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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명 초긍정 팀코리아, 메달보다 빛났다

입력 | 2024-08-12 03:00:00

최소 인원에도 金 13개 최대 타이
“질 자신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젊은 선수들 패기-자신감 돋보여
파리올림픽 ‘새 희망’ 남기고 폐막





기대 넘은 金 13개 파리 올림픽이 17일간의 열전을 마치고 12일 폐막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여름올림픽 역대 최다 타이인 13개의 금메달을 땄다. 파리=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메달만큼 값진 도전’으로 국민들의 새벽잠을 설치게 했던 17일간의 열전 드라마 파리 올림픽이 12일 막을 내렸다. 한국은 1978년 몬트리올 대회(50명) 이후 가장 적은 144명의 선수가 출전해 메달 전망이 밝지 않았다. 하지만 태극전사들은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국민들에게 연일 ‘행복 드라마’를 선물했다.

한국은 금메달 13개를 따내며 역대 최다 금메달을 기록했던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대회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올림픽 개막 전 목표치(금메달 5개)의 2배를 훌쩍 넘겼다. 은 9개, 동메달 10개로 전체 메달은 32개를 기록했다.

대회 개막 다음 날인 지난달 28일 오상욱의 펜싱 사브르 남자 개인전 우승으로 금메달 레이스를 시작한 한국은 사흘간 금메달 5개를 따내며 일찌감치 목표치를 채웠다. 8월 들어선 첫날부터 5일 연속 금메달 소식을 전하며 새벽까지 TV 앞을 지키던 국민들을 기쁘게 했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10대 선수들이 보여준 ‘영 파워’는 금메달에 더해 한국 스포츠의 희망을 엿보게 했다. 한국 선수 중 ‘가장 젊은’ 반효진(17)은 지난달 29일 사격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 우승하며 여름 올림픽 역대 100번째 금메달을 따냈다. 같은 날 ‘10대 궁사’ 남수현(19)도 임시현(21) 전훈영(30)과 힘을 합쳐 한국 여자 양궁의 올림픽 단체전 10연패 달성에 힘을 보탰다. 앞서 오예진(19)도 개막 이틀째인 지난달 28일 사격 여자 10m 공기권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반효진과 함께 한국 사격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한국 여자 복싱 선수 최초로 올림픽 메달(동메달)을 차지한 임애지(25)는 한국 복싱이 살아 있음을 팬들에게 알렸다. 배드민턴 안세영(22)은 무릎 부상에도 투혼을 발휘하며 여자 단식 정상에 올라 역대 두 번째이자 28년 만에 올림픽 단식 금메달을 한국에 안겼다.

세계 최고 레벨의 경쟁 무대에서도 기죽지 않는 젊은 선수들의 패기와 자신감, 긍정 사고도 빛났다. 펜싱 사브르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 비밀병기로 출격해 ‘신스틸러’로 등극한 도경동(25)은 경기 후 “질 자신이 없었다”는 말로 대표팀 코치와 선배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사격 여자 25m 권총 금메달리스트 양지인(21)은 0.1점 차로도 승부가 갈리는 박빙의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되겠지.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하며 표적지를 겨누는 ‘초긍정’ 마인드를 보여줬다.

불혹의 비보이 ‘홍텐’ 김홍열(40)은 올림픽 브레이킹 초대 챔피언 등극엔 실패했지만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20대 비보이들과의 경쟁에서 열정만큼은 밀리지 않았다.




“나는 아직 어리다” 4년뒤 더 기대되는 젊은 그들


[2024 파리올림픽]
메달보다 빛난 ‘초긍정 팀코리아’
김우진, 도쿄 개인전 부진에 갈고닦아… 김유진 “나만 무너지지 말자” 깜짝 金
메달 못딴 김수현-서채현 “LA 기약”

파리 올림픽 메달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빛나는 도전’을 했던 근대5종 전웅태, 역도 김수현, 수영 황선우, 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왼쪽 사진부터). 역도 여자 81kg급에서 6위를 한 김수현이 “4년 뒤에는 좀 더 ‘센캐’(센 캐릭터) 수현이가 등장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것처럼 이들과 후배들은 4년 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향해 뜨거운 도전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파리=뉴스1·뉴시스·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은 ‘챔피언’이자 ‘도전자’였다. 한국 여자 양궁은 1988년 서울 대회부터 2021년 도쿄 대회까지 9회 연속 금메달을 땄다. 올림픽 10연패 도전에 나선 임시현(21)-전훈영(30)-남수현(19)은 대회 내내 어깨 위에 무거운 짐을 질 수밖에 없었다. 세 명 모두 처음 출전하는 올림픽이었고, 역대 가장 약한 전력이란 평가가 따라다녔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지금껏 자신들이 쐈던 화살의 힘을 믿는 것뿐이었다.

하루 400∼500발의 화살을 쏘아 온 과정이 파리 올림픽에서 빛을 발했다. 위기의 순간마다 10점을 쐈다. 한 선수가 부진하면 다른 선수가 틈을 메웠다. 임시현은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빨리 끝나 버리면 너무 아쉽지 않나. 그래서 더 악착같이 쐈다”고 했다. 10연패를 달성한 이들은 “이제는 잠 좀 제대로 잘 수 있겠다”고 했다.

남자 양궁 3관왕에 오른 김우진(32) 역시 도전자였다. 그는 앞선 두 번의 올림픽에서 모두 단체전에서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실력은 세계 최고였지만 개인전에선 이상하리만치 경기가 풀리지 않았다. 도쿄 대회 이후 3년간 그는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았다. 주변에서는 “안 그래도 천재가 완벽주의자가 됐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대회에서는 개인전 우승이란 꿈을 이뤘다. 혼성전과 단체전까지 3관왕에 오른 그는 역대 한국 선수 최다 금메달(5개)을 보유하게 됐다. 남녀 에이스 김우진과 임시현의 활약 속에 한국 양궁은 이번 대회에 걸린 금메달 5개를 모두 가져왔다. 둘은 나란히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여자 태권도 57kg에 출전해 깜짝 금메달을 딴 세계 랭킹 24위 김유진(24)에게 이번 대회는 ‘도장깨기’의 연속이었다. 세계 랭킹이 낮아 국내 선발전, 아시아 대륙 선발전을 거쳐 겨우 파리행 티켓을 땄다. 올림픽에서는 세계 랭킹 1위, 2위, 4위, 5위를 모두 이겼다. 그는 “세계 랭킹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나 자신만 무너지지 말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태권도 남자 58kg급 금메달리스트 박태준(20)도 ‘도전의 아이콘’이다. 이 체급 최강자였던 대표팀 선배 장준(24)에게 여섯 번 연속 패한 끝에 7번째 대결에서 승리해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는 “선발전을 앞두고 기본 자세를 아예 반대로 바꾸는 등 스타일을 바꿔 상대했다”고 했다. 박태준은 파리 올림픽에서도 상대 선수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을 사용해 효과를 봤다.

2012년 런던 대회 이후 12년 만에 한국 복싱에 메달을 안긴 여자 54kg급 임애지(25)는 동메달을 딴 뒤 “훈련하다 보면 다음 올림픽까지 4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지 않을까 싶다. 사실 올림픽만 무대가 아니다”라며 “작은 대회부터 우리 선수들은 열심히 한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외에도 많은 대회가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기대했던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4년 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도전장을 낸 선수도 적지 않다. 주 종목인 자유형 200m 결선 실패 등 대회 내내 부진하며 마음고생을 했던 수영의 황선우(21)는 “아프지만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게 많다는 걸 깨달은 것도 자극이 된다”며 “그동안 나 자신을 나이 든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아직 어리더라.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도 도전할 수 있다. 다시 4년을 준비할 힘을 얻었다”며 웃음을 되찾았다.

육상 남자 높이뛰기에서 7위를 한 우상혁(28)은 “계속할 수 있다고 믿고 두드리다 보면 원하는 위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번 대회 6위로 두 대회 연속 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한 전웅태(29)는 “근대5종을 계속할 거고, 더 나은 선수가 되려고 노력하겠다”며 도전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역도 여자 81kg급에서 6위를 한 김수현(29)은 “4년 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좀 더 ‘센캐’(센 캐릭터) 수현이가 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3년 전 도쿄 대회 8위에서 이번 대회 6위를 한 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21)은 “두 계단 올렸으니 다음엔 더 끌어올려 꼭 메달을 따보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여자 골프 양희영(35)과 브레이킹의 ‘홍텐’ 김홍열(40)은 후배들에게 도전을 이어갈 것을 부탁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4위에 이어 이번에도 4위를 한 양희영은 “어렵게 얻은 올림픽 출전 기회여서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했다”며 “다음 올림픽에는 저보다 더 젊고 실력 좋은 선수들이 와서 꼭 메달을 따면 좋겠다”고 했다. 마흔의 나이에 올림픽 무대를 처음 밟았던 김홍열은 다음과 같은 말로 올림픽을 마무리했다. “내가 여기서 당한 거 후배들이 다 복수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파리=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