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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흔드는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기고/최강]

입력 | 2024-08-11 22:48:00

최강 아산정책연구원장



국제사회는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미국이 고립주의로 회귀할 것을 우려하는데, 우리가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미국 민주주의의 퇴행과 위기 조짐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대선 후보직 수락연설에서 “미국 사회의 불화(discord)와 분열(division)이 치유돼야 한다”고 했지만, 민주당원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민주주의에 대한 ‘실존적 위협(existential threat)’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2022년 퓨(Pew) 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원과 민주당원의 3분의 2 이상이 서로를 비도덕적이고(immoral), 정직하지 않으며(dishonest), 상대방의 의견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closed-minded) 집단으로 본다고 답했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최대 장점은 주요한 국가적 쟁점이 있을 때마다 정파적 입장을 초월하여 국민이 하나가 되는 ‘초당파주의(bipartisanship)’였는데, 근래에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강점 중 하나는 초당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일관성이었고, 미국의 동맹 및 우방국들에 대한 안보공약이 유지되었기에 많은 국가들이 미국을 믿고 미국의 정책 노선을 지지했다. 그러나 2020년의 트럼프 행정부가 단행한 파리기후 협약 탈퇴 결정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신뢰도를 떨어뜨렸고, 적절한 방위비 분담을 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하거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탈퇴할 수도 있다는 발언은 미국의 동맹국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는 국가라는 인식이 흔들리면 미국의 지위와 신뢰가 상실되고, 자유주의 국제질서도 위태로워진다. 2024년 초 퓨 리서치가 34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국은 본받을 만한 민주주의 국가인가’라는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21%가 여전히 미국은 세계에서 본받을 만한 민주주의 국가라고 응답한 것에 비해, 과거에는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평균 40%에 달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 시장경제, 자유무역 등과 같은 가치를 중심으로 형성된 글로벌 시스템이다. 미국은 이 질서의 창립자이자 수호자로서 역할을 해왔는데, 미국 내부의 정치적 불안정과 분열은 이러한 가치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능력을 약화시켜 다른 국가들의 민주주의 위기 역시 함께 촉발할 위험이 있다. 최근 유럽 극우세력의 약진이 이를 증명한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약화는 기존 질서를 뒤흔들려는 권위주의적 도전세력에 기회를 줄 수 있다. 미국이 민주주의의 모델로서 제 기능을 못할 때 러시아나 중국, 북한과 같은 권위주의 체제는 미국의 정치적 혼란을 거론하며 자국의 권위주의적 통치 모델이 더 안정적이고 효과적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들은 비(非)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수립하기 위해 국내 통제를 강화하고 다른 국가들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북한은 자유롭고 풍요로운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를 정권 생존의 위협으로 간주하고, 끊임없이 한반도 적화를 노릴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 위기는 전 세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이기에 미국 사회가 먼저 자성과 변화를 꾀해야 한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상호 이해와 협력을 증진하여 초당파주의를 복원하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고, 미국 유권자들 역시 정치적 성향, 인종, 종교를 둘러싼 갈등을 멈추고 조화와 포용의 정신을 되찾고 페어플레이 정신이 복원되기를 기대해 본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