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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車담대’에 예금도 담보로… 불황형 대출 내몰린 서민

입력 | 2024-08-14 03:00:00

은행 대출 막히자 급전 융통에 몰려
신용카드 대출 40조 돌파 사상 최대
車담보대출 조회 1년새 118% 폭증
취약계층 불법 사채로 밀려나기도





“반년 넘게 카드, 캐피털 회사에 단기대출이 가능한지 문의했지만 줄줄이 거절당했어요. 지인들에게 급전을 빌리며 신세를 지는 것도 이젠 눈치가 보입니다. 결국 사금융 업체에 문의를 해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중소기업을 다니는 박모 씨(44)는 13일 기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부모님 두 분의 병간호를 도맡고 있다 보니 월급으로는 생활이 여의치 않았고 차근차근 모아둔 2억 원 안팎의 여윳돈도 이제 바닥을 드러냈다. 박 씨는 “부동산, 자동차 같은 담보도 없고 신용점수가 600점이 채 안 돼 도무지 생활비를 빌릴 곳이 없다”고 말했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카드론, 보험약관대출 잔액이 급증한 데 이어 보유 중인 자동차까지 담보로 맡기고 급전을 마련하는 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 맡길 수 있는 담보라도 있으면 상황이 나은 편으로 박 씨처럼 담보도 없는 취약계층은 불법 사금융과 같은 ‘사각지대’로 밀려나는 모습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돈줄이 막히면 서민들이 가장 먼저 찾는 ‘카드론’ 잔액(9개 카드사 합계)은 사상 최대 규모인 40조6059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고, 예금담보대출 잔액도 급증하고 있다. 대출 비교 플랫폼 ‘핀다’를 통해 올 상반기(1∼6월) 동안 자동차담보대출(차담대) 한도를 조회한 건수도 1484만 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118% 증가했다. 지난해 하반기(7∼12월)와 비교해도 226%나 늘어난 수준이다. 차담대는 차량만 소유하고 있으면 소득조건, 신용점수와 상관 없이 받을 수 있는 대출로 카드론, 보험약관대출, 예금담보대출 등과 함께 대표적인 ‘불황형 대출’로 분류된다.

불황에 고금리가 겹친 데다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이 연체율 부담으로 중저신용자 대상 대출을 줄이면서 ‘불황형 대출’이 날로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제도권 바깥으로 밀려나는 취약계층도 덩달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2금융권이 중저신용자 대출에 소극적이라 차담대를 비롯한 불황형 대출로 자금 수요가 옮겨 간 것”이라며 “(공급은 한정돼 있으니)부득이하게 불법 사금융에 문을 두드리는 취약계층이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서민들, 보험금 등 담보로 급전대출… 중산층은 ‘주담대’ 집 투자


[늘어나는 ‘불황형 대출’]
대출 양극화 갈수록 심화
3년새 예금대출 25%-보험 12%↑… 담보도 없는 서민은 사금융 손대
중산층은 대출 늘려 ‘부동산 매입’… 2금융권도 우량신용자에만 대출

백화점 직원 이모 씨(38)는 최근 대출 상담사를 통해 자동차담보대출(차담대) 상담을 받았다. 주택담보대출과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다 소진한 탓에 생활비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었던 이 씨는 가까스로 캐피털 회사로부터 1500만 원의 차담대를 받는 데 성공했다. 이 씨는 “올해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교과 외 활동, 학원비 등의 지출이 단기에 부쩍 늘어났다”며 “저축은행에서 ‘담보 없으면 대출을 안 해준다’고 해서 차담대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서민들은 생활비 마련조차 버거운 ‘대출절벽’ 상황에서 차까지 담보로 맡기고 있지만 신용점수나 소득이 높은 이들은 부동산 구입 등을 위해 가계대출을 큰 폭으로 늘리고 있다. 대출 시장에도 고신용자와 중·저신용자 간의 양극화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차담대 등 불황형 대출 폭증

최근 들어 차담대 수요가 몰리는 것은 소득 조건, 신용점수 등과 상관없이 대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용대출보다 대출 한도가 높지만 그만큼 금리 부담도 크다. 6월 말 기준 저축은행이 신규로 취급한 차담대 금리는 최저 연 9.80%, 최대 19.99%였다.

대출 비교 플랫폼 핀다에 따르면 지난 한 달 동안 차담대 한도를 조회한 고객 중에선 30대와 40대의 비율이 각각 30.2%, 37%를 차지했다. 서관수 핀다 파트너십 총괄 이사는 “그만큼 한국 경제의 허리 계층을 차지하는 3040세대의 급전 수요가 많아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차담대와 함께 ‘불황형 대출’로 꼽히는 상품들의 잔액들도 하나같이 역대 최고치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롯데, BC, 삼성, 신한, 우리, 하나, 현대, KB국민, NH농협 등 국내 주요 카드사 9곳의 카드론 잔액은 6월 말 기준 40조6059억 원으로 지난해 12월 이후 6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예금담보대출도 6월 말 기준 4조7831억 원으로 3년 전 대비 25% 증가했다. 본인의 보험계약을 담보로 자금을 마련하는 보험약관대출 잔액도 5월 말 기준 54조1703억 원으로 3년 전 대비 12% 늘어났다.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캐피털 등 2금융권이 중·저신용자 대출에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금리는 높더라도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은 불황형 대출 잔액이 폭증한 것으로 풀이된다.

● 서민들은 돈줄 마르는데 중산층 주담대는 급증

예금, 보험, 자동차 등을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릴 수 있는 이들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담보를 추가로 제공할 여력이 없거나, 대출 한도가 꽉 찬 서민들은 급전을 마련할 방법이 도무지 없어 사금융으로 내몰리고 있다. 현재 구직 중인 노모 씨(42)는 카드값을 갚기 위해 돈을 빌릴 곳을 찾고 있지만 대출 한도가 꽉 차 사금융 업체와의 상담을 고민 중이다. 노 씨는 “사금융 이자율이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카드값을 변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포털 카페 검색, 전화 문의 등을 통해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저신용자 취약계층을 위해 마련된 정책금융 상품도 예산 부족 등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서민금융진흥원이 지난해 3월 출시한 소액생계비 대출은 얼마 남지 않은 금융권 기부금과 대출 회수금 등으로 제도를 운영해야 할 상황이다. 13일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내년 소액생계비 대출 제도 운영을 위한 예산은 내년도 예산안 최종 심의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듯 중·저신용자들에게는 돈줄이 바짝 말라가는데 가계대출 증가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소득과 신용점수가 높은 고신용자들이 ‘부동산 쇼핑’에 나서면서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서민들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 대출 문턱을 낮춰줄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이들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연체율 관리를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서민들의 급전창구’를 자처하던 2금융권도 서민형 대출을 외면한 채 담보 대출과 우량 신용자 대출에만 목매고 있는 상황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서민들이 돈 빌릴 곳이 없으니 카드론, 보험약관대출 등에 이어 자동차까지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을 받는 것”이라며 “중·저신용자들이 한계 상황에 몰렸다는 방증”이라고 진단했다.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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