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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인문학으로 세상 읽기]집, 삶의 터전 대신 부를 쌓는 수단이 됐어요

입력 | 2024-08-12 22:54:00

현대사회에서 대부분의 공간은
안식처보다 자본의 역할에 치중
그저 사고파는 부동산이 아닌
애정-경험 쌓는 장소로 인식을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삶의 터전이자 부를 쌓는 수단이 돼 왔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주택 매매 거래 가운데 아파트 비중이 76%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지역의 한 아파트 단지 전경. 동아일보DB



얼마 전 수도권의 한 아파트 무순위 청약에 전 국민의 6%에 해당하는 294만 명이 몰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은 부를 쌓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여겨집니다. 어쩌면 우리는 어떤 공간에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어떤 공간으로 돈을 벌 것인가를 더 고민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 인간과 공간의 관계

올해 개봉한 영화 ‘파묘’와 2018년 나온 영화 ‘명당’의 공통점은 ‘풍수’를 소재로 다뤘다는 것입니다. 풍수 사상의 핵심은 인간의 삶과 죽음이 공간과의 유기적 관계 속에 놓여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공간의 기운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인식해 왔습니다. 원시시대에도 인간은 자연재해와 외부 침략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거주 공간을 선택했습니다.

풍수 사상에는 자연적 공간 질서에 어긋난 삶을 살지 않겠다는 의도가 녹아 있습니다. 수렵사회나 농경사회에서 인간이 자연적 질서에 어긋난 삶을 살면 생존이 위태로워졌을 겁니다. 풍수 사상은 이런 맥락 속에서 형성됐습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오면서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고 이에 따라 공간에 대한 인식도 변했습니다. 근대 전에는 자연 질서를 거스르지 않고 이로움을 얻고자 했다면, 근대 이후에는 자연 공간을 도구화해 이로움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지금은 부동산에도 인간이 공간을 도구화하려는 욕망이 녹아 있습니다.

● “장소는 인간다운 삶의 기본 조건”

인문 지리학자 이푸 투안은 공간과 장소를 서로 다른 것으로 봤습니다. 먼저 공간은 객관적인 구조물이라고 했습니다. 공간은 길이와 부피가 있고 측정이 가능하죠. 또 공간에 인간의 주관적 요인이 더해지면 ‘장소’가 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공간을 이용할 때 공간에 대한 기억과 감정이 쌓입니다. 기억과 감정은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죠. 집이란 공간에서 인간이 생활하고 추억이 쌓이면 집은 가족공동체의 의미 있는 공간이자 장소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장소는 인간이 뿌리내린 곳입니다. 뿌리내린다는 건 자신이 세상을 살아갈 물리적, 정신적 근거지를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이 때문에 인간에게 장소란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한 기본 조건입니다. 투안은 ‘토포필리아(Topophilia)’, 즉 장소에 대한 사랑(장소애)이 있어야 인간이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고 안정적인 삶이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반면 현대사회에서 대부분의 공간은 돈을 벌기 위한 곳의 역할을 합니다. 도시의 공간들은 대부분 돈을 지불한 뒤에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현대 도시인들은 도시라는 공간에서 외로움과 소외감 등을 느끼는 건 물론이고 장소애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늘었습니다. 인문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는 이를 ‘장소 상실’이라고 불렀습니다.

● 어느 장소에서 살고 싶은지 고민해야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자신만의 ‘장소’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홀로 있을 때도 외롭지 않고,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 공동체의 일원으로 내부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주는 장소가 있습니까? 언론 등에서 ‘집’을 장소라고 부르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오히려 ‘부동산’이라 부르면서 ‘움직이지 않는 재산’으로 의미화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부동산에 대한 욕망은 두 방향일 것입니다. 하나는 부동산을 사회·경제적 지위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이 더 비싸졌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공간을 어떤 장소로 가꿀 것인가보다 자본으로서의 역할에 더 큰 관심을 두는 것입니다.

부동산과 관련된 욕망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해결책은 아닙니다. 금지할수록 더 욕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부동산에 대한 지나친 욕망으로 장소에 대한 경험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장소나 공간을 매개로 사람들과 다양한 경험과 추억을 쌓아갑니다. 이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인간의 정체성을 만들죠. 일상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다양한 일화를 만들며 공간은 ‘장소’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장소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는 것이죠.

인간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을 때 더 이상 공간은 사고팔면 그만인 ‘부동산’이 아닐 겁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좁게는 집에서, 넓게는 지구나 우주에서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장소에서 살고 싶으신가요?



박권주 진주 대아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