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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그후의 재판 야만 시대… 강직 군인 맡은 유쾌한 변호사

입력 | 2024-08-12 03:00:00

조정석-이선균 ‘행복의 나라’
‘서울의 봄’과 다른 감동 선사



영화 ‘행복의 나라’에서 대통령 암살사건에 연루된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이선균·왼쪽)를 접견하고 있는 변호인 정인후(조정석)의 모습. NEW 제공



99BPM.

영화 ‘행복의 나라’를 2시간 4분 동안 관람하며 최고로 올라간 심박수다. 대통령 시해 사건이 벌어지고,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장면에서도 심박수는 100BPM을 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개봉 후 ‘심박수 측정 챌린지’를 유행시키며 1312만 명의 관객을 모은 ‘서울의 봄’을 관람할 때처럼 분노가 치밀어오진 않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웃음과 감동이 찾아왔다. 예를 들어 정인후(조정석)가 자신을 잡으려는 군인들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장면은 유쾌한 웃음을 자아냈고, 그가 가난에 찌든 박태주(이선균) 가족을 찾아가며 변화하는 모습은 찡한 감동을 선사했다.

14일 개봉하는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26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와 그의 변호인 정인후를 다룬 작품이다. 박태주는 김재규 중정부장의 비서실장이었던 실존 인물 박흥주 육군 대령(1939∼1980)을 모델로 했다. 정인후는 허구의 캐릭터로 당시 사건과 재판 과정을 상상으로 재구성했다.

시간적 배경은 ‘서울의 봄’과 비슷하다. 다만 ‘서울의 봄’이 12·12쿠데타를 액션 영화처럼 실감 나게 보여줬다면, ‘행복의 나라’는 재판 과정에서 박태주와 정인후가 겪는 고민과 군인들의 권력 암투를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영화를 연출한 추창민 감독은 6일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의 봄’은 12·12 속으로 들어가 다큐멘터리처럼 사건을 보여줬다”며 “‘행복의 나라’는 사건 자체보다는 10·26에서 12·12로 이어지는 시대상을 다룸으로써 그 시대가 얼마나 야만적이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념 대립이나 거대 담론엔 관심 없는 정인후의 변화는 매력적이다. 정인후는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온갖 꼼수를 쓰고, 돈 버는 데 혈안이 돼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박태주의 강직함에 마음을 열고 그를 살리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모티브로 삼은 합동수사본부장 전상두(유재명)는 감정을 자제하며 극의 긴장감을 이끈다.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황정민)이 사건의 전면에 나선다면, 전상두는 뒤에서 권력을 조종하는 인물로 비친다.

다만 박태주의 고뇌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 상부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군인으로서의 책무와 대통령 시해 사건에 가담한다는 죄책감 사이에서의 갈등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묵직한 질문이 부족한 점이 한계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