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이견 적은 민생 법안 통과 ‘0’ 대통령 거부할 법안만 골라서 발의 문제 해결 않고 문제 자체가 된 국회 이런 국회론 국가 경쟁력 후퇴할 뿐
이진영 논설위원
국회의원들이 지켜야 하는 법에는 ‘일하는 국회법’도 있다. 세비는 따박따박 받아가면서 일은 하지 않으니 상임위원회별로 월간 최소한의 회의 개최 횟수를 법으로 정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요즘 국회 회의장을 분주히 오가며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는 의원들을 보면 일하는 국회가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5월 30일 개원한 22대 국회의 입법 활동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기록 갱신이 목표인 것 같다. K칩스법이나 예금자보호법처럼 이견이 적고 시급한 민생 법안은 제쳐 두고 정부가 ‘불법파업조장법’(노란봉투법), ‘현금살포법’(25만 원 지원법)이라며 반대하는 법안만 골라서 통과시키고 있다. 특검법도 ‘김건희 특검법’ ‘윤석열 김건희 특검법’ ‘권익위 김건희 윤석열 특검법’을 포함해 9건이 발의된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횟수는 19회로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승만 대통령(45회)에 이어 2위 기록이다. 입법 취지가 좋더라도 무력화될 게 뻔한 법을 통과시키는 것은 더불어민주당 출신인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말을 빌리면 “국회의 입법권을 훼손하는 행위”다.
개원 두 달여 만에 탄핵을 7건이나 추진한 것도 기네스북 감이다. “이재명 대표님과 가족, 동지들을 괴롭힌 무도한 정치 검사들”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됐고, 공영방송 경영진 인사를 담당하는 방송통신위원장은 임명되는 족족 탄핵 압박에 사퇴하거나 직무 정지를 당하고 있다. 야당은 “윤 정부의 방통위원장 인재 풀이 고갈될 때까지” 탄핵하겠다고 한다. 가장 최근에 임명된 이진숙 위원장은 취임 하루 만에 탄핵당했다. 어차피 탄핵할 위원장 인사청문회는 왜 역대급으로 사흘씩이나 한 건가.
한국 국회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입법 품질이 떨어지고 효율도 낮은 편이다. 다른 나라는 법안 발의 건수에 큰 변화가 없는데 한국은 20년간 10배 늘어 연간 2만 건 넘는 법안이 발의된다. 하지만 같은 기간 가결률은 40%에서 10% 안팎으로 하락 추세다. 고비용인데 저효율이다. 왜 그럴까.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최근 방송에서 “왜 이렇게 한국 정치가 자꾸 나빠지는 거냐”는 질문을 받고 국회의원 연봉을 거론하며 “정치인이 아주 뛰어난 전문직 인사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직업이 돼 버렸다”고 했다. 대신 “선거 기득권 지키기는 잘하고 논리적 변설엔 약한”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연봉을 올린다면, 그래서 뛰어난 인재가 몰려들면 나아질까.
국회의원 올해 연봉은 1억5690만 원으로 국민 소득 수준에 비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민생 법안 처리는 미뤄도 세비는 때마다 올려 받은 덕분이다. 의원실 운영비에 보좌진 연봉 등을 합하면 의원 1인당 연간 예산이 8억1400만 원이다. 의원실 규모도 45평으로 책상 하나 겨우 들어가는 영국 의원실(1.8평)의 25배나 된다. 의원들이 누리는 특혜가 180가지라고 한다. 다른 공공기관은 에너지 절감을 위해 여름에도 실내 온도를 28도로 맞춰야 하지만 ‘공공기관 냉난방 카스트’의 최상위에 위치한 국회는 회의장에 들어가면 긴팔 입고도 으슬으슬 추울 정도다. 지금 받는 연봉과 특혜도 줄여야 한다는 게 여론인데 어떻게 늘리겠나.
21대가 22대가 되고 새 사람이 들어와도 나빠지기만 한다면 이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필요하다.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문제 자체가 돼 가고 있는 국회 개혁 없이는 될 일도 안 되겠다. ‘일하는 국회’도 정착되지 않은 시점이지만 생산적으로 경쟁하는 국회, ‘일 잘하는 국회’를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당장은 쌈박질할 땐 에어컨이라도 끄고 했으면 한다. 폭염 재난 문자를 하루에 34번씩 받는 상황이라 정장 갖춰 입고 열 올리며 막말 주고받는 동안에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의원들을 보고 있으면 열불 난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