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육지책 끝에 나온 제2부속실 부활 아무 일 없었단 듯 ‘적극 행보’는 곤란 그간 부적절 처신 사과하고 색바랜 ‘내조 전념 다짐’ 다시 해야
천광암 논설주간
김건희 여사에 앵글을 맞춰 보면,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올해 여름휴가는 1년 전, 2년 전과는 많이 달랐다. 작년에는 경남 거제시 저도로 휴가를 떠나는 길에 새만금에서 열린 세계 잼버리 개영식에 윤 대통령과 함께 들른 것이 김 여사 관련 공개 일정의 전부였다. 재작년에도 서울에서 부부가 함께 연극을 봤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는 부산에서 이틀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적극적인 단독 일정을 소화했다. 6일에는 동구에 있는 명란브랜드연구소에 이어 중구에 있는 깡통시장을 방문했고, 수영구 광안리에 있는 카페에도 모습을 나타냈다. 7일에는 영도구 흰여울문화마을,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중구 근현대역사관을 줄줄이 찾았다. 당초 비공개라고 했지만, 대통령실이 이틀간 뜸을 들인 뒤 8일 해당 사진들을 뿌리면서 화제성 면에서 어떤 공개 행사보다 화려한 나들이가 됐다.
통상의 경우라면 대통령 부인이 휴가를 맞아 전통시장이나 지역 명소를 찾는 것은 크게 관심 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제2부속실 부활을 코앞에 둔 시점에, 김 여사가 명품백 사건 이후 이어져 온 ‘잠행 모드’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공공연히 연출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제2부속실 부활과 함께 시작될 적극 행보를 염두에 둔 ‘몸풀기’라는 해석이 많은데, 만약 그렇다면 걱정과 불안이 앞선다.
그럼에도 제2부속실 설치를 주문하는 여론이 비등하게 된 것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줄곧 커져온 ‘김건희 리스크’가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제2부속실을 설치하면, 정체조차 불분명한 인물이 관저로 찾아가 명품백을 건네는 황당한 불상사는 최소한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다. 울며 겨자 먹기이자 고육지책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김 여사는 제2부속실 부활에 앞서 자신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난맥상이 펼쳐지고 있는지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있다. 현직 대통령이 ‘거부권’을 자신의 배우자 특검을 막기 위해 행사하는 것부터 듣도 보도 못한 기막힌 풍경이다. 검찰청사 밖 제3의 장소에서 휴대전화까지 제출하고 비공개 ‘출장 조사’를 벌인 검찰은 더는 “법 앞의 평등”을 운운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반부패 청렴기관이라는 국민권익위원회는 명품백 사건을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 논리로 ‘무혐의 종결’해 국민적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마침내 이 사건을 맡았던 권익위 핵심 간부가 8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안타까운 일까지 벌어졌다. 고인은 명품백 사건 무혐의 종결로 “20년 가까이 부패 방지를 해온 자신의 인생이 부정당하는 것 같다”는 괴로움을 주위에 토로했다고 하니, 김 여사와 결코 무관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김 여사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김건희 리스크’ 해소에 대한 어떤 보장도 없이 제2부속실 보좌를 받겠다고 한다면 곤란한 일이다. 제2부속실 가동에 앞서 김 여사는 적어도 두 가지를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다짐이다. 김 여사가 대선 전에 했던 ‘내조 전념’ 서약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그동안의 국정 간여 및 비선 인사 논란으로 색이 바랜 만큼 다시 한번 분명한 단어로 국민 앞에 약속해야 한다. 영부인으로서의 활동은 정상외교 등 필요 최소한에 그칠 것이고, 모든 것을 비선이 아닌 제2부속실을 통해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진행할 것을 다짐해야 한다.
이런 사과와 다짐이 없다면, 제2부속실 부활 방침을 차라리 철회하는 것이 그나마 ‘공약 파기’라는 짐 하나라도 더는 길이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