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 후보가 지난 대선 후보 시절 경제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 나간 모습. 유튜브 화면 캡처
“저도 국회의원이 돼서 중단하기까지 오래 주식투자를 했습니다. 소형 잡주를 사서 깡통을 찬 적도 많고 대형 우량주에 투자해 꽤 복구도 하고 나름 이익도 얻었습니다만, 지금처럼 주식시장이 불투명, 불공정하고 대한민국 미래 경제가 어두워서야 주식 투자할 수 있겠습니까. (중략) 전 세계에서 주가지수가 떨어진 몇 안 되는 나라가 됐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금투세라는 것을 예정대로 하는 게 정말 맞느냐 (하는 생각이다). 기본적으로 없애는 것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입니다만, 시행 시기는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지난 7월 10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 후보는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작정한 듯 금융투자소득세 유예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 자신의 선거 핵심 캐치프레이즈인 ‘먹사니즘’에 딱 들어맞는 이슈라 생각했던 듯합니다. 역시 화제성 하나는 최고입니다. 그가 금투세 유예를 꺼내든 이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물론이고 야권 내에서도 금투세가 최대 화두 중 하나로 떠올랐죠. 그게 이재명이란 정치인 개인에게 향후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어쨌든 재미없던 ‘안물안궁’ 민주당 전당대회에 금투세라는 화두 하나는 던진 겁니다.
● 금투세가 뭐길래
2025년 1월 1일 시행을 앞둔 금투세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국내 상장 주식이나 관련 펀드 등 금융상품에 투자해 벌어들인 돈이 5000만 원을 넘어설 때 매기는 세금입니다. 소득이 3억 원 이하일 경우 5000만 원을 공제한 뒤 금투세 20%와 지방소득세 2% 등 총 22%를 매기고, 3억 원을 넘긴 경우엔 공제 후 27.5%의 합산 세율을 적용합니다. 부동산 거래 시에도 양도세가 붙듯이,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 원칙에 따른 거죠. 동아일보 DB
이때 여야가 합의하는 과정에도 당 대표였던 이 후보의 입김이 상당 부분 반영됐습니다. 이 후보는 2022년 11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동학개미’들의 반발을 우려해 금투세 도입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미 주식시장이 침체한 상황에서 굳이 지금 야당인 민주당이 이를 추진해 욕을 먹을 필요가 있느냐는 취지였죠. 이 후보가 꺼내든 ‘신중론’에 당내에서도 ‘유예론’이 급물살을 탄 겁니다.
● 총선 때 드러난 ‘이익투표’ 고려한 듯
이 후보는 당시 “금융투자소득세 변화와 연계해 증권거래세를 폐지하겠다”며 “부자 감세를 위한 주식 양도소득세 폐지가 아닌 개미와 부자에게 똑같이 부과된 증권거래세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습니다. 2022년 1월에만 해도 ‘부자 감세 반대’ 기조를 지켰던 겁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2022년 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주식 양도소득세 폐지’를 공약하자 공개적으로 반대한 것 페이스북 화면 캡처
하지만 대선에서 패배한 뒤로 조금씩 생각이 바뀐 듯합니다.
2022년 8월 출범한 ‘이재명호’는 그 해 12월 금투세 유예에 합의해 준 데 이어, 올해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금투세 폐지’ 추진을 공식 발표했을 때도 반발하지 않고 “검토 중”이라는 유연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민주당 정태호 당시 정책본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금투세는 조세 공정성 차원에서 여야 간에 도입이 합의됐던 것”이라면서도 “지금 상황에서 어떤 게 바람직스러운지 검토하고 있다”고 했었죠.
이 후보도 7월 10일 전당대회 출마 자리에서 금투세 유예 필요성을 언급한 것을 시작으로 “조세는 징벌이 아니다. 주식시장은 꿈을 먹고 사는데 5000만원까지 과세를 하는 문제에 대해 많은 분이 저항한다”(8월 6일 당 대표 토론회)는 등 연일 금투세 완화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행 5000만 원인 과세 대상을 연간 1억 원 가량으로 올려 5년간 5억 원을 버는 것에 대해선 세금을 면제해주자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죠.
이 후보를 잘 아는 민주당 관계자들은 이 후보가 “차기 대선을 앞두고 ‘중산층 공략’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념적 중도가 아닌, 경제적 중산층을 공략하는 행보라는 거죠. 이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텃밭처럼 여겨져 왔던 서울 마포갑을 국민의힘에 뺏겼다. 그 지역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이 이기면 여러분도 종부세를 내게 될 것’이라고 한 게 표심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유권자들이 철저한 ‘이익투표’를 하고 있다는 게 이번 총선에서 확실하게 드러났다”고 했습니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본인도 주식 투자를 열심히 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이 후보가 대선과 총선을 겪으면서 개미 표심에 대해 많이 고민한 듯하다. 이제 대선을 앞두고 금투세를 예정대로 시행하자는 말은 하기 어렵지 않겠나”라고 했습니다.
● 野 부글부글 “어떻게 철학이 변하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 후보가 11일 오후 대전시 서구 배재대학교 스포렉스 홀에서 열린 제1회 전국당원대회 대전지역 합동연설회에 참석해 참석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 대표 왼쪽은 김두관 후보. 대전=뉴스1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 후보(왼쪽)와 진성준 정책위의장이 지난해 3월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손을 잡은 채 대화하는 모습. 뉴스1
그의 블로그에는 “진성준, 사모펀드 하냐?” “이념에 찌들었다” “국민 세금 착취하는 악법 폐지하라”는 항의성 댓글이 6000개가 넘게 달렸지만, 그는 10일에도 ‘금투세에 대한 왜곡과 진실, 일독을 권합니다’라는 글을 올리며 ‘마이웨이’를 가는 중입니다. 그는 총선 직후인 4월에도 “예정대로 2025년부터 금투세가 차질 없이 시행되게 할 것”이라고 했고 22대 국회 개원 직후 금투세를 폐지해달라는 국회 청원이 동의 5만 명을 돌파했을 때도 “금투세 문제는 이미 당의 총의를 모아 3년 전에 입법을 했다. 그게 당론”이라고 폐지 가능성을 일축한 바 있습니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이 8월 10일 금투세 시행 필요성을 강조하며 올린 글. 페이스북 화면 캡처
친문(친문재인) 성향 의원 모임인 ‘민주주의 4.0’도 조만간 반대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입니다. 한 현역 의원은 “종부세를 없애고 금투세를 유예하자는 건 결국 노무현, 문재인 정권이 잘못했다고 우리 스스로 얘기하는 ‘내부 총질’”이라며 “이재명 본인이야 차기 대선 생각에 마음이 급해서 말을 바꿀 수 있겠지만,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당의 오랜 철학과 역사를 부정해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당내에선 이 후보가 18일 전당대회에서 승리해 연임에 성공하면 결국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란 해석이 많습니다. 복수의 의원들은 “정책위 의장도 어차피 당 대표가 지명하는 것이니 진성준이 잘리고 끝나지 않겠냐”고 내다 보더군요. 다만 반대하는 의원들은 “설사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반대 의사가 있었음을 반드시 밝히고 기록으로 남기겠다”고 벼르고 있죠. 이 후보의 금투세 관련 입장 변화가 그의 2기 체제에, 그리고 향후 대선 가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