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모데나 남쪽 근교에 있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집 박물관’. 파바로티가 만년을 보냈고 삶을 마친 곳이다. 모데나=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10일 찾은 이곳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에 이어 열 달 만이다. 박물관 홈페이지의 소개에 특별히 덧붙일 말은 없다. “이 집에는 파바로티가 사랑했던 물건들이 있으며 가족, 친구, 학생들과 보낸 나날들의 추억이 전시되어 있다. 따뜻한 빛이 공간을 채우고 하늘을 바라보는 거대한 창문이 방을 비추며 프랭크 시나트라, 다이애나 공주와 같은 친구들의 사진과 그림, 편지를 볼 수 있다. 오페라 의상과 독특한 기념품, 수많은 상패가 그의 빛나는 경력을 보여주지만 일상적인 물건들은 이 위대한 예술가 뒤에 있는 소박한 인물을 보여 준다.”
모데나에서 태어난 파바로티는 1970년대 초반 예술적 정점에 올랐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 주빈 메타 지휘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함께한 푸치니 ‘투란도트’ 등이 이 무렵 녹음됐고, 세계 음악 팬들은 파바로티의 마법에 사로잡혔다. 어린 나도 대기권으로 태양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파바로티의 목소리에 매혹됐다.
공연장에 간 것은 아니었다. 주최사인 MBC는 공연 실황을 TV로 중계했고 성악 팬인 나와 형은 처음부터 끝까지 꼬박 앉아 이 공연을 시청했다. 공연은 며칠 뒤 라디오로 방송됐고 형제는 카세트 리코더로 공연을 녹음했다. 그해 겨울 내내 닳고 닳도록 이 테이프를 들었다. 언젠가부터 이 카세트의 행방을 찾을 수 없게 됐다. 아쉽긴 했지만 아쉬움이 크지는 않았다. 그 공연의 모든 것이 머릿속에 그려지듯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약간은 놀라운, 조금은 의아한 발견도 있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몬트리올의 파바로티, 1977’이라는 음원을 보게 됐다. 글루크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중 ‘에우리디체 없이 어찌 할까’, 베토벤 ‘이 어두운 무덤 속에’, 도니체티 ‘뱃노래’ 등 세 곡이 들어 있었다. 세 곡 모두 파바로티가 같은 해 서울에서 부른 곡이다. 사소한 강약 변화나 가사(딕션)의 사소한 부분까지 머릿속에 남아 있는 노래와 일치했다. 물론 파바로티가 그 시절 세계 곳곳에서 닳고 닳도록 노래한 레퍼토리이니 똑같이 들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혹시 이 음원을 게시한 사람은, 실은 서울에서 녹음된 ‘출처불명’의 노래들에 그럴싸한 지명을 붙인 것은 아닐까?
모데나는 파바로티와 동갑내기인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1935∼2020)의 고향이기도 하다. 프레니 역시 일세를 풍미한 대가수였으며 두 사람은 남다른 인연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를 지배한 파시스트는 사회 효율화의 일환으로 여성들을 공장에 보냈다. 엄마가 일하는 동안 어린 아기들은 ‘전담 유모’의 젖을 먹었다. 파바로티와 프레니에게 젖을 먹인 유모는 같은 여성이었다.
프레니는 ‘덩치 큰 파바로티가 젖을 독차지하지 않았을까?’라는 물음에 “루치아노(파바로티)는 10월생이고 저는 2월생이거든요. 제가 누나고 그땐 덩치도 더 컸겠죠”라며 웃음을 지었다. 나는 5년 전 다큐멘터리 영화 ‘파바로티’를 소개하면서 ‘프레니가 (파바로티에 대해) 한마디도 들려주지 않은 점이 의아하다’고 적었다. 다큐 제작 당시 프레니가 병석에 누워 있었던 점을 몰랐던 것이다.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