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현장에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다. 우리와 외모가 비슷한 재중 동포들과 중국인이 가장 많고, 동남아시아 사람들도 많은 편이며 이국적인 외모의 중동에서 온 노동자들도 가끔은 만난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현장에 출근해 다 같이 모여 체조를 하던 중 금발머리가 눈에 띄었다. 건설 현장에 금발머리 백인이라니, 신기해서 자꾸만 눈길이 갔다. 알고 보니 도배사였다.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당시 팀을 운영하면서 인원 충원 계획이 있었던 나는 새로운 팀을 찾고 있던 세르게이 부부를 만나 함께 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금발머리 외국인이 팀에서 함께 도배를 하고 있는 모습이 생소했다. 건설 현장에서만 사용하는 일본어, 한국어, 영어가 뒤섞인 국적 불명의 용어를 자연스럽게 쓰고, 현장 식당에서 매운 한국 음식도 맛있게 잘 먹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을 함께 땀 흘리고 고생하다 보니 그도 평범한 한 명의 청년일 뿐이었다. 낯을 가리다가도 조금 친해지면 금방 장난을 치고, 새로운 기술에 의욕을 보이다가도 잘 안 되면 의기소침해지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지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우리나라 청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세르게이는 현재 러시아인들로만 구성된 인테리어 팀에서 도배를 하고 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같은 나라 사람들과 마음 편하게 일하고 있어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외국인들이 한국 팀에 잘 섞이지 못하고 결국 그들끼리만 일하게 되는 현실이 조금은 아쉽다. 세르게이는 결혼을 통해 이 땅에 왔고 우리나라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배제를 당한 것 같아서다.
앞으로 세르게이 부부가 열심히 도배를 배우고 익혀 완전한 기술자가 되어 원하는 만큼 수입을 얻고, 한국이든 러시아든 두 사람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낯선 땅에서 낯선 기술을 배우며 살아가는 세르게이가, ‘슬기’라는 한국 이름 그대로 슬기롭게 이 땅에서 배우면서 삶의 경험을 쌓고 어디에서든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