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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 연봉에, 외부 심사위원-사외이사 ‘투잡’ 뛰는 교수들

입력 | 2024-08-14 03:00:00

[16년째 묶인 대학등록금]
사립대 교수 급여, 4년간 0.8% 올라… ‘최대 100만원’ 외부 강연 찾아가고
공공기관 입찰 용역 평가위원 응모
대학들, 강의 소홀 알면서도 못막아… “규제 풀고 등록금 인상 자율권 줘야”





‘지방자치단체 입찰 용역 제안서 평가위원을 공개모집합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이 같은 공고가 올라올 때마다 지원서를 낸다. 하루 몇 시간만 자리를 채우면 20만∼30만 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은 입찰 평가를 제안서평가위원회에 맡겨야 하는데 위원 자격은 ‘해당 분야 대학교수 등 전문가’ 등으로 규정돼 있다. 이 교수는 “평가위원으로 공공기관에 자주 가다 보면 보따리장수가 된 것 같지만 교수 급여가 장기간 안 올라 별수 없다”며 “교수들 사이에선 ‘급여는 아내에게 곧장 가 손을 못 대니 용돈은 따로 벌어야 한다’는 말을 한다”고 밝혔다.

정부 규제로 대학 등록금이 16년째 동결되면서 대학교수 상당수의 급여도 제자리걸음을 이어 가고 있다. 실제로 사립대의 경우 호봉 승급분을 제외하면 16년째 급여를 한 푼도 못 올려준 대학이 많다. 그렇다 보니 캠퍼스에선 심사위원이나 평가위원, 사외이사, 기업 특강 등 ‘생계형 투잡’에 열심인 교수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학 측에서도 급여를 못 올려 주다 보니 과도한 대외활동이 강의와 연구 소홀로 이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눈감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사립대 교수 급여 4년간 0.8% 올라

13일 교육부에 따르면 사립대 교수 급여는 2019년 1억62만2000원에서 지난해 1억139만4000원으로 4년 동안 77만2000원(0.8%) 올랐다.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국공립대 교수 급여가 같은 기간 1억1011만7000원에서 1억1873만7000원으로 862만 원(7.8%) 오른 것과도 차이가 크다.

장기간 오르지 않은 교수 급여는 이달 초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에서도 화제가 됐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과학기술원 교수 평균 임금이 1억3000만∼1억4000만 원인데 삼성전자는 7억2000만 원”이라고 했다.

급여가 안 오르다 보니 교수들은 ‘투잡’을 뛰는 경우가 많다. 기업 특강 등 외부 강연이 대표적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총장은 “소속 교수들의 외부 강연 신고 건수를 합치면 많을 때는 한 달에 800건이나 된다”며 “최대 10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보니 본업인 교육이나 연구보다 강의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상법 시행령에 따라 최대 2개까지 겸직할 수 있는 사외이사도 선호 대상으로 꼽힌다. 한 사립대 총장은 “대기업 사외이사로 활동하면 1억 원 넘게 받는다. 이사회나 이사회 내 위원회 회의 참석을 통해 연봉에 맞먹는 보수를 받다 보니 겸직 허가를 다 해주는 게 맞는지 매 학기 고민이 된다”고 했다.

다만 대학 내에선 부작용을 알면서도 교수들의 대외활동을 막지 못하고 있다. 대외활동 허가 권한을 가진 대학 총장들도 ‘매년 교수들 연봉을 올려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부 활동을 적극적으로 막기는 쉽지 않다’는 분위기다.

잘하면 대박을 낼 수 있는 창업에 몰두하는 교수도 적지 않다. 서울의 주요대 총장은 “교수 처우가 상대적으로 좋지 않으니 창업하고 돈 벌겠다고 뛰어다니며 수업에 소홀한 교수도 있다”며 “남미의 경우 법대 교수들이 낮은 급여 때문에 변호사 활동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밤새우며 ‘정부 사업 따내기’ 사활

학생 눈높이와 물가는 오르는데 등록금 수입은 그대로라 상당수 대학은 정부 재정지원 사업을 따내는 것에 필사적이다. 이때도 교수들이 보고서 작성 등에 동원된다.

비수도권 소재의 한 사립대는 최근 교수업적평가 기준에 ‘정부 사업·연구에 지원서를 얼마나 제출했는가’라는 항목을 추가했다. 과거에는 ‘얼마나 수주했는지’를 잣대로 평가했는데 지원서류 작성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까지 보겠다는 것이다. 이 대학 총장은 “장기간 등록금 동결로 학교가 돈이 필요하니 교수들에게 전공과 관련이 크지 않더라도 일단 많이 지원서를 내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지방의 다른 사립대 총장도 “보통 정부에 제출할 사업계획서 하나를 준비하는 데 2, 3개월 걸리는데 관련 학과 거의 모든 교수를 동원한다”며 “매일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일이 잦다 보니 교수들 사이에서 수업에 쏟을 열정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푸념이 나온다”고 했다.

교육계에선 대학교수들이 ‘교육’과 ‘연구’라는 본업에 충실하게 만들기 위해선 연봉 인상 등의 유인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각 대학은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1.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등록금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교육부가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에는 국가장학금 Ⅱ 유형을 지원하지 않는 식으로 규제한 탓에 현실적으로는 대학들이 등록금을 16년째 못 올리고 있다.

한 총장 출신 교육 전문가는 “챗GPT 개발사인 오픈AI가 AI 전문가에게 연봉으로 11억 원을 주는 상황에서 한국에서 교수를 할 AI 전문가를 찾을 수 있겠느냐”며 “정부가 첨단 분야를 키우겠다면서 등록금 규제를 통해 우수 인재 영입을 어렵게 만드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법에 규정된 대로 각 대학에 등록금 인상 자율권을 줘 등록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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