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5세부터 다니는 영어유치원에 입학하려면 아이가 ‘4세 고시’라 불리는 레벨 테스트를 봐야 한다. 그런데 실력이 있다고 4세 고시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먼저 ‘입금 전쟁’을 치러야 한다. 영어유치원 입학 대기 줄이 길다 보니 원비를 선착순으로 입금받아 레벨 테스트 대상자를 정한다. 3초 안에 입금이 마감된다고 해서 ‘3초 컷’이다. 부모가 선착순 입금에 성공해야지 아이가 4세 고시를 볼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1000명 넘게 레벨 테스트를 치른 한 영어유치원은 응시료 수입만으로 서울 강남 월세를 냈다는 이야기가 돈다.
▷조기 영어 교육 열풍을 타고 전국 영어유치원은 지난해 843곳으로 일반 유치원(8441곳)의 10% 수준까지 불어났다. 2019년(617곳)에 비해 37%가 늘었다. 저출산 여파로 일반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급감한 것과 달리 영어유치원은 ‘저출산 쇼크’에서 비켜나 호황을 누린다. 지난해 어린이집은 2만8954곳으로 4년간 23%나 주는 등 줄폐업이 이어졌다.
▷똑같이 3월에 새 학기를 시작하고 유치원이라는 이름을 강조하지만, 영어유치원은 사실 영어학원이다. 학원법 적용을 받아 교습비 상한선도 없고, 학원이 정하기 나름이다. 전국 평균 월 교습비는 141만6000원이다. 서울만 보면 200만 원에 가깝다. 요즘 영유아 공교육(유치원)과 공보육(어린이집)은 정부 지원이 늘어 거의 무상이다. 그런데도 비싼 영어유치원이 필수 코스가 되어 버린 건 공교육이 충족시킬 수 없는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외국어는 일찍 배울수록 좋다’는 경험칙을 믿는 부모들은 아이가 어린 나이에 영어에 노출되기를 바란다.
▷일단 영어유치원 경로로 들어서면 공교육 이탈이 시작된다고 봐야 한다. 소수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교육을 기대하고 사립초나 국제학교 진학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자녀 수가 줄어들수록 다양한 교육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틀에 갇힌 공교육은 이런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이들을 사교육으로 자꾸 밀어낸다. 외동이를 최고로 키우고 싶은 부모의 동기와 공교육의 무기력, 학원의 상술이 화학 작용을 일으키며 영유아 사교육비도 폭증했다. 평등한 출발선이어야 할 영유아 교육도 사교육이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