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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극우장관, ‘성지방문’ 도발…美 “휴전협상 훼방” 발끈

입력 | 2024-08-14 15:31:00


13일(현지 시간)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왼쪽 네번째)이 동예루살렘에 있는 ‘알아끄사 사원’을 방문했다. 동예루살렘=AP 뉴시스

이스라엘의 대표적 극우 인사로 꼽히는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이 13일(현지 시간) 동예루살렘에 있는 ‘알아끄사 사원’을 방문한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퍼지면서 이슬람권에서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는 함께 방문한 이스라엘인 2250명과 함께 기도하고 유대교 찬송가도 불렀다.

이란이 이번 주내로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공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큰 와중에 이스라엘 장관이 이슬람 성지(聖地)에 대한 합의를 거스르는 행태를 보이며 긴장 수위를 끌어올린 것이다. 이스라엘의 우방인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방문을 ‘도발’이라고 규정하며 “협상을 위해 노력하는 중요한 순간에 긴장을 고조시켰다”고 비판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13일(현지 시간) 벤그비르 장관은 알아끄사 사원을 방문해 “유대인도 경내에서 기도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알 알아크사 사원은 이슬람 3대 성지 중 하나인 동시에 유대교, 기독교도 성스럽게 여기는 곳이다. 요르단이 이곳 성지의 관리를 담당하지만 치안유지 권한은 이스라엘에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갈등이 고조될 때 자주 충돌이 발생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날 벤그비르 장관은 “도하(카타르 수도)나 카이로(이집트 수도)에서 열리는 회의(휴전 협상)에 가서는 안 된다. 하마스를 무릎 꿇려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이집트, 카타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에 15일을 휴전 협상 재개일로 제시했다.

확전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미국은 즉각 거세게 반발했다. 이날 블링컨 장관은 “미국은 벤그비르의 ‘성전(聖殿)산’(유대교 명칭) 방문을 강력하게 반대한다”며 “예루살렘 성지에 대한 역사적 합의를 명백히 무시한 행동”이라고 성명을 냈다. 그는 “휴전 및 인질 송환 협상 타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긴장을 악화시키기만 하는 도발적 행동”이라고 규탄했다. 프랑스 외무부 역시 “용납 못할 도발”이라고 논평했다.

이스라엘도 진화에 나섰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벤그비르 장관이든 누구든 성전산에 대한 사적인 정책을 발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벤그비르 장관의 행동이 이스라엘 정부 입장과 어긋난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벤그비르 장관은 2022년 세 차례나 알아끄사를 찾았다. 일각에선 벤그비르 장관의 행동도 같은 해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마스는 당시 작전을 ‘알아끄사 홍수’라고 명명하며 “최근 최고조에 달한 알아끄사에 대한 이스라엘의 적대행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정권 유지를 위해 벤그비르 장관을 내칠 수 없다. 벤그비르 장관이 이끄는 극우 정당 ‘유대인의 힘’(6석)이 2022년 12월 출범한 네타냐후 총리 주도의 연립 여당(64석)을 탈퇴하면 의회 의석 과반(61석)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