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북한 노동신문은 44장의 김정은 사진을 북한 내부와 국제 사회를 향해 뿌렸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8월 8일과 9일 평안북도 의주군 큰물(홍수)피해지역을 또다시 찾으시고 재해복구를 위한 중대조치들을 취해주셨다”는 내용을 증명하는 사진들입니다.
현대 사회의 정치인들은 시민을 만나고 재해 지역을 둘러보는 사진을 보여주고 싶어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만, 북한 김정은의 최근 사진은 ‘자극적’이거나 오버하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띕니다.
토요일 북한이 공개한 사진은 너무 현란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북한 내부에서 외부 정보가 차단된 상황에서 사진을 본다면 김정은과 참모들이 의도했던 ‘애민(愛民)의 지도자’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겁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8월 8일과 9일 평안북도 의주군 큰물(홍수)피해지역을 또다시 찾으시고 재해복구를 위한 중대조치들을 취해주셨다”고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8월 8일과 9일 평안북도 의주군 큰물(홍수)피해지역을 또다시 찾으시고 재해복구를 위한 중대조치들을 취해주셨다”고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1호 열차 앞에서 선물을 받는 수재민 사진
김정은 전용 열차의 한 칸이 즉석 연설무대로 변했습니다. 지상에서 1미터 가량 떠 있는 열차의 높이는 연단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인공기가 서 있고 연설용 포디움이 설치되었습니다. 스피커는 6개가 설치되었습니다. 천정에는 노란 불빛의 조명이 설치되어 주인공을 비추고 있습니다. 연단 아래에는 천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김 위원장을 우러러 보며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제일 앞줄에는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이 많이 배치되었습니다.
당국이 준비한, 우리로 따지면 관광버스를 타고 온 수재민들이 선물을 한 세트씩(과자류를 채운 종이박스 + 쌀로 추정되는 투명 비닐 봉지 + 대성백화점 쇼핑백)을 받은 후 공터에 앉아 김 위원장의 연설을 듣고 있습니다.
2층짜리 건물 2개가 ‘ㄱ’자 형식으로 서 있습니다. 담 안에 공터가 있고 거기에 노란색과 검정색 계통의 텐트 70개 정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오와 열을 맞춰 당국이 수재민들을 위해 텐트를 설치하고 그 안에 선풍기와 TV 등을 넣어주었는데 이곳을 김 위원장이 찾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어느 텐트로 들어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한 텐트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 있던 어른들이 하늘을 향해 손뼉을 치며 울먹입니다. 어른들의 반응에 놀랐는지 안에 있던 아이들은 김 위원장이 건네주는 과자를 무표정하게 받아서 입에 넣습니다.
사진기자의 눈으로 보면 두 상황 모두 사진 찍기 좋은 환경입니다. 포토제닉합니다. 완벽한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사진을 보며 불편한 점이 있었습니다. 연설하는 김 위원장 왼쪽편으로 고급 승용차가 보입니다. 차번호가 휴전협정을 의미하는 727 1953 이길래 지난번 푸틴에게 받았다는 러시아제 아우르스인가 하고 봤더니 다른 모양입니다. 구글 이미지 검색 결과 이 차는 2024년식 벤츠 마이마흐 GLS600 이었습니다. 앞 범퍼에 마이바흐 문양이 반복되어 있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절대 권력자로서는 당연히 누릴 수 있는 호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북한의 인민들의 생활 수준과는 너무 큰 차이가 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8월 8일과 9일 평안북도 의주군 큰물(홍수)피해지역을 또다시 찾으시고 재해복구를 위한 중대조치들을 취해주셨다”고 보도했다. 현장에는 조용원·김재룡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박정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주창일 노동당 선전선동부장, 한광상 노동당 경공업부장 등 고위급 간부들이 동행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8월 8일과 9일 평안북도 의주군 큰물(홍수)피해지역을 또다시 찾으시고 재해복구를 위한 중대조치들을 취해주셨다”고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사진 출처=AP/뉴시스
북한 내부와 국제 사회를 향해 ‘자극적인 화면’을 만드는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가뜩이나 힘든 수재민을 동원한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1만5천명의 수재민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보호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약속이 어떤 식으로 지켜질지 궁금합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