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 한국임상고혈압학회 회장·힘내라내과 원장
혈압은 우리 건강의 중요한 지표지만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내용도 많다. 특히 혈압 측정 및 관리에 있어 일반인들이 흔히 가진 오해 중 하나는 병원에서 측정한 혈압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정에서 측정한 혈압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집에서 혈압을 재는 경우 진료실에서 재는 혈압보다 일상생활의 실제 혈압을 더 잘 반영한다. 또 집에서든 진료실에서든 늘 혈압이 높은 지속성 고혈압, 진료실에서만 긴장해 혈압이 올라가는 백의고혈압, 반대로 진료실에서만 수치가 괜찮고 일상에서는 혈압이 높은 가면고혈압 등을 구분하려면 가정 내 혈압 측정이 필요하다.
주의해야 할 점은 가정에서 측정한 가정혈압의 고혈압 기준이 진료실 기준과 다르다는 것이다. 진료실에선 140/90㎜Hg 이상을 고혈압으로 판단하지만 가정혈압의 경우 135/85㎜Hg 이상부터 고혈압으로 간주한다. 이는 많은 국민이 모르는 중요한 차이점이다. 그런 만큼 집에서 반복적으로 혈압이 135/85㎜Hg 이상 나온다면 의사와 꼭 상담할 필요가 있다. 싱겁게 먹고, 체중을 줄이고, 담배를 끊고, 채소 섭취를 늘리고, 꾸준히 유산소운동을 하는 것 외에 혈압약 처방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수치를 그대로 방치하면 정상 혈압(120/80㎜Hg 미만)에 비해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2배나 높아진다.
혈압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관리를 위해 노력하는 건 전 세계적 현상이다. 예를 들어 9·11테러 이후 미국 뉴욕에서 스트레스로 시민들의 혈압이 평균 1.7∼3.8㎜Hg 상승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이는 스트레스가 혈압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또 일본고혈압학회는 2018년부터 ‘활기찬 100년을 위한 좋은 혈압’이라는 슬로건 아래 향후 10년간 고혈압 환자 수를 700만 명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평생 고혈압 관리 시스템 구축, 새로운 학문 분야 개발, 자가 혈압 조절 및 사회 교육 모델 구축 등 세 축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올 10월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선 ‘사회와 조화되는 신(新)고혈압’을 목표로 전국 지자체 17곳이 참여하는 ‘고혈압 제로 도시 만들기’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임상고혈압학회가 가정혈압 측정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특히 ‘대국민 혈압 2㎜Hg 더 낮추기’ 캠페인을 전개하며 숏폼(짧은 영상) 위주의 유튜브 채널 운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다. 이런 노력이 향후 국민 건강 증진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
이혁 한국임상고혈압학회 회장·힘내라내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