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국민 자동차 회사, 푸조(Peugeot)에서 1840년 이후 지금까지 소금과 후추 그라인더를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그라인더의 시작은 1810년 푸조를 이끌던 장피에르와 장프레데리크 푸조 형제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두(Doubs) 지역의 공장을 인수받게 되면서부터로, 이곳은 과거에 얇은 강철 스트립과 스프링을 생산하던 곳이었다.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푸조에서 만들어낸 테이블용 페퍼밀, 솔트밀 덕분에 사람들은 자신의 기호에 맞게 음식에 직접 후추와 소금을 갈아 넣어 먹기 시작했다. 이들이 소개된 초기에는 크리스털이나 백자 재질 같은 화려한 것들이 인기가 많았다. 이후 안전하고 단단한 나무 모델들이 뒤를 이었다. 푸조는 1889년에 45만 개의 커피 그라인더를 생산해내면서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고, 1996년에 누적 판매량 100만 개를 달성했다. 아직도 자동 기어가 아닌 수동 기어를 고집하는 운전자가 많은 프랑스에서는 손으로 돌리는 수동식 페퍼밀과 솔트밀이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몇 년 전부터 프랑스에 여행 온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선물용 아이템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벼룩시장을 즐겨 찾는 나는 커다란 크기의 푸조 커피밀과 페퍼밀을 컬렉션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생산된 커피밀도 있고 유명한 테이블웨어 디자이너인 토마 바스티드가 디자인한 2006년 자바 모델 등이 작업실 한편에 모셔져 있다. 다음에는 가장 큰 1m 크기의 페퍼밀과 솔트밀을 구입할 예정이다. 정원에서 가족들과 바비큐 파티를 할 때 먼저 접시 위에 스테이크를 내 온 다음 이 거대한 도구의 등장과 동시에 거기에서 뿌려지는 소금과 후추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놀란 표정을 상상하며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을 그려본다.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