악의적인 게시물은 자동으로 삭제한다. 이와 함께 물리적인 감시도 강화했다. 프랑스 정부는 대회 기간 테러나 재난 방지를 위해 도시에 카메라 수천 대를 설치해 광범위한 AI 감시체계를 구축했다. 감시카메라에 탑재된 AI 소프트웨어는 군중 규모와 움직임 변화, 버려진 물건, 무기 사용, 연기 또는 화염, 교통 위반 등 비정상적인 현상을 감지되도록 설계됐다. 감시카메라는 실시간으로 영상을 분석하고 잠재적인 문제가 인식될 경우 보안 담당자에게 전송해 대처하도록 한다. 일각에서는 이런 감시카메라를 통한 도청, 시각적 캡처 등 데이터 수집이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것에 반발하고 있다. AI 기반의 감시 시스템은 제대로 규제되지 않는 데다, 추가 데이터 분석 과정에서 개인정보 침해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올림픽에 AI를 활용하는 근본적 이유는 선수들이 대회를 준비하면서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라는 표어에 맞춰 신체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도록 돕기 위해서다. 이미 축구, 농구, 하키 등 다양한 종목에서 AI를 활용하고 있다. 경기 과정에서 선수의 이동거리, 슛 수, 속도, 가속 및 피로 수준 같은 광범위한 지표를 추적하는 데 사용된다. 이런 AI 기술은 웨어러블 스포츠웨어를 통해 더욱 정확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수집한 데이터는 선수별 강점과 약점을 평가해 선수가 자신의 능력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하는 데 쓰인다. 훈련 과정에서 AI가 트레이너나 코치 역할을 맡기도 한다. AI 트레이닝 도구는 사람이 직접 훈련시키는 방식보다 저렴하고 접근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일부 AI 트레이닝 시스템은 스마트폰만으로도 AI의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테니스 스윙을 비디오로 실시간 분석하고 피드백을 하거나, 골프공을 칠 때 파워와 정확도를 측정해주는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또 다른 AI 트레이닝의 장점은 선수들의 부상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운동선수의 움직임 패턴을 분석해 불균형을 감지하고 피로 및 부상, 질병 징후를 사전에 예측해주기 때문이다. 부상을 당한 후에는 AI를 통해 회복을 위한 타깃 운동과 교정 기술 등 재활훈련도 설계할 수 있다.

AI 활용해 올림픽 꿈나무 발굴

나아가 미래 올림픽 꿈나무를 발굴하는 데도 AI가 쓰이고 있다. 2026년 청소년올림픽 개최국인 세네갈은 인텔, 삼성전자 등과 협력해 스포츠 인재를 발굴하는 AI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팀은 3월 세네갈의 6개 마을을 방문해 어린이 1000여 명을 테스트했다. 스마트폰으로 아이들이 공을 갖고 놀거나, 점프하며 달리고, 윗몸 일으키기를 하는 모습을 촬영한 뒤 속도, 거리, 움직임 등 생체 정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스포츠에 상당한 재능을 보인 어린이 40명을 선발했으며, 이들은 청소년올림픽 예비 선수로 키워질 예정이다. IOC의 AI 실무 그룹에서 활동하는 아미트 조시 인도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마케팅전략 교수는 “세계 어디에선가 또 다른 마이클 펠프스(올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금메달을 획득한 미국 전 수영선수)가 돌아다녀도 이를 알아볼 방법이 없었다”며 “IOC가 AI를 활용하는 것은 더 많은 인재를 발굴하고 인종적·경제적 차이를 초월해 가능한 한 많은 국가에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52호에 실렸습니다.>



이종림 과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